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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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 논술교육 붕어빵 작문 양산

  • 케빈 리 미주교육신문 발행인

    입력2006-11-13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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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입식 논술교육 붕어빵 작문 양산
    인터넷을 통해 가끔 한국 신문을 읽습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아니 의미심장한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현재 한국이나 미국이나 초미의 관심사인 논술(=Writing)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한번 재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10월19일 한국에서 가장 명문이라는 서울대가 제출한 ‘2006학년도 고교별 논술 평균점수’에 따르면, 예상과 달리 외국어고와 서울 강남 출신 학생들의 약세가 뚜렷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 한국의 교육 트렌드를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학교는 외국어고와 서울 강남의 학교들입니다. 또 이들 학교가 소재한 지역은 한국식 사교육 열풍이 가장 강하게 불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논술 점수에서만큼은 이들 학교가 주목할 만한 뉴스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주입식’ 논술교육이 입시에서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여 주목되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통계를 음미해보겠습니다.

    토론이 논리적 사고 가장 잘 키우는 방법

    응시자 기준으로 상위 50위권에 포함된 외국어고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어고등학교는 미국에서의 톱클래스 사립 보딩스쿨처럼 한국 교육의 선두에 서 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살펴보니 전체 학생 평균은 23.41점이었는데, 외국어고 출신 학생들 평균은 23.44점으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전체 학생이나 외국어고 출신 학생들이나 비슷했다는 뜻입니다.

    한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권의 고등학교도 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합격자 기준으로 볼 때, 강남권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의 논술 평균은 23.45점으로 대동소이했습니다. 제가 읽은 기사에 따르면, 이 결과를 분석한 한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현재의 주입식 논술교육이 계속된다면 2008년 입시는 특목고나 강남 학교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합격자 기준 1위를 한 학교는 천안 북일여고였습니다. 응시자만 기준으로 하면 제주여고가 1위였습니다. 이들 학교 학생과 관계자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들 학교 이름을 저는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논술 점수가 가장 높은 학생 2명 역시 천안 북일여고에서 나왔습니다. 송은비 양과 정지윤 양인데, 이들은 기사에서 이구동성으로 “주입식으로 배경지식을 전달하는 논술학원에 잠시 다니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정말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중2 때까지는 주로 신문기사를, 고등학교 때부터는 사설을 빠짐없이 읽었다”, “토론식으로 공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학생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위를 한 천안 북일여고는 학교 방침으로 독서일기를 쓰게 하고 1~2학년 때 시사토론 모임을 갖게 했습니다. 2위를 한 안양 평촌고는 주입식 수업 대신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는 수업을 이끌었습니다. 천안 북일여고의 조신행 선생님은 “1~2학년 학생들이 시사토론 모임을 갖도록 유도하고 토론 경시대회도 열고 있다”고 기사에서 증언합니다.

    이들 학생의 논술 채점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지적도 맥락이 같습니다. “정답을 요구하는 찍어내기식 논술교육은 채점자를 식상하게 하는 답안을 양산할 뿐” 내지는 “지방 학생의 글은 투박해도 문제의식이 살아 있다. 때묻거나 정돈되거나 누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글이 솟아나는 느낌”이라는 지적이 줄을 잇습니다 .

    이 소식을 접하고 제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당연하지!’였습니다. 글은 생각의 반영입니다. 생각이 정돈되어 있고 창의적이면 글도 그렇게 생산됩니다. 거꾸로 천편일률적 사고에 길들여진 생각은 천편일률적인 글만 낳을 뿐입니다. 붕어빵 교육에서는 붕어빵 작문만 나옵니다.

    다시 한 번 토론(Debate)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토론은 정해진 주제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찬반을 나눠 서로 설득하고 반박하는 가운데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불어 퍼블릭 스피치 팀워크(공공 연설), 리서치 실력 등을 키워나가는 최상의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토론을 열심히 하면 논술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를 가장 잘 키울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미주교육신문’이 후원하는 ‘Jumping Brain Youth Debate Club’ 활동이 3년여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활동을 해왔던 학생들의 각종 기록이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오랫동안 ‘Jumping Brain Youth Debate Club’ 활동을 해왔던 학생들의 경우 ‘일반적인 한인 학생들 경향’과 달리 영어 성적도 좋고, 특히 작문시험 성적이 상당히 우수하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토론 활동이 얼마나 다양하게 도움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학생들도 토론을 열심히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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