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한 장면(왼쪽).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언터처블(The Untouchables)’은 이 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어둡게 색칠한 영화다. 금주법 시대,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밤을 지배하는 시카고는 갱들의 도시, 무법천지다. 하늘을 찢을 듯 솟은 마천루 아래에서 펼쳐지는 협잡과 속임수, 거짓과 음모는 이 대도시의 어두운 그늘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어둠과 그늘이야말로 시카고가 갖고 있는 마력의 원천인지 모른다.
링컨 인종통합 계승 완수 남다른 사회적 의미
시카고가 재즈의 ‘제2의 본고장’이 된 데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빛과 어둠이 극적으로 만나는 곳이어서가 아니었을까. 20세기 초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한 재즈는 시카고에서 꽃을 피웠다. 뉴올리언스의 홍등가 스토리빌에서 연주하던 재즈 뮤지션들은 스토리빌이 시 당국에 의해 폐쇄되면서 일자리를 잃자 열차를 타고 북부의 도시로 흘러 들어왔다.
그들이 새로 정착한 곳이 바로 시카고였다. 남부에서 올라오는 열차의 종착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부의 토착 흑인 음악이었던 재즈는 다소 폐쇄적인 뉴올리언스에서 벗어나 시카고라는 이질적 환경을 만나 새로운 생명과 보편성을 얻었다. 흑인적인 요소와 백인적인 요소, 농촌문화와 도시문화의 결합으로 새로운 차원의 음악으로 한 단계 고양된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희망과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가 이 도시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차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오바마가 처음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한 곳, 하버드대학 로스쿨을 마친 뒤 대형 로펌의 고액 연봉을 뿌리치고 다시 찾은 곳이 시카고였다. 오바마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시카고는 그의 정치적 무대로 가장 적절한 곳이었던 듯하다. 게다가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 출신 선배 대통령이 링컨이니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인연까지 느껴진다. 링컨에 의해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의 후손이 1세기 반 만에 대통령이 된다. 그건 링컨이 시작한 인종통합 작업이 명실상부하게 계승, 완수된다는 사회적 의미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상징으로서 시카고는 그에게 또 하나의 힘겨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거듭 절묘한 대목이 있다. 월가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 이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들이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Cicago boys)’가 아닌가. 시카고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이 추앙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제 미국과 세계의 미래에 근본적인 의문과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갱들의 도시라는 이미지도 벗고, 깨끗하고 질서 있는 도시로 변신한 시카고. 게다가 새로운 리더십까지 배출한 시카고. 미국의 상처와 영광, 과제가 한데 집약된 듯한 이 도시에서 희망의 여정을 시작한 젊은 지도자가 통합의 정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걸 지켜보는 것은 재즈 음악을 듣는 것 못지않게 흥분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