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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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총알’처럼 쓰는 우크라이나군, 학살하듯 북한군 살상

얼어붙은 듯 움직임 멈춰도 쿠르스크 설원에서는 쉽게 발각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2-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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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비밀은 없다. 지난해 러시아에 대규모 병력을 보낸 북한은 이 같은 사실을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다. 하지만 이미 파병 관련 정보가 북한 전역에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일부 전사자 유가족에게 평양 거주권 같은 보상을 제시하는 등 민심 수습에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이 받은 충격이 쉽게 상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민들 몰래 대규모 병력을 빼내 이역만리 전장으로 보냈고, 그 결과 사상자가 상당수 나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복판 쿠르스크 전선에 파병된 북한군은 끔찍한 상황에 직면했다. 북한군의 참상은 전장 상공의 우크라이나군 드론에 달린 작은 카메라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용 드론. [GettyImages]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용 드론. [GettyImages]

    파병 북한군 사상자 4000명 남짓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 비해 병력과 장비, 화력 등 많은 면에서 열세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여름 기세 좋게 점령한 영역의 절반 이상을 잃고 현재는 남은 지역을 지키는 데 진력하고 있다. 하지만 쿠르스크 전장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상자 비율은 분석 주체에 따라 적게는 4 대 1, 많게는 10 대 1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군 인명 피해가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상당히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러시아군 사상자 집계에는 북한 병력도 대거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1월 말 밝힌 북한군 사상자는 약 4000명에 달한다. 파병 북한군 1만2000명 중 3분의 1을 본격적인 전투 투입 3개월 만에 잃었다는 뜻이다. 이 중 사망자만 10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미 북한군 사상자가 5000명을 넘었고 사망자가 1300~1500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사상자가 너무 많아 쿠르스크는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지와 모스크바 외곽 병원으로까지 북한군 부상병이 수용된 정황도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쿠르스크 최전선 일부 지역에서 북한군이 재정비를 위해 일시 철수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에 배치된 병력은 북한군 최정예 전투원으로 분류되는 폭풍군단 대원이다. 당초 일부 언론과 전문가는 이들이 후방 침투·교란 작전을 펼치며 크게 활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군은 ‘전투’라기보다 ‘학살’에 가까운 형태로 죽어갔다. 이러한 비극의 중심에는 드론이 있다.

    외부 정보가 차단된 곳에서 살다 온 북한 병사들이 맞닥뜨린 현대 전장은 그야말로 혼란 자체였을 것이다. 사람 머리보다 작은 드론이 로켓추진유탄(RPG) 탄두나 박격포탄, 수류탄 같은 폭발물을 달고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극한 상황이다. 북한군이 러시아에 도착한 뒤 우크라이나군 드론 공격에 관한 최소한의 교육을 받았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당장 러시아군이 드론에 쓸려나가는 마당이라 북한군도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북한군 병사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무기는 1인칭 시점(FPV) 드론이다. 이 드론은 전동모터를 탑재한 쿼드콥터(날개 4개 비행체)다. 드론에 달린 카메라가 실시간 촬영해 전송하는 화면을 보면서 무선 제어장치로 드론을 조종한다. 동체 하단에는 각종 폭발물을 붙여 공격용으로 쓴다. 1~2년 전만 해도 이런 드론은 주로 전차, 장갑차 같은 차량 표적을 공격하는 데 쓰였다. 서방 세계의 자금·부품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드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우크라이나군은 이 드론을 마치 총알처럼 쓰고 있다.

    아무리 빨라도 보병이 드론 속도 못 따라가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북한군 전사자 소지품에서 입수한 메모에 적힌 드론 대처 방법.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페이스북 계정]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북한군 전사자 소지품에서 입수한 메모에 적힌 드론 대처 방법.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페이스북 계정]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용 FPV 드론은 적으로부터 5~10㎞ 거리에 있는 은신처에서 발진한다. 전통 개념의 교전은 전투원이 직가시(直可視) 위치까지 접근한 뒤 소총 등 화기로 조준 사격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FPV 드론 전투에서 전투원은 벙커나 참호 등 안전한 곳에 머문다. 거기서 은·엄폐한 채 카메라 촬영 화면을 보면서 드론을 조종해 적을 공격한다. 반면 당하는 쪽은 개활지에서 어느 방향으로 날아올지 모르는 드론에 얻어맞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의 FPV 드론 운용은 쿠르스크 전장의 지형 특성 및 북한군 전술과 맞물려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쿠르스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전차전이 벌어진 평야 지역이다. 여기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양국 군대는 민가가 밀집된 마을이나 수목 지대에 진지를 둔다. 이에 따라 전투는 마을과 마을, 숲과 숲 사이 평야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평야가 상당히 넓다는 것이다. 공격부대는 짧게는 수백m, 길게는 3~5㎞에 달하는 평야를 통과해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은·엄폐도 불가능하기에 적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전장 환경을 극복하려면 전차나 장갑차가 필요하지만 러시아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우크라이나군에 따르면 개전 후 3년 동안 러시아군의 누적 장비 손실은 전차 9900대, 장갑차 2만600대, 차량 3만5500대를 넘어섰다. 궁여지책으로 러시아군은 옛 소련 시절 퇴역해 저장시설에 방치해둔 구형 장갑차까지 쓰고 있다. 심지어 점령지에서 징발한 민간 차량에 철판을 덧대어 투입하거나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까지 돌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북한군에게 공급할 차량이 있을 턱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FPV 드론은 전동모터를 탑재한 소형 장비라 속도가 느리다. 보통 시속 50~70㎞, 빠르면 시속 100~120㎞ 정도다. 차량에 탑승한 러시아군은 FPV 드론이 접근하면 전속력으로 달려 따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보병은 무슨 수를 써도 드론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는 우사인 볼트가 단거리 달리기 세계 신기록을 세울 때 최고속도가 시속 44.7㎞였다. 10~20㎏ 무게의 군장을 한 북한 병사가 드론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 북한군이 투입되기 시작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쿠르스크에는 눈이 많이 왔다. 북한군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설원에서 문자 그대로 굼벵이처럼 느려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입장에서 이런 북한군은 하얀 도화지에서 꿈틀대는, 아주 잘 보이는 표적이다.

    뛰어서는 드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최근 러시아군은 쿠르스크를 비롯한 주요 전장에서 FPV 드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술 지침을 하달했다. 핵심은 우크라이나군 드론을 발견할 경우 ‘얼음’을 하라는 것이다. 러시아군 지휘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FPV 드론에 탑재된 카메라는 해상도가 떨어지기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면 드론 운용병 눈에 띌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고 주장한다.

    ‘드론 재머’ 보급에서 후순위로 밀린 북한군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병사가 심문을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식 X(옛 트위터) 계정]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병사가 심문을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식 X(옛 트위터) 계정]

    최근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1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이 나온다. 한국인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술래가 벽을 보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내는 놀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선 조금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술래 역할을 하는 로봇이 돌아봤을 때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로봇 눈에 장착된 동작 감지 카메라가 이를 포착해 조준 사격으로 아웃시킨다. 살고자 하면 움직임을 멈추고 얼어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일선 병사들에게 하달한 지침도 이 게임 규칙과 똑같다. 드론이 떴을 때 움직이면 ‘아웃’ 처리가 되니 움직이지 말고 서 있으라는 것이다. 이 지침을 고안한 러시아의 ‘높으신 분’은 ‘오징어 게임’ 첫 번째 시즌을 이제야 본 모양이다. 스스로 대단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전장에서는 러시아군 장병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고 한다. 전장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지침 탓에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 FPV 드론에 탑재된 카메라가 저해상도인 것은 사실이다. 자폭 공격에 쓰는 일회용 무기라서 굳이 비싼 카메라를 달 이유가 없어서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군은 장시간 체공이 가능한 중대형 드론에 고해상도 카메라나 적외선 센서를 달아놓았다. 이런 고성능 드론의 주요 임무는 전장 상공에서 표적을 수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FPV 드론이 노리는 표적 위치는 이미 감시정찰용 드론에 노출된 상황이다. 드론 접근을 인지한 병사가 ‘얼음’처럼 움직임을 멈춰도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FPV 드론 공격에서 보병의 생존을 높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선 소형 드론의 접근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와 재머(jammer)를 보급하면 된다. 드론은 무선으로 조종되기 때문에 신호만 차단하면 쉽게 무력화된다. 드론 재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소총처럼 방해 전파를 특정 방향으로 쏘는 모델, 다른 하나는 백팩처럼 등에 매고 다니며 반경 수십m 내 제어 신호를 차단하는 모델이다. 러시아군은 두 종류 재머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염가형 재머를 대량 도입해 배치 중이다. 다만 염가형이라 해도 한 세트 가격이 수천 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러시아군은 드론 재머를 보병 부대보다 전차나 장갑차 부대에 우선 보급하고 있다. 북한군은 보급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 북한군 시신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사람을 미끼로 쓰는 드론 대응 지침이 발견되기도 했다. 동료를 미끼로 먼저 내보낸 뒤 드론이 나타나면 다른 병사들이 소총 조준 사격으로 떨어뜨리는 식이다.

    北 병사, 러시아군 살해 후 무장 탈영도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1월 22일(현지 시간) 쿠르스크 전선에서 “북한군 21명을 사살하고 40명을 부상 입혔다”고 주장하며 올린 영상 속 북한군 모습.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페이스북 계정]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1월 22일(현지 시간) 쿠르스크 전선에서 “북한군 21명을 사살하고 40명을 부상 입혔다”고 주장하며 올린 영상 속 북한군 모습.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페이스북 계정]

    러시아는 전차·장갑차에 이어 드론 대응 장비 보급에서도 북한군을 차별하고 있다. 높은 확률로 죽거나 다칠 수밖에 없는 ‘자폭 돌격 전술’에 내몰리는 전장의 북한군 사이에서 이상 징후도 감지된다. 가령 1월 제810근위해군육전여단에서 북한군과 러시아군 간 총격전이 벌어져 러시아군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동자인 북한 병사 3명은 무장 탈영해 러시아 연방보안국과 국가근위대가 이들의 뒤를 쫓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당국은 일단 수배령을 내렸지만, 북한군이 배치된 다른 부대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지 쉬쉬하는 분위기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선 게임 참가자들이 주최자에게 반기를 드는 전개가 나온다. 쿠르스크에서 ‘러시아판 오징어 게임’에 동원돼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북한군도 러시아에 반기를 드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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