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진이 최상의 조합을 갖추지 못하면 원톱으로 나설 안정환(뒤)과 조재진이 고립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독일월드컵 조추첨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 팬들은 사상 최고의 조편성이라며 함성을 질렀다. 아프리카에서도 약체로 평가되는 이름조차 생소한 토고가 특히 반가웠지만, 유럽 축구의 변방으로 인식되던 스위스와 한 조라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러나 평가전을 통해 드러난 스위스의 실력은 유럽팀 가운데서도 수준급이었다. 프랑스는 또 어떤가. 늙은 호랑이라고 깎아내릴 수 없는 강호 중의 강호다. 거스 히딩크 호주 감독은 프랑스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스트롱, 스트롱, 스트롱”이라고 답했다.
한국은 프랑스와 스위스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와의 일전(한국 시간 6월19일 새벽 4시)은 16강 진출의 싹을 키우는 데 중요한 경기다.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거두려면 미드필드 싸움에 힘을 집중해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유럽팀과의 미드필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국팀에 포백을 이식했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클로드 마켈렐레, 패트릭 비에이라,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의 미드필드 라인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을용-박지성-김남일로 짜인 한국의 미드필더를 압도한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수비 조직력은 유럽팀 중 최고로 꼽힌다. 첫 상대인 토고의 수비진과는 격이 다르다.
이러한 막강 수비진을 뚫을 최적의 공격수 조합을 찾기 어렵다는 게 아드보카트의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평가전을 거치며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으나 한국의 공격수들이 이름값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스위스 수비 조직력 ‘유럽 최고’아드보카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노르웨이·가나전에서 드러난 스트라이커 고립 현상일 듯싶다. 미드필드진과 측면 공격수의 공간 활용이 원할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스트라이커는 힘을 쓸 수 없다. 최근 네 차례의 평가전에서 드러난 공격의 문제점은 스트라이커로의 골 공급 루트가 봉쇄됐다는 점이다.
스트라이커의 고립은 공격진이 최상의 조합을 갖추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설기현-안정환(조재진)-이천수, 박주영-안정환(조재진)-이천수 라인 모두 스위스, 프랑스의 수비진을 상대하기엔 미흡한 점이 많다. 몸싸움에서는 다소 밀리지만, 탁월한 위치 선정과 감각적인 슈팅 면에서는 태극전사 중 최고란 평가를 받고 있는 원톱 안정환이 유럽팀과의 대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박주영이 아직도 왼쪽 공격수 자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감각적인 볼터치 능력은 보여주고 있지만, 볼 점유율을 높이면서 유기적인 공격을 이끄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멀티플레이어 박지성의 ‘위치’도 아드보카트를 번민하게 했다. 박지성은 포백일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스리백일 때는 측면 공격수로 출격하게 된다.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지성을 반전이 필요할 때 측면 공격수로 돌리는, 이른바 ‘박지성 시프트’는 한국이 가진 비장의 무기다. 유럽리그에서 박지성이 활발한 플레이를 보인 것도 측면 공격수로 출전했을 때였다.
무섭다! 스위스
평가전서 이탈리아 압도 … 힘과 조직력 ‘최상급’
| 스위스는 독일 입성 전 세 차례의 평가전을 치렀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대륙별로 1개 국가씩.
5월28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은 1대 1로 비겼지만 양 팀 모두 팬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훌륭한 경기를 보여줬다.
사실 죽음의 C조에서 16강 진출이 힘들어 보이던 코트디부아르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라는 사실에 모두들 놀라서 스위스의 플레이는 빛이 덜 났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경기 초반 몇 번의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스위스는 전반 중반 이후 경기를 주도해나갔다. 중원의 강한 압박, 큰 키를 이용한 고공 점프, 무엇보다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통한 빠른 공격이 위협적이었다.
스위스의 포백은 마치 모내기를 하듯 간격을 유지하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강한 압박을 하면서 수비선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으로서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경계해야 하지만, 역으로 너무 올라오는 수비의 뒷공간을 노려야 한다는 공략점을 찾았다. 사흘 뒤 이탈리아전은 스위스 평가전의 압권이었다. 이날은 SBS 신문선, 황선홍 해설위원 콤비가 처음으로 입을 맞췄는데 해설을 마친 신 위원은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스위스는 거의 완벽한 축구를 보여줬다. 기동력, 토털사커, 강한 압박을 가하는 체력, 빠른 침투 패스, 두 번째 스트라이커인 기각스와 하칸야킨의 활약 등 모든 면에서 매우 훌륭했다.”
사실 스위스는 이날 경기의 승자나 다름없었다. 스위스는 ‘우승 후보’ 이탈리아를 초반부터 강한 압박으로 밀어붙이며 볼 점유율 및 경기 운영 능력에서 이탈리아를 압도했다.
6월4일 열린 중국과의 마지막 평가전은 후보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마지막 테스트 기회로 삼으면서도 4대 1 대승을 거뒀다. 공격수 프라이와 슈트렐러는 각각 두 골씩 터트리며 절정의 골 감각을 보여줬다. 32개국 가운데 평균 연령이 24.8세로 가장 어린 스위스. 어디서 이러한 조직력과 힘이 나오는 것일까.
스위스 사람들은 단연 쾨비 쿤 감독을 꼽는다. 쿤 감독은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현재의 주축 멤버들을 키워왔다.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보살피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한다.
다른 유럽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확 뛰는 스타가 없어서인지 선수들 간의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도 훌륭하다. 팬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기자는 스위스 대표팀을 취재하면서 팬과 미디어에 대한 선수들의 태도에 여러 번 놀랐다. 코트디부아르전이 끝난 뒤 선제골을 터트린 트랑퀼로 바르네타는 경기장 밖에서 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바르네타는 ‘트랑퀼로!’를 외치는 팬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했다. 팬들은 “오늘 골 대단했어, 축하해!”라며 그를 축하했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도 스위스 선수들은 기자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성의껏 응답한다. 프라이, 베라미, 슈트렐러 등 한국으로 치면 ‘박지성급’ 스타들도 그렇다. 믹스트존에서 자신을 찾는 기자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도망치듯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6월24일 오전 4시(한국 시간) 하노버에서 열리는 한국-스위스전. 최후의 승자는 결국 이 경기에서 가려질 것이다.
■ 바젤·제네바·포이시스베르크·취리히=정재윤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jaeyuna@donga.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