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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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총 든 해적이 된 이유

폭력이란 무엇인가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2-14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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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가 총 든 해적이 된 이유

    슬라보예 지젝 지음/ 난장이/ 336쪽/ 1만5000원

    1월과 2월 우리 언론은 소말리아 해상에서 납치됐다 청해부대의 진압작전으로 풀려난 삼호주얼리호 소식을 집중 보도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돼가지만 뉴스의 열기는 식지 않는다. 해적 진압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의 치료 과정, 해양경찰의 사법 사상 초유의 수사 상황이 빈틈없이 화면과 지면을 메운다. 한국인이 해적에게 납치됐으며 한국군은 훌륭하게 해적을 제압했고 그 과정에서 선장이 총에 맞았다는 등의 극적인 장면은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소말리아 해적의 등장 배경에 대해선 ‘특별한 공부’가 필요하다. 소말리아의 최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소말리아는 1991년 쿠데타 이후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내정혼란 속에 외국 대형 어선들은 소말리아 어부들의 삶의 터전까지 진출해 황폐화했다.

    결국 먹고살 길이 막힌 어부들은 총을 들고 해적으로 나서게 됐다. 당시만 해도 소말리아 해적은 그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말리아 해적은 손쉽게 큰돈을 버는 그 나라의 특권층이 됐다. 처음엔 주로 어부 등이 해적질에 나섰지만 이제는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 폭력배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총으로 무장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폭력이라고 하면 우리는 범죄와 테러 행위, 사회 폭동, 국제 분쟁을 떠올린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폭력의 본질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폭력의 분출이 어떤 배경에서 발생하는지 파악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폭력을 3가지로 구분한다.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주관적 폭력,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 폭력,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작동할 때 만들어지는 구조적 폭력이 그것이다.

    이 책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철학적 주제를 철학 서적부터 대중문화, 유명한 사건 등 폭넓은 사례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눈에 쏙쏙 들어오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주 대하지 않은 폭력에 둔감하다. 폭력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기보다 내게 피해를 주는지 안 주는지에 더 민감하다.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돌고 돌아 내게 오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9·11테러가 벌어질 것이라 예상한 미국인은 극소수였다.

    9·11 이후에도 미국인은 자신들의 아픔에 무관심한 세계인을 불평하기에 여념이 없다. 냉정하게 자국이 저지른 폭력을 돌아보자는 이보다 불평불만만 하는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책은 그들에게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감이라도 잡으려면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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