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선이 연출한 백화점의 휴식공간.
20세기 버전의 미술가들은 주로 이 전시장을 통해 자신의 체험이 담긴 작품을 예술적 소통의 매개체로 삼고자 했으며, 그 소통이라는 것은 작가가 관람자에게 제시하는 ‘감성적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전시장이란 작가와 감상자의 지위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로 엄격하게 역할이 구분되는 전형적인 모던 패러다임의 공간이다. 김유선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에 균열을 가하는 포스트모던한 작가다.
세간에 떠도는 가장 바보 같은 시각 가운데 하나가 포스트모던을 스타일의 문제로 국한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스타일이 아닌 태도의 문제라는 점을 상기할 때, 김유선이야말로 진정으로 포스트모던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작가다. 그는 원이나 정사각형 같은 평면 위에 자개 조각을 가득 붙여서 독특한 평면 오브제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암전 상황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에 의해 더없이 깊은 숭고미를 전하는 예술적인 물건이었다.
김유선의 매력은 이러한 전시장 플레이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공공미술 작업인 레인보우 프로젝트를 이어왔다는 점에 있다. 그는 하와이로 이민한 한국 할머니들을 찾아가고, 타슈킨트 오지 마을로 가서 아이들을 만나며, 노르웨이 곳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입양아들을 찾아다녔다. 또한 그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불어 넣어주면서 어떤 이념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들을 실현해왔다.
이번 전시는 김유선이 애비뉴엘이라는 명품백화점에서 스페이스 디렉터 역할을 한 결과다. 그는 백화점 전관에 다양한 방법의 작품 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는 광주요 그룹의 브랜드인 ‘자비화’의 이미지들을 따서 자신의 작품과 백화점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했다. 민화 모티프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린 이번 작업은 한국의 전통 자개장에서 자신의 작업을 끌어내온 김유선 독창성의 연장선 상에 있다.
김유선이 재발견해낸 민화 이미지들은 벽지의 문양으로 쓰이기도 하고, 쿠션의 패턴에도 옮겨지며, 은근한 가림막에도 그려졌다. 곳곳에 걸린 평면 자개 작업들과 세련된 민화 이미지는 전방위 예술가로 김유선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식상한 문구로는 그의 격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전통 이미지를 차용해 동시대성을 획득한 포스트모더니스트 김유선. 그의 예술은 갑갑한 장르 구분을 넘어서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디게 만들며,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거처를 옮겨놓고, 전통과 현대의 감성적 단절을 복원하는 탈근대 프로젝트다. 6월30일까지, 애비뉴엘 전관. 02-39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