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핑크’ 제니의 ‘만트라(Mantra)’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노란색 쉐보레 노바 70s 차량. 제니는 금발 머리로 등장해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감성을 물씬 풍긴다. 유튜브 채널 JENNIE 캡처
복고풍 차량과 스타일 맞춘 ‘만트라’ 제니
‘만트라’ 뮤직비디오에는 노란색 쉐보레 노바 70s 차량도 등장한다. 1970년대 미국 자동차 문화를 상징하는 복고풍 매력의 차량과 함께 등장한 제니는 이번엔 차량 외장색과 같은 금발 머리다. 이외에도 드로리언 DMC-12와 빨간색 대형 트럭 같은 각기 다른 스타일의 차량이 등장할 때마다 제니는 그에 맞춰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K팝 뮤직비디오는 철저하게 기획된 종합예술이다. 허투루 등장하는 이미지가 없다. 소품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다. 빈티지 차량을 주요 연출 요소로 활용할 때도 각 차량이 지닌 시대적 의미와 상징성을 활용해 깊이 있는 시각적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블랙핑크가 2020년 발표한 ‘러브식 걸스(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에는 1975년식 핑크색 올즈모빌 델타 88 로열 컨버터블이 등장한다. 1970년대 미국산 컨버터블에 담긴 자유와 해방 이미지는 멤버들이 도심을 벗어나 질주하는 장면에 깊이를 더했다. 또 블랙핑크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튼튼하기로 유명한 1990년대 볼보 940 세단을 해머로 부수는 장면을 연출해 사랑의 아픔과 감정적 붕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3월 솔로 활동을 시작한 걸그룹 ‘있지(ITZY)’ 멤버 예지의 ‘에어(Air)’ 뮤직비디오에는 붉은색 3세대 쉐보레 코르벳이 등장한다. 1974년 이후 생산된 후기형 모델로 보이는데, 길고 낮은 차체와 특유의 곡선미가 두드러진다. ‘에어’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예지는 쉐보레 코르벳 보닛을 무대 삼아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때 카메라가 차량 내외부를 오가며 보닛의 입체감과 날렵한 전면, 빈티지한 감성의 후면 등을 빠짐없이 보여준다. 예지의 세련되면서도 레트로한 패션이 1970년대 미국 스포츠카 이미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이 뮤직비디오의 볼거리다.

‘(여자)아이들’ 민니의 ‘허(HER)’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포드 머스탱 1세대 쿠페. 고풍스러우면서도 자유로운 멋이 느껴진다. 유튜브 채널 (G)I-DLE 캡처
의상·세트와 함께 통일된 미장센 형성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민니의 솔로 곡 ‘허(HER)’ 뮤직비디오에는 포드 머스탱 1세대 쿠페가 등장한다. 머스탱은 젊음과 자유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허’ 뮤직비디오는 이 차가 붉은 벽돌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어 차량과 같은 색으로 1960년대 스타일의 의상을 입은 민니가 등장해 차량에 탑승하면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크롬 디테일이 반짝이는 머스탱과 따뜻한 색조의 촬영 기법이 조화를 이뤄 자유로우면서도 고풍스러운 감각을 극대화했다.
걸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쉬(Whiplash)’ 뮤직비디오에서 카리나는 드로리언 DMC-12를 직접 운전한다. 1980년대 SF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해 유명해진 모델로, 미래적인 디자인 덕분에 사이버펑크 스타일의 아이콘으로도 평가받는 차다. 카리나의 드라이빙 장면에서는 블루와 실버톤의 네온 조명이 차체를 감싸며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에스파의 또 다른 뮤직비디오 ‘슈퍼노바(Supernova)’에는 BMW 5시리즈(E34)가 충격적으로 등장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카리나가 이 클래식한 비즈니스 세단 지붕과 충돌하는 것이다. 찌그러진 차체를 부각하며 시작하는 뮤직비디오는 곡의 강렬한 느낌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여자)아이들’의 ‘톰보이(Tomboy)’ 뮤직비디오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재규어 XJ 모델이 등장한다. 광택이 흐르는 빨간색 외장에 4개의 원형 헤드라이트와 수직 슬랫이 들어간 라디에이터 그릴이 눈에 띈다. 후드 끝에 재규어 엠블럼이 솟아 있어 클래식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톰보이’ 뮤직비디오는 깊은 밤 주유소를 배경으로 하는데, 후반부에 차량 폭발 장면을 삽입해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많은 K팝 뮤직비디오에서 자동차는 의상, 세트 디자인과 함께 하나의 통일된 미장센을 형성한다. 클래식에 대한 향수는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올드 카는 계속 뮤직비디오에 등장할 테고, 언젠가는 2010년대 스포츠카가 등장할 수도 있다. K팝은 지난 유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능숙한 장르인 만큼 오늘의 슈퍼카가 언젠가 새로운 문맥에도 등장하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