클레오파트라 역을 연기하는 가수 박지윤.
유니버설영화사가 비슷한 제작비로 ‘스파르타쿠스’(1960)를 내놓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3년 후 20세기폭스사가 4배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클레오파트라’(1963)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캐스팅했음에도 흥행에 실패했고 회사는 부도가 났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와 이집트 간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두 남자(카이사르, 안토니우스)를 사랑했지만 종국에는 독사에 물려 자살을 택하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2002년 체코 프라하에서 초연된 뮤지컬 ‘클레오파트라(Kleopatra)’는 그녀를 미모와 진실한 사랑을 모두 가진 지극히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그렸다. 스토리라인 역시 그녀가 사랑한 두 남자와의 로맨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치적인 야망보다는 사랑의 환희와 좌절을 겪으며, 강한 모성애도 갖춘 인간미가 물씬 느껴지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이 작품의 최고 장점인 음악이다. 체코 작곡가 마이클 데이비드가 만든 음악들은 귀에 친숙한 심포닉 록 스타일의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주제곡 ‘난 왕이 될 거야’와 안토니우스(민영기 분)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별이 되어 사라지네’ 등의 멜로디는 귀를 즐겁게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주변을 떠나지 않으면서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하는 뱀 역할의 댄서는 유연한 몸놀림과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인다.
드라마가 개연성을 가지고 극적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방대한 역사를 설명하는 해설자의 역할로 주피터와 이시스 신이 등장하지만, 마치 오페라 사이에 만담이 끼어든 것처럼 조화롭지 않다.
무대 디자인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은 전동장치로 움직이는 복층 무대로 표현된다. 고전 의상을 착용하는 시대극은 일반적으로 장면 전환이 많고 배우는 품위 유지를 위해서 자동으로 전환되는 세트가 불가피하지만 지나치게 잦은 전환은 객석에 피로감을 준다. 이집트와 로마의 특징을 시대적으로 고증한 흔적이 보이지만, 두 가지를 한 무대에 병치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처리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적인 묘사가 중시된 의상과 소품에 비하면 스크린 영상으로 표현한 전쟁 장면은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어색하다.
클레오파트라 역은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가수 박지윤과 중견 뮤지컬 배우 김선경이 더블캐스팅으로 맡았다(11월3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문의 02-549-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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