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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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 되찾겠다”는 트럼프, 속내는 중국 견제?

中, 파나마 교두보 삼아 중남미 영향력 확대… ‘뒷마당’ 빼앗긴 美 대응 개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01-2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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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접한 중남미의 작은 나라 파나마는 국토를 가로질러 건설된 파나마 운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수로로, 이집트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글로벌 해상 무역에서 매우 중요한 통로다. 파나마는 이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들로부터 매년 24억 달러(약 3조4000억 원) 통행료를 받는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3.1%에 해당한다.

    파나마 운하는 특히 미국의 핵심 무역로다. 현재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전체 화물의 70%가 미국 동부와 아시아·중남미 사이를 오가는 물량이다.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으로 미국 선박들이 이 항로를 통해 5706만t 화물을 실어 날랐다. 이어 중국(4504만t), 일본(3373만t), 한국(1966만t) 순이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선. [뉴시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선. [뉴시스]

    트럼프 “美 영토 확장은 신의 뜻”

    미국은 1903년 파나마가 콜롬비아에서 분리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가로 프랑스가 착공했던 파나마 운하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는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04년부터 1914년까지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작업 사고와 말라리아 등으로 노동자 2만7500여 명이 희생됐다. 1960년대 이후 파나마에서는 운하 주권 회복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미국과 파나마의 관계가 악화됐다. 미국은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시절 파나마와 운영권 양도 조약을 맺었고, 파나마는 2000년 1월 1일을 기해 파나마 운하의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이하 현지 시간) 취임사에서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중국이 아니라 파나마에 파나마 운하를 넘겨줬음에도 중국에 빼앗겼다”면서 “파나마는 미국과 맺은 조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미국에 과다한 수수료를 부과해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서부 개척 역사 등을 언급하면서 ‘매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명백한 운명)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미국 영토 확장은 신이 부여한 운명이라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파나마 운하는 물론, 캐나다와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까지 미국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창적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피력해왔다.

    중남미에 돈 쏟아붓는 中 ‘일대일로’

    파나마 운하 주요 항구 5곳 중 2곳에 대한 운영권은 1997년부터 홍콩 대기업 CK 허치슨 홀딩스 자회사가 갖고 있다. CK 허치슨 홀딩스는 네덜란드, 영국 등 24개국에서 53개 항구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항만 회사다. 이 회사는 친중국계 재벌이자 홍콩 최고 부호인 리카싱 청쿵(長江)그룹 회장 소유다. 2021년 파나마 정부 승인을 받아 항구 운영권을 25년간 연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회사는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중국 정부가 미국의 각종 제재와 고율 관세 부과 등에 대한 보복으로 공급망을 무기화하려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안보 전문가들은 전쟁이 벌어질 경우 중국 정부가 이 회사를 압박해 상업과 군사 화물 운송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미국 동부에서 출발하는 상선이나 해군 군함이 파나마 운하 없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로 가려면 남미 대륙을 우회해야 한다. 미국 정보 분석 기업 프라이트 웨이브스의 크레이그 풀러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이 파나마 운하의 발보아항과 크리스토발항을 관리하면서 파나마 운하 운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은 파나마 운하 인프라에 모니터링 기술을 심어 미국의 군사와 상업 활동을 감시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그동안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파나마에 적극적으로 접근해왔다. 파나마는 2017년 오랜 수교국이던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 파나마를 처음으로 국빈 방문해 인프라 건설 등을 약속하며 막대한 돈 보따리를 안겼다. 당시 파나마는 중남미 국가 중 처음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후 중국은 파나마를 교두보 삼아 중남미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중국의 대(對)중남미 교역액은 올해 처음으로 5000억 달러(약 717조2500억 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2000년(120억 달러)과 비교하면 42배 수준이다. 현재 중국은 브라질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페루, 칠레, 파나마, 파라과이의 최대 무역국이다.

    중국은 미국 ‘뒷마당’인 중남미를 포섭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주요 항구 등 거점을 확보해 군사적 우위도 점하려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페루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진 위치에 개항한 창카이항의 경우 중국이 건설비로 36억 달러(약 5조1600억 원)를 투입했다. 항구 지분 60%를 중국 국유 해운기업 중국원양해운(COSCO)이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창카이항은 최고 수심이 17.8m에 달하는 남미 최대 심해 항구로 브라질, 에콰도르, 칠레, 콜롬비아의 수출 관문으로 활용된다.

    중국 화물선이 페루 창카이항에 기항하고 있다. [중국 COSCO사 제공]

    중국 화물선이 페루 창카이항에 기항하고 있다. [중국 COSCO사 제공]

    ‌중국 해군 함정들도 창카이항에 기항할 수 있다. 중남미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의 로라 리처드슨 사령관은 지난해 3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창카이항은 미국 이익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기관인 에이드데이터에 따르면 페루 창카이항, 에콰도르 수력발전댐,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지하철을 비롯해 중남미에서 중국이 진행하는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규모가 2861억 달러(약 410조4000억 원)에 달한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추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이 그동안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 억제에 주력하면서 중남미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소홀히 하자 중국은 경제적 이득 제공을 미끼로 이처럼 중남미와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또 아르헨티나 리튬, 베네수엘라 원유, 브라질 철광석·대두 등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남미는 더는 미국의 뒷마당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의 무관심을 틈타 중국이 중남미와 결속을 강화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와의 결별을 도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되찾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물론 파나마 운하 통행료를 낮추고자 꺼내 든 일종의 협상 카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파나마 운하는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 국가 자산”이라며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군사력 동원 대신 지분 등 영향력 넓힐 듯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 통제권 발언과 관련해 “파나마 주권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 통제권 발언과 관련해 “파나마 주권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 통제권 회복 요구는 상당한 법적·외교적 장애물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풀러 CEO는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강제로 통제할 경우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돼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파나마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영토이며 국제법이 부여한 운영권을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파나마 주권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1989년 12월 반미 성향의 군부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정권을 타도하려고 하자 파나마를 침공했다. 당시 체포된 노리에가는 1992년 미국 법정에서 마약 밀매와 불법 자금세탁 등 혐의로 징역 40년형을 선고받고 17년간 복역했다.

    하지만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파나마 운하를 점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더라도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파나마 정부를 압박해 파나마 운하 운영과 물류 사업에 미국 기업을 대거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영향력 확대에 나서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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