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환경연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특별대책회의’ 출범 관련 입장.
국내 최대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이 11월3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K(33) 전 기획운영국 부장이 공금횡령 사건으로 검찰에 구속된 직후 나온 환경연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친(親)환경연 성향의 언론마저 “진정성이 없다”며 환경연을 꼬집고 나섰다. 불과 얼마 전 ‘정권과 검찰의 탄압’을 주장하며 환경연을 감쌌던 시민사회단체들도 등을 돌렸다. 450여 개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환경연의 사과문 발표 다음 날인 4일 성명을 내고 “환경운동연합이 3일 발표한 후속대책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자체 조사에서 알게 됐다” 발표는 거짓?
10월29일 검찰에 구속된 K 전 부장은 3억원대의 자금을 빼돌려 임의로 사용(횡령·사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K 전 부장은 그 돈을 애인 용돈, 뮤지컬 여배우의 빚 청산에 쓰는가 하면 자신의 스포츠 차량 구입에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K 전 부장은 2004년 산림조합중앙회에서 ‘녹색자금’을 타내기 위해 ‘어린이 산림교육 뮤지컬 공연’을 한다고 속여 1억8000만원을 받아 챙긴 뒤 그중 7800만원을 임의로 빼내 사용했고 나머지 1억200만원은 환경연 직원들의 월급을 주는 데 썼다. 산림조합중앙회가 실적 보고서를 요청하자 출판사 등을 통해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제출했다.
K 전 부장은 지난해 발생한 충남 태안 기름유출사고 관련 후원금에도 손을 댔다. 2006년 3월부터 후원금이 입금된 환경연 계좌에서 수십만∼수백만원씩 빼내는 등 최근까지 무려 136차례에 걸쳐 1억900만원을 횡령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사건이 K 전 부장의 단독 범행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검찰은 현재 K 전 부장이 환경연의 A국장을 비롯한 다른 환경연 직원들과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K 전 부장이 횡령한 자금 가운데 상당액이 내부 회계처리를 거쳐야 하는 공금으로 사용됐다는 점에 검찰은 주목한다.
시민사회단체와 검찰 주변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이번 환경연 횡령사건의 배경에는 환경연 주변 인물들의 제보가 있었다. 제보자들은 1년여 전부터 환경연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을 통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발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주간동아’는 7월 ‘정부보조금 30% 떼내기 가짜 영수증 보고도 관행’(644호)이란 제목으로 환경연의 횡령 의혹을 단독 보도한 이후 제보자들과 수차례 만났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지난 1년여 간 횡령사건과 관련해 환경연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주간동아가 접촉한 제보자 문모(40) 씨는 줄곧 “환경연이 그동안 부적절한 회계 관행, 횡령사건을 알고도 은폐해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횡령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환경연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않은 채 내부 입단속에만 치중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씨는 최근 구속된 K 전 부장의 자금횡령 사건도 이미 환경연 주변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밝혀 충격을 줬다. 다음은 문씨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처음 환경연 간부의 횡령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얼마 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환경연 B 전 국장과의 개인적 갈등 과정에서 알게 됐다. B 전 국장이 나에게 직접 환경연 내에서 어떤 식으로 자금이 횡령되고 있는지를 실토했다.”
▼ 횡령의혹을 접한 환경연의 반응은 어땠나.
“겉으로는 해결하겠다고 하면서도 내부 입단속만 했다. 지난 2월에 진행된 자체 조사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횡령의혹 당사자인 B 전 국장의 계좌는 열람도 하지 못한 조사였다. 오히려 당시 B 전 국장은 환경연 고위 간부에게 ‘(자금횡령 건을) 계속 문제 삼으면 보수언론을 통해 환경연 내부 비리를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내 가족도 B 전 국장에게 오랫동안 협박을 당했다.”
▼ 구속된 K 전 부장의 횡령의혹도 환경연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B 전 국장과 C 전 간사의 횡령의혹을 제기하면서 여러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환경연의 또 다른 간부들도 환경연 후원금을 횡령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월 초 환경연 전직 간부로 환경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시민단체 인사에게서 ‘그 두 사람(B 전 국장과 C 전 간사) 외에도 조직 자금에 손을 대는 직원들이 많다. 특히 A국장, K 전 부장이 습관적으로 횡령해왔는데 문제가 커질까봐 알고도 모른 척 쉬쉬한다. 누구도 이 문제를 공공연히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돼 그중 한 사람은 환경연 조직표에서 사라졌다. 문제가 될 것 같아 (환경연이) 사전에 꼬리를 자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있나.
“이러한 사실들을 전해준 복수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했다. B 전 국장과 C 전 간사가 나와 내 가족을 상대로 협박한 증거도 갖고 있다. 개인적 문제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시민단체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모든 증거를 확보해놓았다.”
문씨는 위와 같은 주장을 9월 초 검찰 참고인 조사 당시 진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문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환경연이 최근 “환경운동연합은 검찰 압수수색 이후 내부사업과 회계 전반에 대해 강도 높은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 실무자가 환경운동연합 명의의 계좌 1개를 사적으로 관리하면서 사전 보고승인 절차 없이 인감을 무단 사용해 해당 계좌에서 공금을 수차례 인출한 뒤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자백을 해옴에 따라 조사 및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는 주장은 거짓이 된다. 문씨는 “확보한 녹취록은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수사기관에 제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경연은 최근 발표한 사과문에서 이번 공금횡령 사건을 ‘실무자 1인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검찰의 칼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 분위기다. K 전 부장 외에도 환경연을 오래 이끌어온 최열 전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 있는 B 전 국장과 C 전 간사 등이 여전히 수사선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부 보조금과 대기업 후원금을 개인 명의의 펀드에 투자하거나 개인의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B 전 국장과 C 전 간사에 대해 조만간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최 전 대표와 관련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만간 최 전 대표가 소환될 것이다. 본인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구속된 K 전 부장의 혐의보다 결코 작지 않은 죄를 지었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