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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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10-31 0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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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재. 이번 서울시장 선거 동안 박원순 캠프에서 일한 미국 변호사입니다. “비교적 최근 캠프에 합류했지만 박 당선자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가 이번 선거 전략을 사실상 주도한 김윤재 변호사다.” 선거 다음 날 아침 눈에 들어온 한 신문의 평가는 그랬습니다.

    올해 마흔하나인 김 변호사는 10대 후반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갔습니다. 현지에서 대학교와 로스쿨을 나온 뒤 변호사 자격증도 땄죠. 제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2004년 말, 워싱턴 파워그룹을 해부하는 ‘신동아’ 원고를 부탁하면서였습니다.

    “너무 젊지 않느냐.” 그의 프로필을 보고 한 선배가 했던 말입니다. 당시 서른넷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죠. 그러나 미국에 있던 그가 보내준 장문의 분석은 혀를 내두를 만큼 빼어났습니다. 그가 제 머릿속에서 ‘386 중심의 담론구조를 뛰어넘을 다음 세대’라는 이미지로 남은 이유입니다. 이번 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느낌이 남달랐던 것 또한 그 때문입니다.

    제 짧은 눈에 비친 그는 미국 민주당 성향의 자유주의자(Liberal)에 가깝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약자와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믿는, 종래 한국 사회의 좌우 개념으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지점에 서 있죠. 기억해야 할 건 이 미묘한 지점이 미드와 뉴요커 스타일에 열광하는 젊은 층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여의도 정치와는 다른, 세련되면서도 냉소적이지 않은 정치에 대한 갈증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혹 제기가 쏟아진 선거 초반, 박 후보 측의 자세는 ‘일일이 맞대응하지 않겠다’였습니다. 후반에도 후보 본인은 네거티브 선거전과 거리를 유지했죠. 다른 이들에게는 어땠을지 몰라도 제가 속한 30대 유권자 상당수에게는 그런 ‘이전 선거와는 다른’ 전략이 훨씬 멋있어 보였을 겁니다. 30대의 75%가 박원순 후보를 찍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연결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과연 새로운 서울을 만들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제게는 김윤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앵글로색슨 스탠더드’ 수준의 정치를 요구하는 386 이후 세대가 그 복판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훨씬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이를 꿰뚫어보지 못하는 ‘문화 지체’ 정치인은 이제 살아남기 어렵겠다는 예감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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