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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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여성이 능력도 좋은걸!

봄 이어 여름 거리에 로맨틱 룩 열풍 … 자신만의 스타일 만들 줄 아는 여성 대접받아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6-05-24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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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여성이 능력도 좋은걸!
    올봄 가장 유행한 아이템은 뭐니 뭐니 해도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화이트 블라우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초봄부터 거리에는 19세기 유럽 귀부인들이나 입었을 법한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들이 넘쳐났다.

    여름이라고 해서 이런 ‘로맨틱’ 물결이 수그러들 성싶지는 않다. 올여름에는 날씬하고 우아한 실루엣의 원피스, 레이스나 코사지 등 여성적인 디테일, 쉬폰처럼 비치는 소재, 란제리 룩 등이 두드러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모두 봄의 거리를 휩쓸었던 로맨티시즘의 연장선상에 있는 스타일이다.

    빅토리아, 로코코의 공주풍 디자인이 브랜드 컨셉트인 ‘레니본’의 윤영주 이사는 “전년보다 올해 매출이 150%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윤 이사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부터 벨벳 재킷과 블라우스를 중심으로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다고. 패션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로맨티시즘은 최소한 내년 초까지는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한다.

    “화장기 없는 전문직 여성은 가라”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오랫동안 로맨티시즘이 유행하는 것일까? 왜 여성들은 때 아닌 낭만주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물론 ‘세기말의 미니멀리즘에 이은 세기초의 낙관주의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로맨티시즘이 유행하는 것’이라고 교과서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 외에 다른 방식으로도 해석의 여지가 있을 듯싶다.



    홍익대 간호섭 교수(패션디자인)는 이와 관련해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숨기고 경쟁해야만 했던 과거의 남성 위주 사회와는 달리, 이제는 여성들이 로맨티시즘으로 여성성을 마음껏 과시해도 불리하지 않게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 “여성 총리 시대를 맞을 만큼 여성들의 사회적 신분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여성들이 핫핑크나 레드 등 화려한 컬러를 사용하거나 ‘네오 빅토리안 룩’ 같은 여성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스타일을 입는 게 더 이상 터부시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연세대 이지현 교수(패션디자인)는 이와는 약간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이 여성성을 강조해서 그리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지도층 여성은 남성의 이미지를 차용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성적인 특질 자체가 ‘메트로섹슈얼’ 쪽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그런 특질을 차용하는 여성들의 패션 역시 한층 여성적으로 보이게 된 것 아닐까요.”

    그 어떤 쪽으로 해석하든 공통적인 것은 ‘능력 있는 여성은 꾸미기도 잘한다’는 새로운 선입견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쓴 전문직 여성’이라는 식의 생각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오히려 패션과 화장, 헤어스타일 등에 정통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줄 아는 여성이 진짜 능력 있는 여성 대접을 받는다. 패션 정보 컨설팅 회사인 퍼스트뷰 코리아의 이정민 이사는 “격식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여성성이 강조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여성에게는 오히려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또 “이제는 남성도 옷 잘 입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인데 하물며 여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올해의 거센 로맨티시즘은 무채색의 슈트를 벗어던지고 우아한 여성으로 변신하려는 여성들의 변신 노력과 ‘여성다운 여성’을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변화한 분위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몸의 실루엣이 강조되고 로맨틱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올해의 유행 경향은 날씬하고 키 큰 여성이 아니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면 직장여성들이 이 같은 로맨티시즘을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패션 전문가들은 “슈트를 고수하되 이너웨어와 액세서리에 변화를 주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관리자층이나 금융, 법조계 등에서는 슈트를 입는 것이 여전히 기본적인 룰이지요. 하지만 탑이나 저지, 니트 등 실루엣이 강조되는 이너웨어를 갖추면 재킷을 벗고 화려한 귀고리 하나 정도만 바꿔줘도 바로 애프터 드레스로 변신이 가능합니다.” 간호섭 교수의 조언이다. 또 로맨틱 룩을 소화하기 어려운 체형이라면 핸드백이나 구두 등의 소품으로 트렌드를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공부만 잘하면, 일만 잘하면 모든 게 다 용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부와 능력은 ‘기본’이고 옷도 잘 입고 매무새까지 남달라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어찌 보면 무엇 하나만 잘하면 되던 과거가 차라리 낫지 않았나 하는 묘한 향수가 들기도 한다.

    지도층 여성 중 누가 옷 잘 입나

    섹시하고 당당한 라이스, 정가의 패션리더는 힐러리


    5월8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마거릿 베킷 영국 외무장관이 뉴욕에서 회담을 했다. 이 두 명의 여성 장관이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에서 특히 화제가 됐던 것은 두 장관의 상반된 옷차림이었다. 피트한 블랙 슈트에 진주 목걸이와 귀고리를 착용한 라이스 장관이 섹시하고도 당당한 이미지를 과시했다면, 베킷 외무장관은 패션에 무관심한 영국 여성답게(?) 헐렁한 바지 정장에 하이힐이 아니라 굽 낮은 부츠를 신은 모습이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 측면에서는 라이스가 베킷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하며 베킷 장관에 대해 “국제무대에선 때로 발언보다 사진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 이젠 현실을 직시하고 스타일을 바꿔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막 외무장관에 임명된 베킷 장관을 라이스 국무장관에 비교한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닐까 싶다. 과거 스탠퍼드대학 교수 시절에는 딱딱하고 보수적인 옷차림을 고수했던 라이스 장관은 국무장관 자리에 오른 뒤 치아교정을 했을 만큼 스타일에 신경을 쓴다는 후문이다. 단발머리에 수더분한 시골 아줌마 인상이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지난해 11월 총리로 선출된 뒤 머리를 염색하고 세련된 커트로 스타일을 바꾸었다. 탁월한 미모로 ‘오렌지 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율리아 티모셴코 우크라니아 총리는 아예 패션잡지 ‘엘르’의 표지모델로 등장했을 정도다.

    패션 전문가들은 이처럼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는, 그러면서도 우아한 여성성을 과시하는 ‘정가의 패션 리더’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을 꼽는다. 백악관 시절,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패션지 ‘보그’의 표지를 장식했던 클린턴 의원은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포멀한 이미지를 연출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섹시하다기보다는 ‘시크’하다는 것.

    국내에서는 역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나름의 이미지를 구축한 ‘패션 리더’로 꼽힌다. 이정민 이사는 강 전 장관에 대해서는 “모던한 커트와 바지 정장에 도드라지는 귀고리나 스카프 등으로 액센트를 주어 도시적인 세련됨과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박근혜 대표는 “짧은 재킷과 긴 스커트, 업스타일 헤어 등으로 참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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