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4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세계인의 함성이 울려 퍼질 감동의 무대 월드컵 경기장의 푸른 잔디는 막바지 단장이 한창이다. 초록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선명한 색깔,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한 문양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기장의 잔디를 관리해 온 잔디관리사들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잔디를 관리하고 있는 삼성 에버랜드의 박원규 대리(34)는 잔디 관리만 10년째 해온 프로급. 골프장을 관리한 경력이 있는 그는 1998년 삼성엔지니어링이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수주한 이후 줄곧 경기장에 상주했다.
“흔히들 잔디는 밟을수록 생명력이 강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축구장 잔디는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연하고 부드러운 품종이기 때문에 갓난아기 다루듯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장에 사용되는 잔디는 대부분 ‘한지(寒地)형’ 잔디인 켄터키 블루 그래스 또는 퍼레니얼 라이 그래스. 월드컵조직위원회는 선수들이 느끼는 볼 스피드나 볼 바운드 등의 질감에서 양잔디라고도 불리는 한지형 잔디가 국산 잔디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각 경기장의 잔디관리사들은 1998년 경기장 공사가 시작되면서 각 구장 주변에 잔디 모형 시험장을 만들어 1년 동안 관리해 왔다. 여러 종류의 잔디를 시험적으로 키우면서 경기장 환경에 대한 적응 정도를 살피는 것. 잔디 뿌리 상태와 잎의 밀도, 병충해 저항 능력, 고온에서 견디는 능력 등이 중점적으로 검토되었다. 그 결과 서울 경기장은 한지형 잔디 중 가장 발병률이 낮고 색상이나 문양 효과가 뛰어난 켄터키 블루 그래스로 결정되었다. 다른 경기장은 대개 켄터키 블루 그래스와 퍼레니얼 라이 그래스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단일 품종을 사용하는 곳은 서울 경기장이 유일하다.
서울의 경우 잔디 품종이 결정된 뒤 2000년 9월에 공사가 먼저 끝난 보조경기장에 잔디 씨앗을 뿌렸다. 주경기장은 보조경기장보다 공사 기간이 1년 정도 길어 따로 공간을 마련해 파종한 뒤 2001년 5월에 잔디를 옮겨 심었다.
“무엇보다 평탄성이 중요한데, 잔디를 고르게 깔면서도 완만한 경사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축구 경기장은 평평하게만 보이지만 사실 원활한 배수를 위해 경기장 가운데 부분에서 가장자리 네 구석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경기장 가운데 부분은 가장자리보다 20cm 정도 높다.
한지형 잔디는 이름 그대로 겨울철 추위에 강하지만 여름철, 특히 장마 때 병에 걸리기 쉽다. 이 때문에 박원규씨는 지난해 여름 내내 마음을 졸이며 지내야 했다.
“어린아이를 비바람 속에 혼자 내버려두는 심정이었어요. 5월에 뗏장을 깔고, 뿌리가 자리잡기도 전에 폭우가 퍼부었으니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지요.”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도록 구석구석 배수 시설을 마련했지만, 폭우가 내릴 때면 빠져나가는 물의 양보다 내리는 비의 양이 많아 잔디밭에 일일이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구멍을 뚫어 배수를 유도해야 했다.
잔디가 무사히 장마를 견뎌냈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폭염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기온은 잔디의 생육을 왕성할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발병률도 높아진다. 더위와 함께 박씨의 가슴도 탔다.
“수시로 잔디 잎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는 순간 병이 생기니까요. 여름은 저희 잔디관리사들도 잔디를 관리하기 어려운 계절이지만 잔디 역시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지요.”
한지형 잔디는 15∼25℃에서 가장 잘 자란다. 봄가을이면 때를 만난 듯 선명하게 색을 발하고 왕성하게 성장한다. 하지만 봄에 제대로 된 녹색을 내기 위해서는 겨울철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지형 잔디라고 해서 겨울철에 그냥 방치하지 않습니다. 겨울철에는 건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수분 함유 정도를 수시로 파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과 비를 적당히 맞게 해 수분을 공급하고, 생명력을 강하게 하면서도 보온을 위해 차광망을 씌워야 한다. 차광망을 덮으면 잔디가 어느 정도 녹색을 유지한 채 동결되었다가 이듬해 봄, 선명한 색상으로 회복되는 시기를 2~3주 앞당길 수 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난지형’ 잔디를 깔았다. 대전시 잔디자문위원회에서 더위에 강한 난지형 잔디가 6월 경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한지형 잔디에 익숙한 선수들이 질감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한지형 잔디를 덧파종(overseeding)했다. 기존의 난지형 잔디밭 공간에 흙을 채우고, 한지형 잔디의 종자를 뿌린 것. 생육에 적당한 시기가 서로 다른 잔디를 함께 관리하다 보니 신경이 배로 쓰였다고.
대전 경기장의 잔디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지옥향씨(34). 흔치 않은 여성 잔디관리사다. “축구장에 덧파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으나 경기가 펼쳐지는 6월이면 최상의 그라운드를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지씨는 죽은 잔디를 제거하기 위해 밤을 새운 적도 많다.
경기가 있는 날 라인을 그리고, 골대를 설치하는 등의 사전작업도 모두 잔디관리사 몫이다. 각 경기장마다 잔디관리 인원은 3~4명. 경기장에 라인을 그릴 때는 줄자를 늘어뜨리면서 정확한 수치대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6~7시간 걸린다.
2~3일마다 잔디를 깎을 때는 일정한 문양을 만들기 위해 양쪽에서 줄을 잡고 선을 만들면 그것을 따라 기계를 이용해 잔디를 깎는다. 잔디가 일정한 간격으로 다른 색깔을 보이는 것은 기계를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계가 밀고 간 방향에 따라 잔디가 눕게 되고, 잎의 양면이 번갈아 가면서 위를 향하게 된다.
비료 한 줌이 더 가고 덜 가는 것에 따라 색깔의 선명도가 달라질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잔디다. 따라서 잔디관리사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대구 경기장 관리사무소 성영탁 주임(42)은 잔디에 인생을 건 이상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경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하고 논문만 남은 상태다. 성주임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잔디 연구가 미비한 상태”라며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외국잡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자문위원 김경남 박사는 잔디가 가장 화려한 모습을 선보이려면 집약적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경기를 한 시간 정도 앞두고 펼쳐지는 무리한 개막행사를 염려한다.
“프랑스나 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 경기장은 상당 부분 지붕이 덮여 있습니다. 관객을 위한 배려지만 그만큼 햇볕이 잘 들지 않고, 공기 순환이 잘 안 돼 잔디가 약해지기 쉽지요. 잔디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는 점을 간과하고 개막행사로 수천명이 등장하는 이벤트가 마련되면 잔디에 상당한 손상을 주게 됩니다.” 개막행사 이후 한 시간 안에 잔디관리사들이 손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그의 걱정을 더욱 크게 한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잔디관리사들은 “잔디만 잘 자라주면 오랜 피로가 물에 씻은 듯 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공든 탑이 경기 직전 무너지지 않을까 조바심 내면서도 잔디 보존을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잔디를 관리하고 있는 삼성 에버랜드의 박원규 대리(34)는 잔디 관리만 10년째 해온 프로급. 골프장을 관리한 경력이 있는 그는 1998년 삼성엔지니어링이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수주한 이후 줄곧 경기장에 상주했다.
“흔히들 잔디는 밟을수록 생명력이 강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축구장 잔디는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연하고 부드러운 품종이기 때문에 갓난아기 다루듯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장에 사용되는 잔디는 대부분 ‘한지(寒地)형’ 잔디인 켄터키 블루 그래스 또는 퍼레니얼 라이 그래스. 월드컵조직위원회는 선수들이 느끼는 볼 스피드나 볼 바운드 등의 질감에서 양잔디라고도 불리는 한지형 잔디가 국산 잔디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각 경기장의 잔디관리사들은 1998년 경기장 공사가 시작되면서 각 구장 주변에 잔디 모형 시험장을 만들어 1년 동안 관리해 왔다. 여러 종류의 잔디를 시험적으로 키우면서 경기장 환경에 대한 적응 정도를 살피는 것. 잔디 뿌리 상태와 잎의 밀도, 병충해 저항 능력, 고온에서 견디는 능력 등이 중점적으로 검토되었다. 그 결과 서울 경기장은 한지형 잔디 중 가장 발병률이 낮고 색상이나 문양 효과가 뛰어난 켄터키 블루 그래스로 결정되었다. 다른 경기장은 대개 켄터키 블루 그래스와 퍼레니얼 라이 그래스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단일 품종을 사용하는 곳은 서울 경기장이 유일하다.
서울의 경우 잔디 품종이 결정된 뒤 2000년 9월에 공사가 먼저 끝난 보조경기장에 잔디 씨앗을 뿌렸다. 주경기장은 보조경기장보다 공사 기간이 1년 정도 길어 따로 공간을 마련해 파종한 뒤 2001년 5월에 잔디를 옮겨 심었다.
“무엇보다 평탄성이 중요한데, 잔디를 고르게 깔면서도 완만한 경사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축구 경기장은 평평하게만 보이지만 사실 원활한 배수를 위해 경기장 가운데 부분에서 가장자리 네 구석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경기장 가운데 부분은 가장자리보다 20cm 정도 높다.
한지형 잔디는 이름 그대로 겨울철 추위에 강하지만 여름철, 특히 장마 때 병에 걸리기 쉽다. 이 때문에 박원규씨는 지난해 여름 내내 마음을 졸이며 지내야 했다.
“어린아이를 비바람 속에 혼자 내버려두는 심정이었어요. 5월에 뗏장을 깔고, 뿌리가 자리잡기도 전에 폭우가 퍼부었으니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지요.”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도록 구석구석 배수 시설을 마련했지만, 폭우가 내릴 때면 빠져나가는 물의 양보다 내리는 비의 양이 많아 잔디밭에 일일이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구멍을 뚫어 배수를 유도해야 했다.
잔디가 무사히 장마를 견뎌냈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폭염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기온은 잔디의 생육을 왕성할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발병률도 높아진다. 더위와 함께 박씨의 가슴도 탔다.
“수시로 잔디 잎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는 순간 병이 생기니까요. 여름은 저희 잔디관리사들도 잔디를 관리하기 어려운 계절이지만 잔디 역시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지요.”
한지형 잔디는 15∼25℃에서 가장 잘 자란다. 봄가을이면 때를 만난 듯 선명하게 색을 발하고 왕성하게 성장한다. 하지만 봄에 제대로 된 녹색을 내기 위해서는 겨울철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지형 잔디라고 해서 겨울철에 그냥 방치하지 않습니다. 겨울철에는 건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수분 함유 정도를 수시로 파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과 비를 적당히 맞게 해 수분을 공급하고, 생명력을 강하게 하면서도 보온을 위해 차광망을 씌워야 한다. 차광망을 덮으면 잔디가 어느 정도 녹색을 유지한 채 동결되었다가 이듬해 봄, 선명한 색상으로 회복되는 시기를 2~3주 앞당길 수 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난지형’ 잔디를 깔았다. 대전시 잔디자문위원회에서 더위에 강한 난지형 잔디가 6월 경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한지형 잔디에 익숙한 선수들이 질감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한지형 잔디를 덧파종(overseeding)했다. 기존의 난지형 잔디밭 공간에 흙을 채우고, 한지형 잔디의 종자를 뿌린 것. 생육에 적당한 시기가 서로 다른 잔디를 함께 관리하다 보니 신경이 배로 쓰였다고.
대전 경기장의 잔디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지옥향씨(34). 흔치 않은 여성 잔디관리사다. “축구장에 덧파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으나 경기가 펼쳐지는 6월이면 최상의 그라운드를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지씨는 죽은 잔디를 제거하기 위해 밤을 새운 적도 많다.
경기가 있는 날 라인을 그리고, 골대를 설치하는 등의 사전작업도 모두 잔디관리사 몫이다. 각 경기장마다 잔디관리 인원은 3~4명. 경기장에 라인을 그릴 때는 줄자를 늘어뜨리면서 정확한 수치대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6~7시간 걸린다.
2~3일마다 잔디를 깎을 때는 일정한 문양을 만들기 위해 양쪽에서 줄을 잡고 선을 만들면 그것을 따라 기계를 이용해 잔디를 깎는다. 잔디가 일정한 간격으로 다른 색깔을 보이는 것은 기계를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계가 밀고 간 방향에 따라 잔디가 눕게 되고, 잎의 양면이 번갈아 가면서 위를 향하게 된다.
비료 한 줌이 더 가고 덜 가는 것에 따라 색깔의 선명도가 달라질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잔디다. 따라서 잔디관리사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대구 경기장 관리사무소 성영탁 주임(42)은 잔디에 인생을 건 이상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경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하고 논문만 남은 상태다. 성주임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잔디 연구가 미비한 상태”라며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외국잡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자문위원 김경남 박사는 잔디가 가장 화려한 모습을 선보이려면 집약적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경기를 한 시간 정도 앞두고 펼쳐지는 무리한 개막행사를 염려한다.
“프랑스나 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 경기장은 상당 부분 지붕이 덮여 있습니다. 관객을 위한 배려지만 그만큼 햇볕이 잘 들지 않고, 공기 순환이 잘 안 돼 잔디가 약해지기 쉽지요. 잔디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는 점을 간과하고 개막행사로 수천명이 등장하는 이벤트가 마련되면 잔디에 상당한 손상을 주게 됩니다.” 개막행사 이후 한 시간 안에 잔디관리사들이 손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그의 걱정을 더욱 크게 한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잔디관리사들은 “잔디만 잘 자라주면 오랜 피로가 물에 씻은 듯 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공든 탑이 경기 직전 무너지지 않을까 조바심 내면서도 잔디 보존을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