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 입단한 이병규(33·외야수)는 참 독특한 선수다. 컨디션이 좋을 때 그는 정말 좋은 타자다. “어쩜 저렇게 잘 칠 수 있을까”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도 빠르고 수비 범위도 넓다. 그럴 때는 ‘야구 천재’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일본 야구 도전에 실패 예상한 야구인 많아
그런데 어떨 때 보면 그저 평범한 선수 같다. “선수도 아니다”라는 평을 들을 때도 있다. 왼손 투수의 바깥쪽으로 빠지는 변화구에 연신 헛스윙을 할 때면 이름값이 아까울 정도다.
그는 가끔 불성실하게 플레이하는 것 같다. 또 어떤 날은 최선을 다해 뛰는 듯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생각을 아주 많이 하면서 플레이를 할 때도 있다.
인간적으로도 그렇다. 그는 상당히 무뚝뚝해 보이지만, 농담도 잘하고 분위기를 띄울 줄도 안다. 친구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아주 많다.
2003년 그의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신부 측 친구도 많은 편이었지만 이병규의 친구가 무척 많았다. 결국 신부 측 친구들이 계속 자리를 지킬 동안 신랑 측 친구들은 세 번이나 바꿔가며 사진촬영을 마쳤다.
지난해 말 이병규가 10년간 몸담았던 서울 LG를 떠나 일본 주니치로 간다고 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몇몇은 성공 가능성을 점쳤다. 이병규가 한국에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펼쳐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실패를 예상했다. 일본통인 김성근 SK 감독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복이 심한 이병규의 특징 때문이다.
이병규의 타격 자세는 기본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는 타격을 할 때 극단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린다. 일본 투수들은 한국 투수들보다 제구력이 좋고 변화구가 훨씬 뛰어나다. 공을 끝까지 보고 뒤에서 치지 않으면 제대로 공략하기 힘든 공을 던진다.
그 대신 이병규는 공을 맞히는 재주 하나만큼은 타고났다. 이병규 자신도 “방망이에 공을 맞히는 것은 자신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 역시 여기엔 이견이 없다.
몸 상태가 아주 좋을 때 그는 높은 공이든 낮은 공이든, 직구든 변화구든 가리지 않고 안타로 만들어낸다. 약점으로 지적되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공이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 타격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공을 정확히 때려 안타로 연결한다.
개막전부터 매경기 연속안타 행진 ‘성공적 출발’
문제점 있는 타격 자세로도 그는 통산 타율 0.312를 기록했다. 3할 이상을 여섯 번 쳤고 타격왕 한 번, 최다안타 타이틀은 네 번이나 차지했다.
일본 진출이 확정됐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타격 자세를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하던 대로 치겠다”고 했다. 섣불리 자세를 바꾸기보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의미였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감독은 이병규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오치아이 감독 자신부터가 타격 자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오치아이는 현역 시절 온 힘을 다해 밑에서 위로 올려치는 독특한 타격 자세를 갖고 있었다. 1979년 일본 롯데에 입단하자마자 당시 감독에게 “그런 타격 자세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그러나 오치아이는 끝까지 자신의 타격 자세를 고수했고, 통산 타율 0.311에 510홈런을 때린 대타자가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병규는 감독과의 궁합이 상당히 잘 맞는다.
이병규는 시범 경기에서 타율 0.204(49타수 10안타)로 부진했다. 삼진은 14개나 당했다. 자칫 2군행을 걱정해야 할 성적이었다.
그러나 캠프 때부터 “한국에서 하던 대로만 하라”던 오치아이 감독은 주저 없이 이병규를 주전으로 낙점했고, 3월30일 야쿠르트와의 개막전부터 5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시켰다. 이병규는 시즌 초 경기마다 안타를 쳐내며 오치아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병규는 기회만 꾸준히 주어진다면 최소한 자기 몫은 하는 선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때는 목표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이병규는 큰 무대인 일본 무대를 앞두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4할을 칠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재능에 노력까지 보태졌으니,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될 듯싶다.
일본 야구 도전에 실패 예상한 야구인 많아
그런데 어떨 때 보면 그저 평범한 선수 같다. “선수도 아니다”라는 평을 들을 때도 있다. 왼손 투수의 바깥쪽으로 빠지는 변화구에 연신 헛스윙을 할 때면 이름값이 아까울 정도다.
그는 가끔 불성실하게 플레이하는 것 같다. 또 어떤 날은 최선을 다해 뛰는 듯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생각을 아주 많이 하면서 플레이를 할 때도 있다.
인간적으로도 그렇다. 그는 상당히 무뚝뚝해 보이지만, 농담도 잘하고 분위기를 띄울 줄도 안다. 친구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아주 많다.
2003년 그의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신부 측 친구도 많은 편이었지만 이병규의 친구가 무척 많았다. 결국 신부 측 친구들이 계속 자리를 지킬 동안 신랑 측 친구들은 세 번이나 바꿔가며 사진촬영을 마쳤다.
지난해 말 이병규가 10년간 몸담았던 서울 LG를 떠나 일본 주니치로 간다고 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몇몇은 성공 가능성을 점쳤다. 이병규가 한국에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펼쳐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실패를 예상했다. 일본통인 김성근 SK 감독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복이 심한 이병규의 특징 때문이다.
이병규의 타격 자세는 기본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는 타격을 할 때 극단적으로 몸이 앞으로 쏠린다. 일본 투수들은 한국 투수들보다 제구력이 좋고 변화구가 훨씬 뛰어나다. 공을 끝까지 보고 뒤에서 치지 않으면 제대로 공략하기 힘든 공을 던진다.
그 대신 이병규는 공을 맞히는 재주 하나만큼은 타고났다. 이병규 자신도 “방망이에 공을 맞히는 것은 자신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 역시 여기엔 이견이 없다.
몸 상태가 아주 좋을 때 그는 높은 공이든 낮은 공이든, 직구든 변화구든 가리지 않고 안타로 만들어낸다. 약점으로 지적되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공이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 타격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공을 정확히 때려 안타로 연결한다.
개막전부터 매경기 연속안타 행진 ‘성공적 출발’
문제점 있는 타격 자세로도 그는 통산 타율 0.312를 기록했다. 3할 이상을 여섯 번 쳤고 타격왕 한 번, 최다안타 타이틀은 네 번이나 차지했다.
일본 진출이 확정됐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타격 자세를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하던 대로 치겠다”고 했다. 섣불리 자세를 바꾸기보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의미였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감독은 이병규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오치아이 감독 자신부터가 타격 자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오치아이는 현역 시절 온 힘을 다해 밑에서 위로 올려치는 독특한 타격 자세를 갖고 있었다. 1979년 일본 롯데에 입단하자마자 당시 감독에게 “그런 타격 자세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그러나 오치아이는 끝까지 자신의 타격 자세를 고수했고, 통산 타율 0.311에 510홈런을 때린 대타자가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병규는 감독과의 궁합이 상당히 잘 맞는다.
이병규는 시범 경기에서 타율 0.204(49타수 10안타)로 부진했다. 삼진은 14개나 당했다. 자칫 2군행을 걱정해야 할 성적이었다.
그러나 캠프 때부터 “한국에서 하던 대로만 하라”던 오치아이 감독은 주저 없이 이병규를 주전으로 낙점했고, 3월30일 야쿠르트와의 개막전부터 5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시켰다. 이병규는 시즌 초 경기마다 안타를 쳐내며 오치아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병규는 기회만 꾸준히 주어진다면 최소한 자기 몫은 하는 선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때는 목표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이병규는 큰 무대인 일본 무대를 앞두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4할을 칠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재능에 노력까지 보태졌으니,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