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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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코너가 필요 없는 한국을 꿈꾸며

  • 입력2006-06-14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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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딸아이와 아들 녀석에게 프리즘을 하나씩 사줬습니다. 휴일 오후, 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한 작은 문구점에서였습니다. 프리즘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보다 며칠 전에 들었던 딸아이의 질문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이번 주 ‘프리즘으로 본 세상’엔 또 뭘 쓰지?”라고 지나가는 한 마디를 건넨 것을 놓치지 않은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프리즘이 뭐예요?”라고.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직접 체험케 하는 것이 효과적이란 생각에서 프리즘을 샀습니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얼마나 팔리지 않았던 걸까요? 제조년월이 무려 20년 전인 1986년 3월이었습니다. 도널드 덕이 그려진 포장지엔 제조사가 ‘쫛쫛교재’라고 표기돼 있더군요. 역시나 불량품이었습니다.

    알다시피, 프리즘(prism)은 삼각 유리기둥입니다.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가 찬란하게 펼쳐지지요. 과학용어로는 ‘빛의 분산’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무엇보다 햇빛 속에 숨은 색깔들을 들춰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듭니다. 그것처럼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비판적으로 뜯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코너의 이름에 ‘프리즘’을 갖다 붙였습니다. 그럼에도 혹 그동안 써온 ‘프리즘으로 본 세상’이 마치 잘못 산 프리즘처럼 ‘불량품’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일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뭘 쓰지?” 하는 저의 고민과 무관하게 말입니다.

    여기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입니다. 햇빛보다는 휘황찬란한 인공조명이 더욱 빛을 발하는 곳입니다. 출장길이니만큼 프리즘은 잠시 호주머니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각이 잡힌 삼각 유리기둥을 매일 매만지며, 일주일간 한국 사회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해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불량 프리즘 대신 제대로 된 프리즘부터 사줘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프리즘으로 본 세상’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그러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올인’하는 사람이 널린 한국 사회는 ‘프리즘’을 들이댈 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면서 떠올린 단상(斷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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