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

한 자유주의 경제학도의 도발적 비판, ‘장하준은 현명한 독재자 기다리나’

한국 경제 발전은 개입 아닌 개방 때문 … 잘못된 자유주의 비판은 정말 불행

  •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입력2011-02-14 09: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한국 경제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까지 꼽힌다. ‘주간동아’는 762호 ‘신자유주의 믿지 마라, 발등 찍힌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장 교수의 주장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볼 수 없다. 이에 주간동아는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한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의 반박글을 소개하기로 했다.

    장하준 교수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 두 달도 채 안 돼, 3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하늘을 찌르는 인기만큼 그의 글을 비평하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제대로 된 비판이 필요하다. 대중의 지지가 커질수록 그의 견해가 실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로 인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한 자유주의 경제학도의 도발적 비판, ‘장하준은 현명한 독재자 기다리나’
    책 제목에서 말하는 그들이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가리킨다. 과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했을까. 제11장인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를 보자. 어떤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아프리카의 저개발이 숙명이라고 말했는지 알고 싶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재산권을 보장해주고, 자유를 허용하면 부가 창출된다고 이야기한다. 아프리카든 아시아든 그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외부 조건의 열악함으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 역시 최악이었다. 우리가 발전했던 것은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했고, 세계 시장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적 환경도 한몫을 했다.



    제18장의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 좋은 것은 아니다’ 부분도 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공격으로는 빗나간 것이다. 이 말을 조금 일반화하면 특정 기업에 좋은 것이 그 나라 경제 전체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친화적인 제도를 주장한다. 쉽게 기업을 만들고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특정 기업을 봐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특혜라 해서 배격하는 것 중 하나다. 기업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처방을 좋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자유를 허용하면 경쟁이 치열해질 텐데, 치열한 경쟁을 좋아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장 교수의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과 예측은 이상한 논리에 기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2장을 보면 스웨덴의 버스 기사 이야기가 나온다. 스웨덴 버스 기사의 임금이 인도 버스 기사보다 50배나 높은 이유는 스웨덴 정부가 인도로부터 이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거기까지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장 교수가 결정적으로 틀린 부분은 그것에 대한 일반화 부분이다. 버스 기사가 그렇듯이 모든 부문에서 외국으로부터의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선진국의 임금 수준이 높을 수 있다는 말은 틀렸다.

    외국인 버스 기사의 유입을 규제하는 체제에서 스웨덴 버스 기사의 임금이 높아지는 것은 맞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버스 기사의 부족 사태는 다른 산업 부문에서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원활한 버스 기사의 공급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부문에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임금이 하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 전체로 보면 이민 억제정책이 오히려 임금 수준을 낮출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장 교수는 잘못된 일반화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장 교수의 글에는 시장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왜 시장을 불신하는지 그 일단을 보여주는 부분이 ‘1원 1표’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1인 1표가 아닌 1원 1표의 원리가 돈 있는 사람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에 정치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시장의 현실과 다르다. 돈 있는 사람이든 돈 없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구매력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시장이다. 시장에서의 자유가 확대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격과 품질 면에서 선택 폭이 넓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유시장에도 자생적 질서 작용

    한 자유주의 경제학도의 도발적 비판, ‘장하준은 현명한 독재자 기다리나’

    해외 수출을 앞둔 자동차(위)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열린 FTA 저지 시위.

    최근 논쟁거리가 됐던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사태가 좋은 사례다. 시장은 서민들이 원하는 5000원짜리 프라이드치킨을 출시했다. 그것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서민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혁신에 정치가 개입하기 시작하자 롯데는 통큰 치킨의 판매중단을 선언했다. 그 결과 누가 손해를 봤는가. 영세상인이 한숨 돌리긴 했지만, 5000원짜리 치킨을 필요로 하던 더 가난한 서민들이 좋은 기회를 잃었다. 시장은 부자든 서민이든 가리지 않고 작동한다. 시장이 없을 경우 더 큰 피해를 볼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장 교수는 자유시장이란 없다고 말한다.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상태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상태라는 것. 이 명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자유시장이라는 것이 무질서한 혼돈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시장이 혼돈에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참가자가 지키게 되는 행동 규범이 나타난다. 하이에크 같은 학자는 그것을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고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래 상대방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것,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으로 반품을 받아주는 일 등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갔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 행동은 대부분 바람직한 것이어서 정부도 규제할 수 있다. 시장도 처음에는 반발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행동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규제 수준이 시장에서 형성됐을 때와 비슷하게 책정된다면 그리 큰 마찰 없이 시장이 받아들이고 적응을 할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학에는 어떤 규제가 시장친화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분명히 존재한다.

    장 교수의 주장이 국제적인 설득력을 얻은 데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즉 한국의 성공 사례에 힘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한국 정부가 경제에 대해 개입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한국과 홍콩, 싱가포르, 대만은 수입 대체에 집착하기보다 수출 또는 교역에 적극적이었다. 홍콩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의 경제적 자유를 허용한 나라이고, 싱가포르 역시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허용했다. 한국과 대만의 경우 수출과 수입대체를 병행한 것이 사실이지만, 인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비교하면 무역의 폭이 훨씬 넓었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한국을 포함해서 196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네 나라의 공통된 특징은 개방의 폭이 컸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과 대만의 경우 개입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다른 후진국은 더 심한 개입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나 대만에나 개방은 성장을 촉진하는 가장 좋은 영양제다.

    한 자유주의 경제학도의 도발적 비판, ‘장하준은 현명한 독재자 기다리나’

    서울 영등포구 롯데마트 영등포점에서 ‘통큰 치킨’을 구매하기 위해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정치에서 분리된 경제 필요

    장 교수는 얼마 전 모 신문 칼럼에서 비슷한 나라끼리의 무역은 유익하지만 더 발전한 나라와의 교역은 해롭다고 밝혔다. 한국이 1인당 소득이 비슷한 포르투갈, 체코, 대만 같은 나라와 무역을 하는 것은 이익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우리보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와는 무역을 할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EU 같은 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한다.

    장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잠시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산업이 낙후됐던 중국은 한국과의 무역을 통해 큰 손해를 봤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세계 첨단을 자랑하는 전자나 조선 산업은 아예 일으킬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중국은 한국에서 중간재와 부품, 기술을 들여다 부가가치를 붙여 세계에 수출했고, 그것이 중국 산업 발전에 큰 보탬이 됐다.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의 산업이 성장한 데는 선진국인 일본, 미국과의 교역이 큰 자양제로 작용했다.

    한중 FTA가 체결돼 두 나라의 교역이 더 늘어날 경우 중국 산업이 한국 때문에 망하거나 치명적 타격을 입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그 반대를 걱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EU와의 FTA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의 FTA 반대 논리는 자신이 한 말과도 모순을 빚는다. 그는 선진국이 노동시장을 개방하면 일자리의 70~80%를 임금이 낮은 후진국 노동자가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그런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도 선진국에서 매우 잘 팔릴 테니 후진국이 선진국과 교역을 한다 해서 산업에 타격을 받을 리 없다.

    장 교수는 정부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정부도 제대로 된 산업을 선택해 잘 길러낼 수 있음을 여러 번 강조했다. 필자도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현명해야 하고,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정치 민주화 이후 한국 정부의 투자 성적표는 그리 훌륭하지 않다. 민주정치에서 정치적 결정은 경제적 효율성을 상실할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선택이 민간 기업의 선택보다 현명해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 자유주의 경제학도의 도발적 비판, ‘장하준은 현명한 독재자 기다리나’
    어쩌면 장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 장제스 전 대만 총통처럼 현명한 독재자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 경제적 번영은 물론이려니와 대통령이 국민에게 쩔쩔맬 정도의 자유민주주의까지 원하고 있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이루어내려면 정치에서 분리된 경제가 필요하다. 정부는 기본적인 틀만 제공하고 구체적인 결정은 국민 각자가 내리는 방식 말이다. 그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완전할 리 없다. 하지만 장 교수가 제시하는 그 실체조차 모호한 체제보다 덜 불완전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