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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경계선상, 레드벨벳

[미묘의 케이팝 내비] 신곡 ‘Feel My Rhythm’에 표현된 극명한 이분법 세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아찔한 경계선상, 레드벨벳

최근 ‘Feel My Rhythm’을 발표한 레드벨벳. [사진 제공 · SM엔터테인먼트]

최근 ‘Feel My Rhythm’을 발표한 레드벨벳. [사진 제공 ·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신곡에는 늘 ‘레드’와 ‘벨벳’ 중 어느 콘셉트냐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때론 겨울(벨벳)과 여름(레드) 사이 봄노래라는 식의 표현도 나온다. 2014년 데뷔 때부터 레드벨벳은 레드와 벨벳 콘셉트를 오가는 것으로 소개됐는데, 이 두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한 측면도 있다. “이번에는 레드와 벨벳의 중간으로…” 같은 애매한 말이 반복되는 시기도 있었고, 사실 공식 음반 소개 글에서는 아예 언급되지 않은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해하는 이가 끊이지 않으니, 마케팅 전략으로서는 대단한 영향력과 생명력이다.

‘레드와 벨벳 모두 가능’은 1990년대부터 ‘유능한 음악가’의 표상이 된 표현, ‘다양한 장르를 소화함’의 변주다. 사실 이건 유행이 바뀌어도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리스크가 억제된 안정적 사업이라는 어필이다. 본래는 팬보다 투자자의 관심사에 가까운 영역인 셈이다. 다만 팬덤과 대중은 자주 투자자나 경영자에 이입해 아이돌을 지켜보고, 투자하듯이 지지 또는 철회를 결정하기도 한다. 특히 걸그룹은 큰 폭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할 경우 잃을 것이 많은 입장이다. 그러니 “레드도, 벨벳도 합니다”는 케이팝이라는 이 기묘한 생태계에 던진 한 수였다. “어떤 콘셉트를 어떻게 수행할까” 자체를 관전 포인트이자 평가 기준으로 제안한 것이다.

레드와 벨벳을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흔히 말하는 ‘세계관’과도 비슷한 개념이다. 작품 활동의 범주와 특색을 결정짓기 위해 언어적으로 설정해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그것에 몰두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모두가 늘 그 이야기를 한다면 조금 우스꽝스럽다. 초능력자라는 설정을 세계관으로 삼은 아이돌이 있다고 하자. 이번 앨범의 청명한 사운드가 ‘물 능력’의 표현인지, ‘빛 능력’의 표현인지를 다툰다면 어떨까. 전작보다 ‘물 능력’ 표현의 원숙과 ‘공간 능력’ ‘현실 고증’을 언급한다면? 기사로서 흥미로울 수는 있겠지만, 과몰입이라는 인상도 없지 않다. 작품 핵심과는 거의 무관하게, 그저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할 뿐’이기 때문이다. “레드냐 벨벳이냐”를 가린다고 해서 작품의 이해나 감상에 더해지는 것도 사실상 거의 없다.

레드와 벨벳이 의미를 갖는 것은 오히려 레드와 벨벳을 떠날 때다. 신곡 ‘Feel My Rhythm’은 바흐 ‘G선상의 아리아’의 나른한 서정을 공격적 비트와 결합해 꿈같은 세계를 만들어냈다. 아름다운 동시에 소름끼치기도 하는 꿈이다. 허망한 질감의 그래픽으로 구현된 바로크 공간에서 비비드한 광기의 카니발과 현대적 의상의 안무가 교차한다. 인상주의 회화가 청순 걸그룹 클리셰를 스치며 무구한 인물을 보여주다 마법적 악의 세계가 병치된다. 사실 레드벨벳은 늘 아찔한 경계에 서 있었다. 꿈과 현실, 귀여움과 섬뜩함, 팝적인 달콤함과 컨셉튜얼한 불길함이 각기 높은 탑처럼 솟아 서로를 바라봤다. 레드와 벨벳이라는 단어만 잊어버린다면 감상자를 강렬히 매료하는 극명한 이분법의 세계가 펼쳐진다.

레드와 벨벳의 정체가 무엇이고, ‘Feel My Rhythm’은 어느 콘셉트일까.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정답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알 바 아니다. 절묘한 마케팅적 장치라고 해서 허깨비일지도 모를 것의 정답 맞히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레드와 벨벳이 가리키는 숲이 있다면 경계선상의 레드벨벳에게 매번 충격적인 감각을 선보일 도구가 된 이분법 세계다. 눈감아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 일이다.







주간동아 1332호 (p71~71)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1345

제 1345호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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