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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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후손이 19대째 살아온 땅”… 강제수용 반대 송동마을 주민 속사정

“정부, 50년 전 일방적으로 그린벨트 지정하더니 이제는 집까지 빼앗겠다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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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5-02-0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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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1일 방문한 송동마을 주민 이세희 씨 집 거실에 걸려 있는 익안대군 초상화. [임경진 기자]

    1월 21일 방문한 송동마을 주민 이세희 씨 집 거실에 걸려 있는 익안대군 초상화. [임경진 기자]

    둥근 관모와 가지런한 수염. 넓은 어깨에 단정하게 모은 손. 초상화에 담긴 익안대군(益安大君) 모습이다.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의 초상화가 거실 벽 가장 높은 자리에 걸려 있는 이곳은 전주 이씨 익안대군파 21대손 이세희 씨(71)가 사는 집이다.

    이씨 가문은 이 집이 있는 서울 서초구 송동마을에서 19대째 살아왔다. 익안대군 증손 이천(李靖)이 1470년 처음 터를 잡았으니, 그간 쌓아온 역사가 555년에 달한다. 이 터전이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송동마을을 포함한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 221만㎡에 지정했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이 땅을 개발해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미리 내 집)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이 씨를 비롯한 송동마을 37가구 주민은 오순도순 살아온 삶의 공간을 떠나야 한다. 이 씨는 “50여 년 전에는 멀쩡한 사유지를 그린벨트로 묶어 땔감조차 마련하지 못하게 하고, 15년 전에는 ‘반값 아파트’를 짓겠다며 논을 헐값에 가져가더니 이제는 집까지 내놓으라 한다. 나라가 제정신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50년간 그린벨트로 묶인 사유지

    송동마을 주민의 재산권이 제약을 받기 시작한 건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이 지역 일대를 그린벨트로 지정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무분별한 개발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땔감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 씨는 “어린 시절부터 집 앞산에서 나무를 잘라다 소죽을 쑤고 방 불도 때며 살았는데, 그린벨트 지정 후 산에서 나무를 해오면 벌금을 물리는 등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고 회상했다.

    40년 뒤엔 이명박 정부가 그린벨트 안에 있던 이 씨 논밭 약 4860㎡(1470평)를 강제수용했다. 이 씨 집에서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면 나오는 옛 땅에는 2012년 보금자리주택 ‘서초힐스아파트 2단지’가 들어섰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이 씨는 이때 논과 함께 업도 잃었다. 이 씨는 “당시 송동마을 주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모두 실업자가 됐다”며 “3.3㎡당 360만 원에 거래되던 논을 나라가 3.3㎡당 300만 원에 강제수용했다”고 말했다.

    1월 21일 서울 서초구 송동마을에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사업을 위한 토지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임경진 기자]

    1월 21일 서울 서초구 송동마을에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사업을 위한 토지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임경진 기자]

    ‌이런 경험을 되풀이한 이 씨를 비롯한 송동마을 주민들은 “집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을 곳곳에는 ‘개발 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송동마을 주민들이 구성한 송동마을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공공주택사업을 강행하면 지역 주민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5년 전 송동마을에 입주한 양모 씨(46)는 “직장에서 30분 정도 거리이고 환경도 좋은 전원주택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다”며 “나라에서 주는 보상 금액으로는 이 근처에서 지금 같은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송동마을 인근에서 60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한 김모 씨는 “송동마을 옆에 있는 전원주택단지 성촌마을 토지는 2006년 그린벨트 해제 뒤 시세가 3.3㎡당 3500만~4000만 원에 형성됐다. 반면 그린벨트 안에 있는 송동마을 땅은 3.3㎡당 2500만~3000만 원 수준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사업 계속 추진할 것”

    반면 많은 사람이 ‘서울 강남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현실에서 선호도 높은 서초구에 장기전세주택을 짓는 건 의미 있는 정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회적 약자의 주거 사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금자리주택 청약에 당첨돼 2012년부터 서초힐스아파트 2단지에서 살아왔다는 70대 배모 씨는 “입주 당시 나라에서 25평형 아파트를 2억5000만 원에 살 수 있게 해주고 대출이자도 3%로 싸게 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배 씨는 “남편 없이 혼자 두 자녀를 키우며 10년 이상 저축한 청약통장으로 이 집에 당첨됐다”며 “서울 노원구 좁은 임대주택에서 불편하게 살다가 생애 최초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해 지금까지 말 그대로 ‘보금자리’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정부는 송동마을 개발계획을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송동마을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에 대해 “어느 지역이든 공공주택을 짓고자 토지를 강제수용하면 반발이 있었다”며 “주민 반발이 있다고 신규 택지 후보지를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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