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중·저준위 폐기물을 일반 가건물에 20년 넘게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폐기물은 2010년까지 경북 경주 방폐장으로 옮겨질 것들이다.
경주 방폐장은 정부와 지역주민 간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던 ‘부안 사태’의 결과물이다. 부안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방폐장 부지가 경주로 바뀐 것이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놓고 그토록 격렬한 반대가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위험도가 훨씬 높은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난제 중 난제임이 분명하다.
현재 국내에는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 4개 지역에서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이곳에서 연간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약 700t으로, 2007년 말 현재 9400t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대로라면 2016년부터는 각 발전소마다 포화상태에 접어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성 독성이 천연우라늄 수준까지 떨어지는 데 30만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고방사성 폐기물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2030년까지 1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확충하겠다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공사 중인 6기와 조만간 착공할 2기 등 8기를 포함하면 2030년까지 모두 18기가 늘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당장 급한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대책은 고사하고 그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2030년까지 10기 원자력발전소 추가 확충 계획
이 문제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등 관련 부처들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원자력 행정체계는 안전규제와 이용진흥 기능이 분명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 교과부에 집중돼 있다. 교과부가 안전규제를 전담하는 동시에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세우는 등 일부 이용진흥 기능까지 하고 있는 것. 반면 지경부는 산하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과 홍보 기능 정도만 담당하고 있는 상태다.
이은철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규제의 독립성은 국제협약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사항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황주호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지금처럼 교과부가 안전규제와 이용진흥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안전규제와 이용진흥을 분리해야 견제 및 균형의 원리에 맞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협약은 기본적으로 원자력 안전규제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규제활동의 투명성도 원전보유국이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자신들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지경부는 안전규제와 이용진흥 기능의 분리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지경부 나기용 산업과장은 “국가 간 안전협약의 일반 원칙에서도 규제와 진흥은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진흥에는 연구개발과 국제협력 업무가 포함되는데 이 기능이 두 부처로 갈려 있을 필요가 없는 만큼, 이를 안전규제에서 떼어내 우리가 맡는 게 효율성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이렇게 방치하다 엄청난 대가 치를 것”
그러나 교과부는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교과부 김진홍 원자력정책과 총괄과장의 설명이다.
“국제규범에서 말하는 안전규제와 이용진흥의 분리는 원자력 지상용 상용원자로에 대한 것이다. 교과부는 상용원자로에 대한 연구개발(R·D)이 아니라 미래 원자력 연구개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연구개발 분야의 규모가 작다. 교과부는 안전규제와 연구개발을, 지경부는 에너지와 발전 분야를 담당하기 때문에 지금도 명확히 구분돼 있다.”
교과부와 지경부는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추진하던 행정조직개편 과정에서도 한바탕 격전을 치렀다. 당시 상황에 대한 두 부처 담당 공무원들의 기억부터가 다르다.
지경부 나 과장에 따르면, 인수위에 보고된 최초 안에는 교과부의 안전규제 업무와 이용진흥 업무가 분리돼 이 중 이용진흥 업무가 지경부로 넘겨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여야 6자회동에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논의 과정에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것.
그러나 교과부 김 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인수위가 처음 발표했을 때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안이 변형됐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행정조직 개편을 둘러싼 두 부처의 치열한 로비전이 엿보이는 대목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와 여야를 상대로 한 로비를 경고한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부처의 갈등은 결국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로 이어졌다. 서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 지경부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해 국민을 상대로 공론화를 서두르자는 입장이다. 현재 발전소의 임시저장소를 늘리거나, 중간 저장시설에 이어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리장 건설과 부지 선정 문제를 아예 공론화해 해법을 찾자는 것.
지경부 산하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지난해 2월 구성한 ‘갈등관리전문위원회’에서 연말까지 5차 회의를 거쳐 정리한 연구보고서의 골자도 공론화 추진 방식, 일정, 대상 등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서는 특히 중간 저장시설 설치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에 반해 교과부는 기술개발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교과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파이로 공정과 고속로를 연계한 제4세대 원자력시스템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뒤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 재처리 기술은 사용후 핵연료 중 94.4%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으며, 폐기물이 5.6%에 그쳐 처리에 필요한 공간을 크게 줄일 것이라고 한다.
교과부는 이 재처리 기술의 필요성에 대해 “현재대로라면 2023년부터 사용후 핵연료가 연간 1000t이 발생해 21세기 말까지 10만t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처리하려면 여의도 면적의 10배 넘는 부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과부의 재처리 기술에 대해 기술적인 정당성은 물론, 핵비 확산에 대한 국제적 신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과부와 지경부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의 해법은 물론, 공론화에 대한 기본 시각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어떤 정책이나 방향도 정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경을 털어놨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정말 시급하다. 이렇게 방치하면 그 대가를 누가 치르겠는가. 결국 국민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안 하려고 한다 ”.
경주 방폐장은 정부와 지역주민 간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던 ‘부안 사태’의 결과물이다. 부안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방폐장 부지가 경주로 바뀐 것이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놓고 그토록 격렬한 반대가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위험도가 훨씬 높은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난제 중 난제임이 분명하다.
현재 국내에는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 4개 지역에서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이곳에서 연간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약 700t으로, 2007년 말 현재 9400t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대로라면 2016년부터는 각 발전소마다 포화상태에 접어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성 독성이 천연우라늄 수준까지 떨어지는 데 30만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고방사성 폐기물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2030년까지 1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확충하겠다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공사 중인 6기와 조만간 착공할 2기 등 8기를 포함하면 2030년까지 모두 18기가 늘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당장 급한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대책은 고사하고 그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2030년까지 10기 원자력발전소 추가 확충 계획
이 문제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등 관련 부처들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원자력 행정체계는 안전규제와 이용진흥 기능이 분명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 교과부에 집중돼 있다. 교과부가 안전규제를 전담하는 동시에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세우는 등 일부 이용진흥 기능까지 하고 있는 것. 반면 지경부는 산하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과 홍보 기능 정도만 담당하고 있는 상태다.
이은철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과)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규제의 독립성은 국제협약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사항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황주호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지금처럼 교과부가 안전규제와 이용진흥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안전규제와 이용진흥을 분리해야 견제 및 균형의 원리에 맞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협약은 기본적으로 원자력 안전규제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규제활동의 투명성도 원전보유국이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자신들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지경부는 안전규제와 이용진흥 기능의 분리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지경부 나기용 산업과장은 “국가 간 안전협약의 일반 원칙에서도 규제와 진흥은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진흥에는 연구개발과 국제협력 업무가 포함되는데 이 기능이 두 부처로 갈려 있을 필요가 없는 만큼, 이를 안전규제에서 떼어내 우리가 맡는 게 효율성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이렇게 방치하다 엄청난 대가 치를 것”
그러나 교과부는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교과부 김진홍 원자력정책과 총괄과장의 설명이다.
“국제규범에서 말하는 안전규제와 이용진흥의 분리는 원자력 지상용 상용원자로에 대한 것이다. 교과부는 상용원자로에 대한 연구개발(R·D)이 아니라 미래 원자력 연구개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연구개발 분야의 규모가 작다. 교과부는 안전규제와 연구개발을, 지경부는 에너지와 발전 분야를 담당하기 때문에 지금도 명확히 구분돼 있다.”
교과부와 지경부는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추진하던 행정조직개편 과정에서도 한바탕 격전을 치렀다. 당시 상황에 대한 두 부처 담당 공무원들의 기억부터가 다르다.
지경부 나 과장에 따르면, 인수위에 보고된 최초 안에는 교과부의 안전규제 업무와 이용진흥 업무가 분리돼 이 중 이용진흥 업무가 지경부로 넘겨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여야 6자회동에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논의 과정에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것.
그러나 교과부 김 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인수위가 처음 발표했을 때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안이 변형됐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행정조직 개편을 둘러싼 두 부처의 치열한 로비전이 엿보이는 대목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와 여야를 상대로 한 로비를 경고한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부처의 갈등은 결국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로 이어졌다. 서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 지경부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해 국민을 상대로 공론화를 서두르자는 입장이다. 현재 발전소의 임시저장소를 늘리거나, 중간 저장시설에 이어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리장 건설과 부지 선정 문제를 아예 공론화해 해법을 찾자는 것.
지경부 산하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지난해 2월 구성한 ‘갈등관리전문위원회’에서 연말까지 5차 회의를 거쳐 정리한 연구보고서의 골자도 공론화 추진 방식, 일정, 대상 등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서는 특히 중간 저장시설 설치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에 반해 교과부는 기술개발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교과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파이로 공정과 고속로를 연계한 제4세대 원자력시스템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뒤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 재처리 기술은 사용후 핵연료 중 94.4%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으며, 폐기물이 5.6%에 그쳐 처리에 필요한 공간을 크게 줄일 것이라고 한다.
교과부는 이 재처리 기술의 필요성에 대해 “현재대로라면 2023년부터 사용후 핵연료가 연간 1000t이 발생해 21세기 말까지 10만t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처리하려면 여의도 면적의 10배 넘는 부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과부의 재처리 기술에 대해 기술적인 정당성은 물론, 핵비 확산에 대한 국제적 신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과부와 지경부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의 해법은 물론, 공론화에 대한 기본 시각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어떤 정책이나 방향도 정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경을 털어놨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정말 시급하다. 이렇게 방치하면 그 대가를 누가 치르겠는가. 결국 국민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안 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