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이 강원도 낙산사를 찾은 것은 추위가 채 가시기 전인 3월7일 저녁. 당 대외협력위원장인 이 의원이 밤길을 마다 않고 낙산사를 찾은 것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을 막기 위한 일종의 ‘비방(秘方)’이었다. 이 의원은 “손 전 지사의 탈당 행로가 낙산사 주지인 정념스님과 연결돼 있다”는 당 내외 정보를 오래전부터 접해온 터였다.
어둠이 내린 산사, 손님을 맞은 정념스님은 부드러웠다. 그는 ‘정치’와 연이 많아 보였다. 낙산사 화재 후 현장을 찾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맺은 연,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라’는 조언을 전달한 얘기 등을 술술 풀어놓았다. 손 전 지사에 대해서도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손 전 지사가 얼마 전 찾아왔었다. 좋은 (정치) 재목인데…. 한나라당 안에서 개혁적인 모습으로 경선에 나서라고 격려했다.”
이 의원 측은 정념스님의 이 발언을 ‘의전용’이라고 판단했다. 이 의원은 “손 전 지사가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산사를 나섰다.
손학규 탈당에도 역술인 입김 작용설
한나라당의 ‘전령’ 이 의원이 ‘손학규 탈당’을 막기 위해 낙산사를 방문한 8일 후(3월15일), 우려했던 대로 손 전 지사가 낙산사를 찾았다. 고뇌하던 손 전 지사는 며칠 뒤 홀연히 당을 나와 ‘제 갈 길’을 떠났다.
탈당하는 손 전 지사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나라당 인사들은 최근 그의 또 다른 탈당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손 전 지사의 사주가 한나라당과 맞지 않아 탈당할 수밖에 없다’는 역술-역학 풀이와 관련한 것으로, 이 논란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유도하기 위해 ‘천기(天氣)’가 동원됐다는 얘기로 확대 해석된다.
저간의 사정에는 ‘영(靈)능력자’로 알려진 차길진(59) 후암문화공간 대표법사가 등장한다. 그는 손 전 지사와 지속적으로 접촉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친분은 손 전 지사의 측근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손 전 지사 캠프의 한 관계자는 “차 법사는 손 전 지사에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끼여 뜻을 펼치기 어렵다는 견해를 전달했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말했다.
차 법사는 물론 이런 얘기를 부인한다. 차 법사는 4월5일 전화통화에서 “그분이 어디 내 말을 들을 사람인가”라며 소문을 부인했다.
손 전 지사의 ‘결단’을 이끌어낸 역술과 역학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월 초, 소설가 황석영 씨가 진로를 놓고 고심하던 손 전 지사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프랑스에서 만난 유명 역술가를 통해 본 손 전 지사의 ‘대선운(運)’을 전달했다고 한다. 저명한 점성술가로 알려진 이 인사는 ‘손 전 지사는 올 6월이면 대운이 펼쳐진다’는 점괘를 내놓았다고 한다.
손 전 지사 측의 이수원 공보특보는 이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고 부인했다. 물론 손 전 지사가 역술인의 말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탈당을 둘러싼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손 전 지사 주변에 역술과 역학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대선주자 진영도 마찬가지다.
이 전 서울시장의 핵심 측근인 M씨. 그는 지난 연말 좋아하는 술을 끊었다. 이 전 시장에게서 수시로 ‘술을 줄이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뚝심으로 버티던 그가 금주 결단을 내린 것은 남산에 사는 한 역술인의 따끔한 충고 때문이었다.
후보의 엉뚱한 사주 들고 역술인 찾기도
지난 연말 남산을 찾은 M씨에게 할머니 역술인은 대뜸 ‘손바닥을 내라’고 요구했다. M씨가 손바닥을 내밀자 역술인은 느닷없이 대나무로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서너 대를 맞은 M씨의 얼굴이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그런 그에게 역술인이 불호령을 내렸다.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이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고 다니느냐.”
적극적인 역술인들은 대선주자의 캠프를 찾아 자신의 ‘영적 능력’을 살 것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1월 초, 최고 역술인으로 알려진 R씨가 박 전 대표의 측근 J씨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R씨가 갑자기 J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해가지고 선거에 나서겠다고? 갈수록 기(氣)가 약해져.”
R씨의 느닷없는 공격에 당황한 J씨는 해결책이 뭔지 물었다. R씨는 자신이 만든 비방을 사무실 은밀한 곳에 보관하라고 일렀다. 부적과 비방을 만드는 데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상황이었다. J씨는 “윗사람들과 상의한 후 다시 찾겠다”고 말한 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천기란 누설되면 효력을 잃는다. 그러나 요즘 이런 원칙은 중요하지 않다. 웬만한 역술가는 공개적으로 ‘찍기’에 나선다. 심진송 씨의 경우는 2007년 대권 주인공으로 “손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예언했다.
한국의 선거문화는 철저하게 승자 독식구조다. 한번 선택이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이런 정치문화는 정치인들의 극심한 눈치보기를 부른다. 영남권 출신 A 의원. 그는 연초 보좌관을 통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사주를 모두 파악했다. 이 사주를 들고 서울 인근의 모 역술가를 찾았다. ‘특정 후보가 천기를 머금고 있다’는 역술인의 말에 자신의 정치공학적 판단을 더한 A 의원은 1월 중순 그 후보의 캠프에 자신을 의탁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보좌관의 심정은 착잡하다. 보좌관 B씨의 설명이다.
“그 역술인을 통해 줄서기에 나선 현역 의원이 3명은 넘는 것 같다. 그 의원들의 측근(보좌관)들과 밥을 먹으면서 각자 쥐고 있던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사주를 확인해보니 모두 다르더라. ‘영감’에게 보고할 수도 없고….”
점술은 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잘 나오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점괘라면 한쪽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균형감각을 갖기 힘들다. 그들은 역술인의 말 한마디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역술가들은 이런 흐름을 타고 이미 정치의 중심에 발을 들여놓았다. 바야흐로 ‘점치는 선거’가 시작되고 있다.
어둠이 내린 산사, 손님을 맞은 정념스님은 부드러웠다. 그는 ‘정치’와 연이 많아 보였다. 낙산사 화재 후 현장을 찾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맺은 연,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라’는 조언을 전달한 얘기 등을 술술 풀어놓았다. 손 전 지사에 대해서도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손 전 지사가 얼마 전 찾아왔었다. 좋은 (정치) 재목인데…. 한나라당 안에서 개혁적인 모습으로 경선에 나서라고 격려했다.”
이 의원 측은 정념스님의 이 발언을 ‘의전용’이라고 판단했다. 이 의원은 “손 전 지사가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산사를 나섰다.
손학규 탈당에도 역술인 입김 작용설
한나라당의 ‘전령’ 이 의원이 ‘손학규 탈당’을 막기 위해 낙산사를 방문한 8일 후(3월15일), 우려했던 대로 손 전 지사가 낙산사를 찾았다. 고뇌하던 손 전 지사는 며칠 뒤 홀연히 당을 나와 ‘제 갈 길’을 떠났다.
탈당하는 손 전 지사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나라당 인사들은 최근 그의 또 다른 탈당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손 전 지사의 사주가 한나라당과 맞지 않아 탈당할 수밖에 없다’는 역술-역학 풀이와 관련한 것으로, 이 논란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유도하기 위해 ‘천기(天氣)’가 동원됐다는 얘기로 확대 해석된다.
저간의 사정에는 ‘영(靈)능력자’로 알려진 차길진(59) 후암문화공간 대표법사가 등장한다. 그는 손 전 지사와 지속적으로 접촉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친분은 손 전 지사의 측근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손 전 지사 캠프의 한 관계자는 “차 법사는 손 전 지사에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끼여 뜻을 펼치기 어렵다는 견해를 전달했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말했다.
차 법사는 물론 이런 얘기를 부인한다. 차 법사는 4월5일 전화통화에서 “그분이 어디 내 말을 들을 사람인가”라며 소문을 부인했다.
3월16일 손학규 전 지사가 낙산사를 방문해 정념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손 전 지사 측의 이수원 공보특보는 이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고 부인했다. 물론 손 전 지사가 역술인의 말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탈당을 둘러싼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손 전 지사 주변에 역술과 역학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대선주자 진영도 마찬가지다.
이 전 서울시장의 핵심 측근인 M씨. 그는 지난 연말 좋아하는 술을 끊었다. 이 전 시장에게서 수시로 ‘술을 줄이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뚝심으로 버티던 그가 금주 결단을 내린 것은 남산에 사는 한 역술인의 따끔한 충고 때문이었다.
후보의 엉뚱한 사주 들고 역술인 찾기도
지난 연말 남산을 찾은 M씨에게 할머니 역술인은 대뜸 ‘손바닥을 내라’고 요구했다. M씨가 손바닥을 내밀자 역술인은 느닷없이 대나무로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서너 대를 맞은 M씨의 얼굴이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그런 그에게 역술인이 불호령을 내렸다.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이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고 다니느냐.”
적극적인 역술인들은 대선주자의 캠프를 찾아 자신의 ‘영적 능력’을 살 것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1월 초, 최고 역술인으로 알려진 R씨가 박 전 대표의 측근 J씨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R씨가 갑자기 J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해가지고 선거에 나서겠다고? 갈수록 기(氣)가 약해져.”
R씨의 느닷없는 공격에 당황한 J씨는 해결책이 뭔지 물었다. R씨는 자신이 만든 비방을 사무실 은밀한 곳에 보관하라고 일렀다. 부적과 비방을 만드는 데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상황이었다. J씨는 “윗사람들과 상의한 후 다시 찾겠다”고 말한 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천기란 누설되면 효력을 잃는다. 그러나 요즘 이런 원칙은 중요하지 않다. 웬만한 역술가는 공개적으로 ‘찍기’에 나선다. 심진송 씨의 경우는 2007년 대권 주인공으로 “손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예언했다.
한국의 선거문화는 철저하게 승자 독식구조다. 한번 선택이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이런 정치문화는 정치인들의 극심한 눈치보기를 부른다. 영남권 출신 A 의원. 그는 연초 보좌관을 통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사주를 모두 파악했다. 이 사주를 들고 서울 인근의 모 역술가를 찾았다. ‘특정 후보가 천기를 머금고 있다’는 역술인의 말에 자신의 정치공학적 판단을 더한 A 의원은 1월 중순 그 후보의 캠프에 자신을 의탁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보좌관의 심정은 착잡하다. 보좌관 B씨의 설명이다.
“그 역술인을 통해 줄서기에 나선 현역 의원이 3명은 넘는 것 같다. 그 의원들의 측근(보좌관)들과 밥을 먹으면서 각자 쥐고 있던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사주를 확인해보니 모두 다르더라. ‘영감’에게 보고할 수도 없고….”
점술은 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잘 나오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점괘라면 한쪽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균형감각을 갖기 힘들다. 그들은 역술인의 말 한마디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역술가들은 이런 흐름을 타고 이미 정치의 중심에 발을 들여놓았다. 바야흐로 ‘점치는 선거’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