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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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경북대병원엔 ‘仁術’이 없었다

4세 아이 사망 응급실 문전박대 파문 여전…의료서비스 개선안 발표에도 주민들은 냉소적 반응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2-1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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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경북대병원엔 ‘仁術’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대구에서 4세 여자아이가 사망했다. 갑자기 복통을 느낀 아이가 경북대학교병원(이하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대구시내 총 5곳의 병원을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치료를 요청했지만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경북대병원은 큰 비난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12월 “경북대학교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가 1월 지정 취소는 철회하고 당시 응급실에 있었던 소아청소년과 인턴과 레지던트(전공의) 2명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날 경북대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1월 21일 일요일 오후 4시 30분경, 조모 씨는 배가 아프다는 딸을 데리고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을 찾았다. 당직의사는 “장 중첩증인 것 같은데 우리 병원에는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 검사와 진료가 어렵다”며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경북대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장 중첩증은 창자가 안쪽으로 말려들어가 꼬이는 병으로 소장(小腸)이 유연한 어린아이에게 종종 생기는 질환이다. 꼬인 창자에는 피가 통하지 않고 겹친 부분이 썩기 때문에 치료는 빠를수록 좋다.

    치료 쉬운 장 중첩증인데…

    조씨는 오후 5시 40분경 아이와 함께 경북대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경북대병원은 노조가 파업 중이어서 입원실은 기존의 절반만 이용할 수 있었고 인력이 부족해 당직 의사가 간호사 업무까지 담당했다. 응급실에서 휴일·야간 당직 중이던 인턴은 “장 중첩증이라고 확진을 내리려면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데 현재 초음파 전문의가 없다. 게다가 파업 중이라 남는 입원실도 없으니 차라리 인근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낫다”며 조양을 응급실에 접수받지 않은 채 근처 외과전문병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당시 경북대병원 내에는 응급의학과 교수와 소아과 전문의가 있었지만 환자가 왔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 인턴은 “어차피 치료도 못 받을 텐데 환자가 응급실에 접수하면 애꿎은 병원비만 내야 할 것 같아 접수시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조양은 인근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고 오후 6시 10분 장 중첩증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 병원 역시 장 중첩증을 치료할 전문의가 없다고 했다. 조씨는 대구시내의 계명대 동산의료원, 영남대학교의료원에 전화를 했으나 두 병원 다 “전문의가 없으니 오지 마라”고 했다. 세 번째 전화한 구미 소재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만이 “환자를 데려오라”고 해 조씨는 바로 아이와 함께 구미로 갔다. 조양은 그곳에서 항문에 파이프를 삽입해 공기를 밀어넣는 시술을 받던 중에 장이 파열하면서 22일 새벽 끝내 숨을 거뒀다.

    사실 장 중첩증은 치료가 쉬운 질환이다. 항문을 통해 대장에 공기를 넣어 꼬인 창자를 풀어주면 된다. 소아외과 전문의뿐 아니라 외과전문의라면 누구든 손쉽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병원 4곳이 모두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이마저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의사협회 이윤성 부회장은 “대구지역 병원에 소위 ‘비인기과’ 전문의 부족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2011년 대구지역 4개 대학병원 전공의 모집은 대부분 미달됐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전공의 모집에서 정원 2명인 흉부외과, 3명을 모집하는 병리과, 1명을 모집하는 진단검사의학과에 아예 지원자가 없었다. 7명을 모집하는 외과 전공의에 지원한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사실 외과 등 특정과 전공의 진입 기피 현상은 대구만의 일은 아니지만 지방의 경우 수련 중인 전공의가 서울로 이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크다.

    “이래서 ‘메디시티’ 잘될 수 있나”

    그날 경북대병원엔 ‘仁術’이 없었다

    경북대병원 전경.

    총 4곳의 병원이 조양의 치료를 거절했지만 경북대병원이 더 많은 뭇매를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경북대병원이 권역응급의료센터이자 응급의료정보센터(1339)로 매년 정부 예산을 받기 때문이다. 경북대병원은 대구경북 지역 응급환자를 우선순위로 치료해야 하고, 긴급환자가 1339로 연락하면 적합한 병원을 수소문해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경북대병원은 보건복지부의 권역응급의료센터 평가에서 2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조양 사망 사건이 경북대병원 노동조합 파업과 겹치면서 불만 여론이 거세진 측면도 있다. 한국 정서상 파업을 ‘권리’라기보다는 ‘직무유기’로 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 실제 언론에서는 경북대병원이 파업으로 인해 중환자실 관리를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양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북대병원 노조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했고, 1월 언론중재위원회는 경북대병원 노조의 반론권을 인정했다. 노조 우성환 분회장은 “파업 기간에도 중환자실과 응급실은 100% 운영했으므로 병원 파업이 환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지역민들은 ‘예견된 비극’이라고 말했다. 경북대병원은 100년 전통을 가진 한강 이남 최고(最高) 병원이라 자부하지만 그동안 이용객들의 불만은 상당했다는 것. 실제 경북대병원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사한 2010년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7.54점을 받아 국공립 병원 중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1월에는 뇌출혈 환자를 받고도 전산시스템 교체 작업을 이유로 환자를 수술하지 않고 인근 병원으로 보내, 수술 시기를 놓친 환자가 결국 중태에 빠진 사건도 일어났다. 경북대병원을 이용했던 한 환자는 “경북대병원은 의사들이 상당히 권위적이고 무뚝뚝하며 서울보다 의료서비스 질도 떨어진다.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병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기보다는 안일함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은 대구 사람들이 경북대병원에 갖는 반감이 심해 KTX로 1시간 40분 거리인 서울에 가서 진료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경북대병원은 1월 24일 10억 원의 자체 예산을 투입하는 종합개선책을 내놨다. 모든 응급환자는 접수와 동시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매 시간 내과, 외과, 흉부외과 등 11개 과 3년 차 이상 전공의가 병원에 상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의료연대 측은 “기존 정책과 크게 내용이 다르지 않은 데다 정부 예산까지 줄어든 시점에서 상주 전공의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대구시는 2006년부터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메디시티(Medi-city)’를 자처하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하고 해외 의료관광객을 유치해 2020년 동북아 최고의 의료서비스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것. 이윤성 부회장은 “동북아를 대표하는 메디시티가 되겠다는 대구가 어린아이 장 중첩증 하나 처리 못 해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경북대병원이 앞장서 지역민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메디시티로서 대구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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