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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

파격적 性과 통렬한 풍자, 에로와 코미디는 동거 중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의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파격적 性과 통렬한 풍자, 에로와 코미디는 동거 중

파격적 性과 통렬한 풍자, 에로와 코미디는 동거 중
여느 때처럼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러 비디오가게에 갔다가 그곳에서 한국계 포르노 배우로 유명했던 이승희의 ‘물위의 하룻밤’에 등장하는 누드 사진이 앞면을 장식한 이상한 비디오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내 안의 남자’. 카피는 ‘그녀는 거리의 여자, 그녀의 서비스는 특별하다’. 분명 이승희 사진이 박혀 있는데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런 에로물인가 하는 순간, 맨 위에 적힌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이 수상해서 비디오를 뒤집어 보니 재킷 한구석에 ‘베르트랑 블리에’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베르트랑 블리에는 아내가 너무 예쁘다는 이유로 못생긴 정부와 사랑에 빠진 남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내겐 너무 이쁜 당신’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의 원로 감독이다. 내놓는 작품마다 기존의 인간관계나 성에 대한 관념을 뒤집는 블랙유머의 대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블리에의 영화가 한국에서만큼은 삼류 에로영화로 포장돼 개봉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의 영화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영락없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카피한 것이고, 야한 에로물 같다. 무엇보다 제목이 영 아니다.

복권 당첨된 남자와 창녀의 계약동거 그리고 결별?

블리에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인간관계는 어떤 개연성이 없다.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도 거의 생략되어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이밀다시피 하는 수준이다. 줄거리만 따라가자면 너무나 기괴하고 배배 꼬이고 낯설고 우습기 짝이 없는 피상적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아내의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다른 남자까지 불러들이지만 정작 아내는 13살짜리 소년과 눈이 맞아 가정을 꾸미는 내용의 ‘손수건을 준비하세요’, 14살의 양녀가 양아버지를 꼬시는 ‘좋은 아버지’, 거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 창녀가 주부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 안의 남자’ 등등. 그의 영화는 한결같이 성에 대한 파격적인 묘사와 기존의 인습과 고정된 도덕률을 조롱하는 맹랑한 이야기다. 블리에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창녀와 정숙한 주부를 오가는데, 이 점은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영화의 첫 대사가 “얼마죠?(How much?)”로 시작해서 끝없이 가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Combien Tu M’Aimes?(나를 얼마나 혹은 얼만어치나 사랑하나요?)’라는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 블리에는 돈으로 사고파는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 및 소유욕으로 사랑을 통렬히 풍자하는 것이다.

빨간색으로 물들여진 피갈(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유흥가) 거리를 걷던 한 남자, 프랑수아가 바 안으로 들어선다. 다짜고짜 다가온 창녀 다니엘라에게 남자는 자신이 지금 40만 유로 복권에 당첨되었고, 한 달에 10만 유로를 줄 테니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좋다고 말하고, 심장이 약한 남자는 여자와의 첫날밤을 생각하느라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계단에 주저앉는다. 그런데 이 여자, 남자와 살면 살수록 돈보다 그의 부드러움과 사랑에 끌린다. 그럼에도 여자는 창녀라는 자괴감 때문에 바닷가에서의 꿈같은 정사와 정성 들여 만든 스파게티를 뒤로한 채 다시 피갈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의 진짜 남자인 보스 샤를리가 나타나서 다니엘라의 몸값을 두고 프랑수아와 흥정을 벌인다.



모니카 벨루치 관능미 물씬 … ‘벗는 순간’에 매력 절정

파격적 性과 통렬한 풍자, 에로와 코미디는 동거 중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한편으로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는 진정 모니카 벨루치에 의한, 모니카 벨루치를 위한 영화라 할 것이다.(대체 모니카 벨루치는 얼마나 많은 창녀 역할을 해야 생을 다할 수 있을까?) 보기만 해도 가지고 싶은 여자의 아이콘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남성팬을 갖고 있는 그녀는 ‘밀레나’ ‘패션 오브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창녀 역할에 이어 또다시 창녀 역할을 맡음으로써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실 블리에 감독은 벨루치의 전작 ‘돌이킬 수 없는’의 지독한 성폭행 장면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풍겼던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벨루치를 위한 영화를 만들 것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바로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다.

이 영화에서 블리에 감독이 상정한 벨루치의 아이콘은 한마디로 ‘벗는 순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벨루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피 코트에 감추어진 실크 속옷을 드러낸다. 심장병이 있는 프랑수아에게 의사는 ‘다니엘라는 핵폭탄’이니 주의에 주의를 거듭할 것을 당부한다. 그래 놓고는 막상 다니엘라가 검진을 받기 위해 옷을 벗어젖히자 그 모습에 자신이 심장마비에 걸려 사망한다. ‘벗는다’는 단순한 동작 하나로 모든 남자를 심장마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벨루치에 대한 묘사야말로 나름대로 감독이 이 관능적인 여배우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라 할 만하다.

블리에 감독, 사창가 손님으로 카메오 출연

그러나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는 에로틱 코드에만 포획되는 영화는 아니다. ‘내 안의 남자’처럼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는 지독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지적인 블랙코미디다. 전반부에서 멜로드라마로 방향을 틀 것 같던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성을 둘러싼 인간의 위선과 창녀 출신의 자유분방한 여자가 가부장제에 맞추느라 고생하면서 벌어지는 우스운 상황으로 전개된다. 특히 백미라 할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는 프랑수아와 다니엘라의 격렬한 정사 도중 갑자기 이웃집 여자가 문을 두드리며, 다니엘라의 오르가슴이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면서 자신의 오르가슴을 즉석에서 시연하는 장면이다.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 장면에 필적하는 이 장면을 보고 배꼽 잡지 않을 관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게 블리에의 영화는 시끌벅적하고 스타일이 넘치고, 관능적이며, 웃기면서도 비장한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정서로 넘쳐난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다니엘라가 이탈리아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시종일관 화면을 적시는 이탈리아 아리아 속에 현대판 ‘카르멘’ 같은 구석도 엿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분한 암흑가 조폭 샤를리는 ‘대부’를 연상케 한다.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는 블리에의 최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종잡을 수 없는 세계가 바로 블리에 세계의 축약판 같은 것이다. 사창가에서 가장 먼저 매춘을 하는 손님으로 카메오 등장하는 감독의 장난기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신마저 조롱과 유머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여유와 배포가 이 노 대가에게는 존재한다. 이름도 똑같은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와 함께 현대 프랑스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베르트랑 블리에. 그의 진가가 벨루치의 섹시함에 묻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긴 하다. 사랑이 흥정은 안 돼도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를.

actress

모니카 벨루치

196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모델과 TV 드라마 활동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우리나라에도 그녀의 ‘절대적’ 아름다움에 반한 팬들이 많아 중견 여배우로는 드물게 팬클럽이 많다. 40을 앞두고 있지만 최근 고혹적인 모습으로 촬영한 스타킹 화보가 화제가 되고 있고,인도의 전 수상이었던 소냐 간디를 다룬 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기대를 모은다.




주간동아 546호 (p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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