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박람회장 한 구석에 자리한 전통주 섹션에는 지인 정도만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올해 전통주 섹션은 박람회장 중앙을 당당하게 차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0분 줄 서서 전통주 시음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0 서울국제주류박람회’의 전통주 섹션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명욱]
전통주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5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하지만 존재감은 확 달라졌다. 전통주 점유율이 25%에서 40%로 커졌다. 박람회장 거의 절반이 전통주와 한국 와인으로 꽉 채워져 마치 전통주 축제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무적인 대목은 수입 술은 줄고 전통주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상당수 관람객이 사전에 미리 알고 찾아왔다는 점이다. 총 방문자는 2만3000여 명. 이는 지난해 대비 10% 감소한 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외출 자제, 마스크 착용, 동시 입장 제한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흥행 면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또 관람객 대부분이 20, 30대라는 점도 눈에 띈다. 밀레니얼 세대가 전통주에 관심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전통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렌디하게 즐기는 무감미료 약주, 장기 숙성 막걸리, 크래프트 막걸리,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증류식 소주, 국산 허브를 넣어 만든 국산 드라이 진, 국내 재배한 포도로 담근 한국 와인….
‘2020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 나온 다양한 전통주 제품. [명욱]
결과적으로 전통주는 한국 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료, 숙성 기간, 제조 방법, 지역 농산물 사용 등 세계 유명 주류가 가진 특성에 계속 도전하기에 질적 성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주 구독자도 3배 늘어
[GETTYIMAGES]
양조장 창업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는 점도 전통주 산업을 주목하게 한다. 과거 양조장을 세우려면 시설 및 설비가 상당한 규모여야 했다. 지금은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가 있으면 13~16㎡(약 4~5평)짜리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특산주 면허만 받으면 인터넷 판매가 가능하다. 즉 전통주는 기획력과 제품력만 있으면 도전해볼 만한 비즈니스가 됐다. 요식업계도 전통주를 취급하면 다른 식당과 차별화가 가능해 개성 있는 전통주를 적극적으로 물색하는 분위기다.
‘전통주 부흥’에 정부도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사)한국술연구소를 통해 우리 술 관련 콜센터인 ‘우리술지원센터’를 내년 2월까지 운영한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대표는 물론 예비창업자, 스타트업 관계자, 업계 종사자 등도 전통주 산업과 관련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도 맛집 정보에서부터 막걸리와 동동주의 차이, 양조장 체험 방법, 혼술·홈술에 좋은 전통주 추천 및 구입처 등을 알려준다. 조만간 전통주는 아니지만 국산 수제맥주 관련 질문도 접수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만큼 국내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렵다 해도, 결국 어디선가 소비는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시사점을 준다. 해외 주류가 국내로 들어오기 힘든 지금이야말로 우리 술이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전통주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국산 소비가 늘어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