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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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아킬레우스’ 탤벗 장군, ‘샤토 딸보’가 되다

[명욱의 술기로운 세계사]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이끈 히딩크 와인으로 유명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4-08-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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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에 대해 예술적이라는 호평과 난해하다는 악평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대회와 비교되는 올림픽이 있는데 2012 런던올림픽이다. 런던올림픽은 영국의 소프트파워를 제대로 보여줘 최고의 올림픽 개막식을 꼽을 때 자주 언급된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는 자주 비교된다. 두 나라는 서로 견제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복잡한 관계로, 과거 와인을 두고 전쟁을 벌인 적도 있다.

    샤토 딸보. [샤토 딸보 공식 홈페이지]

    샤토 딸보. [샤토 딸보 공식 홈페이지]

    전쟁터 된 와인 생산지

    잉글랜드 왕국(영국)과 프랑스 왕국(프랑스)은 1337년부터 116년 동안 프랑스 왕위 계승, 플랑드르 지배권(현 벨기에 지역)을 놓고 백년전쟁을 벌였다. 백년전쟁은 주요 와인 생산지인 보르도를 두고 펼쳐진 전쟁이기도 했다. 당시 보르도는 영국 땅이었다. 영국 왕 헨리 2세가 보르도를 통치한 아키텐 공국의 영주 엘레노어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사자왕 리처드 1세다. 그는 보르도 와인을 영국 왕실 와인으로 정하는 등 와인 국제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보르도는 유럽 전역에 와인을 수출했고, 여기서 나오는 와인은 영국 재정의 큰 부분을 담당했다. 한 해 와인 수출량이 1억 병에 달해 영국 지역의 조세 수입보다 보르도를 포함한 귀엔 지방의 수입이 더 많았을 정도다. 결국 와인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116년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사과 발효주 시드르로 유명한 노르망디, 샴페인으로 유명한 샹파뉴, 브랜디로 유명한 아르마냑,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역까지 모두 전쟁에 휩싸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존 최고 와인 산지인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주민들이 영국 편에 섰다는 점이다. 부르고뉴 공국이 프랑스 왕실에서 분리돼 독립 국가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부르고뉴 공국은 백년전쟁에서 역사에 남을 전적을 세웠다. 전쟁 영웅인 잔 다르크를 사로잡아 영국에 넘김으로써 그가 화형을 당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1429년 16세의 잔 다르크는 2년 동안 오를레앙 성을 포위하던 영국군을 무찔렀고, 기세를 몰아 랭스 지역까지 탈환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열리던 랭스 대성당이 자리한 지역으로, ‘대관의 도시’ ‘왕들의 도시’로 불렸다. 이 때문에 지역 술인 샴페인 역시 축제와 파티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샤를 7세가 정식으로 즉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즉위식을 마친 샤를 7세와 귀족들이 잔 다르크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잔 다르크는 왕실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전투에 나섰고, 결국 부르고뉴군에 사로잡혔다. 부르고뉴군은 프랑스 왕실에 몸값을 요구했지만 프랑스 왕실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잔 다르크는 화형을 당하게 됐다.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은 부르고뉴 공국이지만, 실질적으로 죽인 것은 프랑스 왕실이었다.

    영국군 환영한 보르도 주민

    요한 콘라트 함부르거가 그린 존 탤벗 장군 초상화. [위키피디아]

    요한 콘라트 함부르거가 그린 존 탤벗 장군 초상화. [위키피디아]

    프랑스에 잔 다르크가 있다면 영국에는 존 탤벗 장군이 있다. 그는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궁지로 몰아 ‘영국의 아킬레우스’로 불리던 인물이다. 특히 탤벗 장군은 백년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카스티용 전투’와 보르도 탈환에 목숨을 걸어 유명해졌다. 당시 보르도는 영국 입장에서 최후 보루였는데 1451년 프랑스에 빼앗기고 말았다. 보르도 주민들은 영국 왕실에 지역을 탈환해달라고 요청했고, 영국은 탤벗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한 원정군을 보냈다. 보르도 시민들은 프랑스 수비대를 내쫓으며 영국군을 열렬히 환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르도인의 정체성은 프랑스인보다 영국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실이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자 와이너리에 많은 세금을 부과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결국 보르도 도심에서 약 50㎞ 떨어진 카스티용에서 백년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치러졌다. 잔 다르크를 죽음으로 내몬 부르고뉴 공국은 영국을 배신하고 다시 프랑스와 연합해 쳐들어왔다. 탤벗 장군은 이곳에서 최후까지 결전하다 70세 나이로 전사했으며, 프랑스와 영국이 벌인 116년간의 백년전쟁도 마무리됐다. 와인으로 시작해 와인으로 끝난 전쟁이었다.

    당시 탤벗 장군은 갑옷을 입지 않은 채 전장에 나서 감동을 줬다. 1449년 루앙에서 인질로 잡힌 그는 프랑스 왕에게 “다시는 무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킨 것이다. 이 모습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에서 영웅적으로 묘사된다. 보르도 주민들은 고향 탈환을 위해 힘쓴 탤벗 장군을 기리기로 했다. 그 결과 나온 와인이 탤벗 장군의 이름을 넣은 ‘샤토 딸보(Chateau Talbot)’다. 2002년 거스 히딩크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연인과 함께 마신 것으로 알려져 더욱 유명해진 와인이다. 샤토 딸보는 그랑 크뤼(Grand Cru) 4등급에 속하는 고급 와인이다.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해줬다. 전쟁 결과 영국과 프랑스가 확실히 나뉘게 된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왕권이 강화됐고, 패한 영국은 내전에 휩싸였다. 부르고뉴는 독립을 추구했으나 결국 프랑스에 합병됐으며, 영국이 떠난 보르도에는 ‘장사의 천재’로 불리는 네덜란드인이 들어와 간척사업까지 진행하며 보르도 최고 와인 산지인 메독 지구를 만들었다. 영국은 프랑스로의 와인 수입이 어려워지자 스페인으로부터 와인을 수입해 지금의 셰리 와인 수출 경로를 구축했다. 백년전쟁은 각 나라의 운명은 물론, 와인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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