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콜!
예컨대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 여대생이
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예컨대
택시를 타고 남가좌동 명지대를 가는데
서울 31바9896 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
예컨대
베이징 올림픽 남자 핸드볼 경기에서 해설자가
조치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예컨대
쿠싱증후군에 걸린 둘째 이모 양미미 씨가
아침에 짠 스웨터를 밤에 죄다 풀며 죽어갈 때
―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에서
콜! 콜! 生을 펄떡이게 하는 마법의 주문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나를 다시 생(生)의 한복판으로 잡아당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나는 혼쭐이 난다. 어쩔 줄 몰라 쭈뼛거리기 일쑤다. 폭소를 터뜨려야 하나, 홍당무가 된 얼굴을 푹 수그리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아예 요령껏 딴청을 피워야 하나 심히 고민되는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묘사하려면 형용사 하나 가지곤 어림없다. 난감하고 우스꽝스러운 데다가 어이없으면서도 뭉클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학교에서도 가르쳐준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번번이 틀린다. 한발 앞서 나가거나 한 박자씩 꼭 늦는다.
하늬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녀의 이름은 하늬. 하니가 아닌 하늬.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달려라 하니 말고 하늬. 하느이.” 그녀가 “하느이”라고 ‘하늬’를 길게 늘여 빼서 발음할 때 나는 문득 생전 가보지도 못한 도시, 하노이를 떠올렸다.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하늬는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넌 별로 웃음이 없는 아이로구나.” 하늬의 말을 듣자 그제야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한단다.” 말을 해놓고 어색해진 나는 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늬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를 싣고 하늬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을 치며 놀았다. “하늬야, 지금 뭐 하니?” 내가 물으면 그녀는 지지 않고 답했다. “오늘은 만화 봐. 하니 나오는.” 그러나 하니가 TV에 등장하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점점 어렴풋해지자, 우리는 더는 “말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것은 시시했고 미성숙한 일처럼 생각됐다. 말수가 적어지고 골똘히 상념에 잠기는 일이 많아지는 시기에 우리는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제야 나는 하늬의 이름을 또렷하게 발음할 수 있게 됐다. 하늬, 하늬. 하니처럼 쌩쌩 달리는 대신, 하늬바람처럼 코끝을 간질이며 천천히 다가오는 이름, 하늬.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곳에 서른 살 하늬가 찾아왔다. 하도 오랜만이라 당신이 바로 그 하늬가 맞느냐고 섣불리 묻지 못했다. “하필 그럴 때”가 닥쳤을 때 아직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 잡지 못한다. 내가 꾸물거리는 사이, 하늬는 서쪽에서 불어와 동쪽으로 표표히 사라졌다. 이처럼 어떤 운명은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왔다가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몸이 퉁퉁 부어 “밤”이 되자 “아침에 짠 스웨터”가 몸에 맞지 않게 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것이다.
나를 웃게 하고 한숨 쉬게 하고 때때로 눈물 쏙 빼게 하는 순간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삶이라는 여정에도 요철이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과속방지턱을 넘는 순간과 구덩이에 빠지는 순간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들이 닥쳤을 때 언제나 두근거리고 싶다. 솥뚜껑만 보고도 화들짝 놀랄 수 있는 상상력을 잃고 싶지 않다. 박수도 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으로 신나게 쾌재도 불러야지. “콜!”을 외칠 일이 없다는 건 生을 펄떡거리게 하는 싱싱한 재미가 하나 줄어드는 일이니까.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콜!
예컨대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 여대생이
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예컨대
택시를 타고 남가좌동 명지대를 가는데
서울 31바9896 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
예컨대
베이징 올림픽 남자 핸드볼 경기에서 해설자가
조치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예컨대
쿠싱증후군에 걸린 둘째 이모 양미미 씨가
아침에 짠 스웨터를 밤에 죄다 풀며 죽어갈 때
―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에서
콜! 콜! 生을 펄떡이게 하는 마법의 주문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나를 다시 생(生)의 한복판으로 잡아당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나는 혼쭐이 난다. 어쩔 줄 몰라 쭈뼛거리기 일쑤다. 폭소를 터뜨려야 하나, 홍당무가 된 얼굴을 푹 수그리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아예 요령껏 딴청을 피워야 하나 심히 고민되는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묘사하려면 형용사 하나 가지곤 어림없다. 난감하고 우스꽝스러운 데다가 어이없으면서도 뭉클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학교에서도 가르쳐준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번번이 틀린다. 한발 앞서 나가거나 한 박자씩 꼭 늦는다.
하늬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녀의 이름은 하늬. 하니가 아닌 하늬.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달려라 하니 말고 하늬. 하느이.” 그녀가 “하느이”라고 ‘하늬’를 길게 늘여 빼서 발음할 때 나는 문득 생전 가보지도 못한 도시, 하노이를 떠올렸다.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하늬는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넌 별로 웃음이 없는 아이로구나.” 하늬의 말을 듣자 그제야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한단다.” 말을 해놓고 어색해진 나는 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늬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를 싣고 하늬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을 치며 놀았다. “하늬야, 지금 뭐 하니?” 내가 물으면 그녀는 지지 않고 답했다. “오늘은 만화 봐. 하니 나오는.” 그러나 하니가 TV에 등장하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점점 어렴풋해지자, 우리는 더는 “말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것은 시시했고 미성숙한 일처럼 생각됐다. 말수가 적어지고 골똘히 상념에 잠기는 일이 많아지는 시기에 우리는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제야 나는 하늬의 이름을 또렷하게 발음할 수 있게 됐다. 하늬, 하늬. 하니처럼 쌩쌩 달리는 대신, 하늬바람처럼 코끝을 간질이며 천천히 다가오는 이름, 하늬.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곳에 서른 살 하늬가 찾아왔다. 하도 오랜만이라 당신이 바로 그 하늬가 맞느냐고 섣불리 묻지 못했다. “하필 그럴 때”가 닥쳤을 때 아직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 잡지 못한다. 내가 꾸물거리는 사이, 하늬는 서쪽에서 불어와 동쪽으로 표표히 사라졌다. 이처럼 어떤 운명은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왔다가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몸이 퉁퉁 부어 “밤”이 되자 “아침에 짠 스웨터”가 몸에 맞지 않게 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것이다.
나를 웃게 하고 한숨 쉬게 하고 때때로 눈물 쏙 빼게 하는 순간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삶이라는 여정에도 요철이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과속방지턱을 넘는 순간과 구덩이에 빠지는 순간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들이 닥쳤을 때 언제나 두근거리고 싶다. 솥뚜껑만 보고도 화들짝 놀랄 수 있는 상상력을 잃고 싶지 않다. 박수도 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으로 신나게 쾌재도 불러야지. “콜!”을 외칠 일이 없다는 건 生을 펄떡거리게 하는 싱싱한 재미가 하나 줄어드는 일이니까.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