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3

2006.05.02

체계적 논술교육, 사교육으로 되겠니

논술 고정관념 뒤집기⑥ - 사교육 논술시장의 허실(중)

  •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입력2006-04-28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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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계적 논술교육, 사교육으로 되겠니
    논술 사교육이 생각보다 수익성 좋은 사업이 아니고, 따라서 투자를 통한 질 높고 내실 있는 교육이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것이 지난 호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사교육에서 질 높고 내실 있는 논술교육이 어려운 이유가 또 있다.

    논술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단기간에 교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논증적 글을 쓰기 위해서는 논리적,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내용을 고민하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과정도 필요하다. 생각을 글로 구성해내는 능력도 단기간에 향상되기가 쉽지 않다. 토플제도를 바꿔놓을 정도로 우수한 적응력을 가진 한국의 사교육은 수능시험 이후 4~6주 정도의 집중훈련으로 학생들을 대입 논술에 대비시키고 있지만, 이는 흉내 내기와 요령 익히기에 불과할 뿐 정상적인 논술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논술교육이 다른 영역보다 장기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이 사교육에서 논술교육이 쉽지 않은 핵심 이유다. 사교육 영역에서 이런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 담당자 본인이 교육적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정글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장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힘들다. 논술학원의 수강등록은 대부분 월별로, 아주 예외적으로는 2~3개월 단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손님’을 놓치지 않고 유지하려면 당장 효과를 느낄 수 있는 단기적 처방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손님은 즉각적인 효과를 찾아 더 섹시하고 더 자극적인 프로그램 쪽으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논술시장이 이렇게 교육 효과를 단기간에 검증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는 단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힘들 뿐 아니라, 체계적인 논술교육이 이뤄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사교육의 단기 집중훈련으로 창의성 있는 글쓰기 힘들어

    설령 교육 효과를 장기적으로 검증하는 분위기가 마련되고, 또 단계적 커리큘럼이 마련돼 있다고 해도 또 다른 현실적 어려움이 뒤따른다. 수익 증진을 위해서는 매월 신입생을 받아야 하는데, 단계적 프로그램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입생을 커리큘럼의 중간 단계에 바로 편입시키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매월 신입생을 위해 첫 단계를 시작하는 반을 개설하기도 쉽지 않다. 매월 한 반을 꾸릴 수 없을 정도의 수가 수시 등록할 경우, 그 학생들을 위해 소수의 반을 운영하게 되면 수익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교육의 논술교육은 체계적인 형식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새로 온 학생과 기존의 학생이 함께 수강해도 별 문제가 없는 단편적 프로그램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렇게 단타매매식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교육 여건 때문에 사교육 시장에서 체계적인 논술 교육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논술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장기 커리큘럼을 운영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이 마련돼야 하는데, 우리 현실에선 공교육이 그 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공교육 현장에도 단계적인 커리큘럼과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부족한 상태에서라도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논술을 한 과목에 맡기지 말고 연합전선을 펼치는 ‘벌떼 작전’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무수한 잽으로 적을 무너뜨린다는 심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각 과목이 평소 수행평가나 서술형 논술형 평가를 알차게 시행함으로써 꾸준히 논술교육을 진행한다면 어느 순간 급격히 교육 효과가 향상되는 기적 같은 경험이 곳곳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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