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의 백넘버를 칠해놓은 승용차. 백넘버엔 숫자 이상의 아우라가 있다.
백넘버는 바로 그런 것이다. 숫자 이상의 매혹적인 아우라가 있다. 축구에서 백넘버가 등장한 것은 1933년의 일. 그해 12월22일 잉글랜드 FA컵 결승전. 에버튼은 1번에서 11번까지, 맨체스터 시티는 12번에서 22번까지 달았다(참고로 야구는 1929년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처음 달았다). 그 후 전술의 변화가 다양해지고 한 팀에 30명 안팎이 활동하면서 백넘버에 효율적인 기능과 상징성이 더해졌다.
공격수들의 영원한 상징은 10번. 펠레, 마라도나, 마테우스, 토티, 지단 등 천재들 차지였다. K리그에서도 10번의 상징은 상당히 커서 박주영 이천수가 이 번호를 달았고, 7년 만에 복귀한 안정환과 침체를 딛고 선 고종수도 10번이다. 팀의 간판 공격수임을 10이라는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다. 특이하게는 크루이프가 14번을 달았고, 클린스만은 영국에서 뛰면서 농구 선수들이나 쓸 법한 33번을 달았다. 황선홍(18번), 홍명보(20번)처럼 남들이 기피하는 번호를 자신의 영원한 상징으로 남긴 선수도 많다.
백넘버 10번은 간판 공격수의 상징
자신만의 번호를 향한 신경전도 있다. 줄곧 20번을 달았던 홍명보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와일드 카드로 난생처음 14번을 받은 일이 있다. 최종 엔트리 18명은 18번까지만 달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14번을 받았는데 끝내 허벅지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열린 아시안컵대회 때도 14번을 배정받자 홍명보는 후배 이동국의 번호(사실 홍명보가 오랫동안 달았던) 20번으로 교체해 달았고 그제야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백넘버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영구 결번(Retired Number)’ 제도다. 국가대표팀 경기의 경우 엔트리 23명이 1번에서 23번까지 달아야 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 때문에 축구에서는 영구 결번이 흔하지 않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마라도나를 기념해 그의 번호 10번을 결번시키려 했지만 FIFA의 반대에 부딪혔다. 지금은 그 10번을 마술사 리켈메가 달고 있다.
최근 국내 리그에서는 영구 결번을 둘러싼 씁쓸한 소식이 있었다. 옛 ‘부산 대우’ 시절의 부산 아이파크는 김주성 선수의 16번을 영구 결번시켜 지금도 유지하고 있으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신성 송종국의 번호 24번을 결번시켰을 때 ‘팀 생활 2년도 안 된 선수에게 영구 결번을 배려하는 것은 마케팅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 한정화 선수에게 24번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구 결번의 의미가 희석돼서는 곤란하다. 백넘버, 그것은 선수의 상징이요 팬의 사랑이며 팀의 영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