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국정 현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왼쪽).노 대통령의 FTA 관련 치적을 홍보하는 4월4일자 청와대브리핑.
1. 리더의 생각을 국민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2. 정책 시행에 앞서 여론을 읽은 뒤 리더를 설득한다.
3.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옳은 정책의 추진을 수월하게 한다.
유능한 스핀닥터를 뒀던 인물로는 빌 클린턴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꼽힌다. 클린턴은 르윈스키 스캔들(성추문 사건) 때도 60% 넘는 지지율을 유지했는데, 그의 장점을 적재적소에 부각한 스핀닥터들의 공이 컸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공보수석으로 일한 앨라스테어 캠벨은 부정적 스핀닥터의 전형이다. 그는 내각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장관과 의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의 뜻을 전하려면 강력한 주먹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홍보 철학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스핀닥터로 불린 앨라스테어 캠벨(왼쪽).
그렇다면 스핀닥터의 대표적인 악기능은 뭘까?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언론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킨다.
2. 홍보 업무에만 머무르지 않고 온갖 일에 간섭하는 월권을 저지른다.
3.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안을 왜곡하거나 조작한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참모들은 어떤가. 그들은 과연 유능한 홍보참모(혹은 스핀닥터)인가. 노 대통령의 지지율로만 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지난해 12월14일자 ‘경향신문’의 보도를 톺아보자.
“대통령 뜻인가, 자기 생각인가. 청와대 참모들의 공세적 언행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숨은 조력자여야 할 청와대 비서진이 정부 홍보와 언론대책, 당청갈등의 최전선에 뛰어들면서 국정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보도는 청와대 홍보라인의 Y 비서관이 “하이에나 행태로는 정론지가 못 된다”면서 ‘경향신문’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한 뒤 나온 것이다.
대통령 참모들은 ‘불량식품’ 운운하면서 신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언론을 향해 ‘강력한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청와대 참모들의 잘못된 홍보전략 때문에 대통령이 듣지 않아도 될 욕까지 듣고 있다”고 꼬집는다.
스핀닥터를 연상케 하는 홍보참모들의 행태의 중심엔 2003년 3월부터 발행한 ‘청와대브리핑’이 있다. 인터넷신문 격인 이 매체는 청와대 소식지 형태에 대안(代案)언론적 성격이 덧붙여져 있다. PCRM(정책고객서비스)에 등재된 16만명과 홈페이지 등록 시 요청한 26만명에게 e메일로 전송된다고 한다.
3월23일 청와대브리핑 홈페이지엔 실명을 거론하며 ‘특정 기자’를 공격하는 글이 실렸다. 한 대목을 읽어보자.
“직업적 전문성은커녕 오로지 얄팍한 글재주 하나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쭛쭛일보 기자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신문의 정치부 기자라면 그 업(業)이 더욱 쉬워 보인다.”
청와대가 만드는 매체에 오른 글이라고 여기기엔 품위가 크게 떨어진다. 명예를 훼손한 측면도 있다. 문제의 글은 홍보수석실의 한 행정관이 쓴 글에 Y 비서관이 가필했다고 한다.
실명 거론하며 특정기자 공격하기도
노 대통령과 홍보참모들에게 언론은 일종의 적(敵)인 듯싶다. 노 대통령은 1월4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300여 명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제가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 상대들이 누구인지…. 그렇죠, (언론에) 찍힌 거죠”라며 “제가,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비서실은 왜 청와대브리핑을 만드는가. 2003년 3월3일 창간호에 그 발행 목적이 설명돼 있다. 잠시 읽어보자.
“대통령비서실이 청와대브리핑을 발행하기로 한 것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상황에 관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투명한 국정을 실천해 국민과 함께하는 참여정부의 진면목을 드러내보이기 위해서다.”
청와대브리핑의 창간 취지가 바르다는 데는 이견(異見)을 달기 어렵다. 또 설익은 보도와 오보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창간호부터 669호(3월19일 발행)까지의 청와대브리핑을 분석한 김희정 의원(한나라당)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청와대브리핑은 그 이름을 바꿔야 한다. 언론, 야당과 싸우자는 브리핑이다. 칼럼에서의 인신공격, 저질발언이 특히 문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김 의원에 따르면 청와대브리핑 총 669호 중 42.8%인 286호에 언론 비판 기사(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이나 반론 및 정정보도 요청 등)가 실렸다. 야당 비판 기사가 실린 것은 79호(11.8%). 두 호에 한 번꼴로 언론 혹은 야당을 꼬집은 셈이다. 몇몇 기사의 제목을 살펴보자.
‘총선 우물에 빠진 개구리언론’(229호)
‘가출한 박 대표. 안 말리는 조선, 동아’(583호)
‘오보, 왜곡, 마타도어. 신문인지, 정보지(찌라시)인지’(512호)
‘톱거리가 없으면, 차라리 백지를 내라’(621호)
언론 비판이 한동안 주춤하는가 싶더니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가세다. 대선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2006년 7월부터 현재(3월19일)까지 43호가 발간됐는데 그중 72%(31호)에 언론과 야당에 대한 비판 기사가 게재됐다.
“청와대브리핑이 참여정부의 진면목을 드러내기는커녕 내 편, 네 편으로 나눠 소모적인 분쟁만 일으키고 있다. 장외투쟁을 하는 야당대표에게 ‘가출했다’고 하거나, 언론을 ‘개구리’라고 부르는 등 자극적인 언어로 싸움을 걸고 있다. 동아, 조선, 중앙, 문화를 4대 보수신문이라고 칭하면서 그들이 과거에 쓴 기사를 하나하나 찾아내 그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다. 언론과 야당에 대한 공격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금 늘고 있다.”(김희정 의원)
노 대통령 참모들은 청와대브리핑에 ‘정치 칼럼’에 가까운 글도 쓴다. 청와대브리핑에선 노 대통령의 치적보다 참모들의 칼럼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홍보참모들의 행태와 댓글이 뉴스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청와대에 유능한 스핀닥터 없다”
이백만 대통령홍보특보는 지난해 11월 청와대브리핑에 ‘지금 집을 사면 낭패’라는 글을 올린 뒤 언론을 통해 20억원대 강남 아파트 보유 사실이 알려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홍보수석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홍보참모들이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띄운 ‘부동산 버블세븐’이란 용어는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일부 건설교통부 관계자들은 버블세븐이라는 자극적 표현에 당황했다고.
최근 청와대브리핑은 야당 흠집내기 도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국내 정치 관련 기사(칼럼)로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민생 외치는 한나라당의 부끄러운 365일’(662호) ‘인질정치를 끝내야 한다’(667호) ‘정형근 의원님 그것밖에 안 됩니까’(669호) 등의 꼭지가 대표적이다. 청와대브리핑의 창간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청와대브리핑은 고건 전 총리와 손학규 전 경기지사 때리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노 대통령과 고 전 총리의 설전이 벌어졌을 때 “고 전 총리가 그렇게 신속하고 명백하게 어떤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을 이전에 본 일이 없다. 경솔하다 싶은 언행은 더욱 본 적이 없다”고 비꼬았으며, 3월21일엔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비판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경우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고 정치인으로서의 지도력과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몰락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모두(冒頭)의 논의로 돌아가보자. 노 대통령의 홍보참모들은 과연 스핀닥터인가. 경희대 김민전 교수(정치학)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노 대통령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청와대엔 스핀닥터가 없는 것 같다. 유능한 스핀닥터가 있었다면 홍보전략이 이 모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브리핑은 정책을 설명하고 통합을 지향한다기보다 갈등을 부추기고 논쟁을 만드는 모습이다. 청와대 밖의 운동가들이 할 법한 일을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선 제대로 된 홍보가 이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