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상연한 연극 ‘李箱 열셋까지 세다’.
54년 전 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은 국내 최초 사설 소극장으로 한국 연극사에서 하나의 맥을 형성했으나, 상업연극의 홍수에 떠밀려 폐관 위기를 맞았다가 지난해 8월 구사일생으로 재개관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2002년부터 ‘오프대학로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연극 축제를 개최해왔다. 올해가 10회째. 10주년을 기념해 올해는 ‘10인 10색’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시작한 축제인 만큼 젊은 연출가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사다리’(박나현 작, 박상하 연출)는 현대 물질주의 세상을 풍자한 ‘우화’다. 거지 앞에 바바리를 입은 사람(이하 바바리)이 나타나 거액을 줄 테니 사다리에 올라가 무엇이 보이는지만 말해달라고 한다.
한국 연극계의 상징적인 장소인 삼일 로 창고극장이 후원회 결성에 힘입어 다시 문을 열었다. 6대 극장주 정대경 씨의 연설 모습.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구도, 간단한 무대장치를 활용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화인 만큼 관객의 배경지식과 정서 상태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바바리는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내면 혹은 초월적 존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거지가 바바리의 유혹과 억압 때문이 아닌, 자기 의지로 사다리에 올라가는 모습은 자기완성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나타낸다. 거지역의 하덕부, 일인다역을 통해 인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 한선영, 김혜영, 허지원이 집중도 높은 연기를 펼친다.
그 밖에 나이든 커플의 첫사랑을 초현실주의적 무대를 통해 신비롭게 표현한 ‘첫사랑’(찰스 미 작, 최재오 연출), 인간이 욕망과 자기분열 속에서 함몰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독수리의 등’(원작 ‘미스 줄리’, (박재완 재창작 및 연출), 오늘날 가족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담은 ‘특별한 저녁식사’(오혜원 작, 이대영 연출)를 비롯해 ‘호텔 플라자 719호실’ ‘북치고 장구치고’ ‘리퀘스트 콘서트’ ‘5분간의 청혼’ 등이 관객을 맞는다. 삼일로 창고극장, 12월 11일까지, 02-319-8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