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힐 정도로 탐미적인 색깔이 스크린 위에서 출렁인다. 영화는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뽐내는 컷들로 가득하다. 화려한 화면에 현대음악가 존 애덤스의 음표들이 종종걸음을 친다. 영화 ‘아이 엠 러브’는 밀라노, 산레모, 런던 세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탈리아 영화의 부흥을 예감케 하는 수작이다.
엠마(틸다 스윈턴 분)는 밀라노의 재벌 가문인 레키가로 시집와서 자신의 원래 이름조차 잊고 산다. 그녀는 격식 있고 화려한 저녁 만찬에 초대할 손님들의 좌석을 일일이 지정하고, 식탁에 놓일 금 식기를 직접 닦으며 광을 낸다. 저녁 만찬에서 제왕 같은 시아버지는 아들과 손자를 집안의 공동 후계자로 지명한다. 엠마는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자상한 남편의 아내로 이제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지냈다. 그러나 몇 달 후 딸이 레즈비언임을 고백하는 편지를 우연히 읽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유려하고 탄탄한 시각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카메라는 외부에서 조용히 저택 내부를 관조한다. 엠마에게 목걸이와 팔찌를 ‘채워주는’ 남편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비치는 장면은 왠지 불길한 느낌을 준다. 빨강과 주황색의 옷을 걸친 엠마의 존재는 부감 풍경으로 찍혔을 때, 한 점처럼 왜소하게 보인다. 보수적인 레키가는 2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들이 요리사 출신 친구와의 경기에서 비겼다는 사실이 만찬의 화젯거리가 되고, 화가에서 사진작가로 직업을 전향한 딸도 무언의 질타를 받는다. 밀라노의 겨울은 춥고, 금색으로 번쩍이는 저택은 공허한 울림을 반복한다.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은 아들의 친구이자 요리사인 안토니오와 사랑에 빠지며 변하는 엠마의 심리를 완벽하게 다룬다. 동시에 계급적 성찰을 놓치지 않는다. 분명 이 영화의 전반부 레키가의 만찬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레오파드’의 현대 버전으로 보일 만큼 고전미를 뽐낸다. 하지만 이후의 서사와 화면은 요리, 음악, 색, 카메라의 각도 등에서 완전히 다른 질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엠마와 안토니오의 격정적인 정사는 익스트림 클로즈업(피사체와 카메라 렌즈의 거리가 극단적으로 가까운 화면)의 화사한 화면으로 에덴동산의 남녀를 연상케 할 만큼 공들여 찍었다.
안토니오는 상징적이게도 엠마의 남편과 달리 목걸이와 신발을 ‘벗겨주는’ 사내다. 남편이 예술품 수집차 러시아에 들렀다가 자기 마음대로 엠마란 이름을 붙여준 것과 달리, 안토니오는 처음으로 엠마의 러시아 이름을 물어보고 고향에 대해 떠오르게 한다. 엠마는 안토니오에게 정통 러시아 요리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속이 투명한 러시아 수프 ‘우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는 한 청년과 러시아 여성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 맑다. 시아버지가 죽자 레키가는 전통의 가업을 버리고, 금융업으로 글로벌 신흥재벌로 도약하려 든다. 이때 레키가 기업을 사들이는 미국계 인도인의 한마디 “자본은 민주주의다”는 전통의 레키가가 왜 몰락할 수밖에 없는지를 요약한다. 감독은 한 가문의 몰락을 통해 격변하는 자본주의 세상을 비판한다. 영국 배우인 틸다 스윈턴은 천연덕스럽게도 러시아식 악센트의 이탈리어를 연발하며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그녀는 만찬장에서 영어를 모르는 듯 통역 앞에 앉아 이탈리어를 한다.
‘아이 엠 러브’는 최근작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일 디보’와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고모라’ 같은 화제작과 함께 이탈리아 영화의 부활을 알린다. 제목 ‘아이 엠 러브’는 ‘나는 사랑이다’라는 직설적인 번역도 가능하지만, ‘나는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은유적인 번역도 가능하다. 직유와 은유가 꼼꼼히 직조된 이 영화는 진정 이탈리아 장인이 한 컷, 한 컷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수제 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