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의 ‘더뷰’.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트렌드세터라기보다 유행 선도자다. 트렌드가 반짝하는 유행을 넘어선 긴 흐름의 추세라는 점에서 볼 때 새로운 컨셉트의 의상이나 액세서리가 중·장기적 트렌드를 이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유행이 흘러나오는 진원지 구실을 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소비권력 ‘트렌드세터’ 생활양식 변화 주도
미국의 사회학자 애버릿 로저스는 사람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어떤 사람은 신제품 라면이 나오기만 하면 반드시 사서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삼양라면이든 신라면이든 한 번 마음에 들면 끝까지 고수한다. 그중 트렌드세터와 연관 있는 그룹은 당연히 신제품이 나오면 꼭 사서 먹어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라고 부른다. 얼리어답터는 신선한 것에 늘 끌리는 사람들이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실천가들이며, 대중이 자신의 시도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얼마나 환호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리더들이다. 이렇게 보면 트렌드세터는 얼리어답터들 가운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얼리어답터들인 셈이다.
그런데 명망 있는 특정 개인을 넘어서 집단 혹은 얼리어답터들이 모이는 장소가 트렌드세터 구실을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서울 압구정동에 새로 생긴 한 클럽은 한국의 파티문화를 선도하는 장소로 트렌드세터 구실이 기대된다. 1000여 평 규모의 이 클럽은 와인 한 잔에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고,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책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최근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도 트렌드세터 구실을 하고 있다. 브런치(Brunch)란 아침과 점심의 합성어로 미국 뉴요커들이 즐기던 음식문화인데, 지난해부터 브런치 레스토랑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올해엔 폭넓게 번지고 있다. 이국적 메뉴, 정규 식사시간에서의 이탈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은 이 새로운 문화에 빠져든 얼리어답터들이 모여듦으로써 트렌드세터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대중문화 스타들이 유행의 선도자 구실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대중문화의 인기 스타들만이 트렌드세터 구실을 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남보다 앞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 즉 얼리어답터들이 그들만의 공간과 시간을 창출하며 트렌드세터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세터는 한두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이며, 새로운 권력자 계층이 되고 있다. 크게 보면 자본주의 생활양식의 변화를 주도하는 권력이 생산자들에서 소비자로 이전된 결과이고, 작게 봐도 소비자의 능동성이 비즈니스의 풍경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변화의 바람이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 알고 싶다면, 이제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포진한 트렌드세터들을 찾아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