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의 갈등으로 시작된 정국이 결국 새로운 시장 선출로 일단락됐다. 시민운동의 대부가 ‘시민’ 이름으로 당선됐다.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이전 정당정치의 산물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가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당선이 새로운 만큼, 그에 대한 기대와 걱정도 큰 것이 사실이다.
01 서울시민은 피곤하다
서울시민은 지난 1년간의 지루한 싸움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집주인의 횡포에 가까운 보증금 인상 독촉에 가족 몰래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힘들게 대학은 졸업했지만 학자금 대출이자는 불어나고 취업은 요원하다. 아버지의 조기 퇴직은 이제 더는 뉴스가 아니다. 임대아파트 한 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한 달 겨우 80만 원인, ‘88만원 세대’보다 나을게 없는 서울의 택시기사. 서울시민의 삶은 갈수록 비틀거리는데 욕심 많은 초고층 건물은 지금까지의 삶터마저 내놓으라 한다. 답답한 마음에 남산에라도 올라가 보면 서울은 온통 아파트인데 내 집 한 칸 없는 좌절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도심 곳곳은 세금으로 멋을 냈지만, 서민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서울시민은 피곤하다. 이제 더는 서울시정과 서울시민을 정치 볼모로 삼지 말아야 한다.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제대로 견제 및 감시하면서 상호 존중하는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서야 한다. 오로지 서울시민을 위해서!
02 서울시는 공사 중
서울시는 여기저기 공사 중이다. 4000억 원 넘게 들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공사가 한창이고, 3000억 원짜리 신청사 공사가 내년 준공을 앞둔 상태다.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곳곳에 기약 없는 뉴타운과 초고층 랜드마크 계획도 널렸다. 서울시 전체 사업예산의 절반을 토건사업에 쏟아부은 기형적인 예산 운용은 시민에게 ‘복지’와 ‘교육’이 낯설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토목과 건설에 드는 예산은 대형 건설회사가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장이 어떤 의지를 갖고 복지 및 교육 예산을 지켜내고 확대하느냐다. 이전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은 모두 ‘토건 프레임’에 포박당한 사례다. 정치인의 인기 영합 정책과 건설회사의 영업 전략이 맞아떨어져 시민 세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 것이다. 그 중간에는 일부 전·현직 관료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장을 선출직으로 뽑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관료권력에 대한 견제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오 전 시장이 전체 예산의 0.3%에 불과한 초등학교 무상급식 때문에 시장직까지 건 것을 단순히 개인적인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울시 토건사업을 둘러싼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그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그 덫에 포획된, 재주 부리는 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03 복지와 교육, 사람을 만나자
서울시 복지사업의 90% 이상은 중앙정부의 매칭사업이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절반씩 부담하는 식이다. 이는 서울시장의 재량이 아니라 법정 의무다. 이 때문에 오 전 시장이 ‘반복지’ 시장이었다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행한 복지사업이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중앙정부 사업에 ‘서울형’이라는 이름만 씌웠을 뿐, 서울에 맞는 복지정책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 서울은 전체 예산에서 복지비 지출 비율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교육자치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교육재정의 키는 서울시가 쥐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예산을 취득세의 3%로 늘리는 조례를 개정했지만, 2011년도 예산은 절반 정도만 편성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에 주는 연간 2조 원 정도의 법정전출금도 제때 주지 않아 교사 월급 때만 되면 서울시교육청은 비상이 걸린다.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 이래 놓고 무상급식이 먼저냐, 학교시설이 먼저냐는 비상식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04 서울시 재정, 뭐가 문제지?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서울시 부채 문제였다. 단언컨대 서울시의회가 지적한 부채 문제의 핵심은 금액 자체가 아니라 짧은 시기에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또한 무차별적인 차입으로 서울시와 산하기관이 부담하는 이자가 2011년 한 해만 1조5000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본청 예산 기준으로 보면 적정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08년 말부터 2010년까지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심지어 한 해에 1조 원을 단기차입하기까지 했다) 평균 1조 원대 이상이던 시금고 잔액을 30억 원대 수준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서울시의회의 지적이 못마땅했던 오 전 시장이 아예 ‘재정정책’을 포기해버렸다는 점이다. 올해 예산을 일괄적으로 10~15% 삭감한 것이다.
경제위기가 고조되고 서민경제가 힘들수록 (지방)정부는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재정정책’을 펼쳐야 함에도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이 지고 있다. 따라서 재정정책의 공백 없는 부채 감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산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건사업의 입찰방식과 무리한 토지 보상, 무분별한 민자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줄여도 수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05 대선 가는 길목 아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은 대선으로 가는 길목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서울시장 자리는 대권으로 가는 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 전 시장도 이 점을 노린 듯하다. 서울시는 작은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서울시정이 잠룡의 시험무대가 돼야 하는가. 서울시민은 제대로 된 서울시장으로부터 제대로 된 시정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더는 잠룡의 대권가도 휴게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고 경지에 오른 시장이 최고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리여야 한다. 물론 이를 정한 법은 없다. 오로지 신임 시장의 양심과 신념의 문제다. 서울시민은 서울시장의 따뜻한 눈길을 받아본 지 너무 오래됐다. 부디 아픈 곳부터 살펴보고, 추운 곳부터 어루만지는 서울시장이 되길 바란다.
01 서울시민은 피곤하다
서울시민은 지난 1년간의 지루한 싸움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집주인의 횡포에 가까운 보증금 인상 독촉에 가족 몰래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힘들게 대학은 졸업했지만 학자금 대출이자는 불어나고 취업은 요원하다. 아버지의 조기 퇴직은 이제 더는 뉴스가 아니다. 임대아파트 한 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한 달 겨우 80만 원인, ‘88만원 세대’보다 나을게 없는 서울의 택시기사. 서울시민의 삶은 갈수록 비틀거리는데 욕심 많은 초고층 건물은 지금까지의 삶터마저 내놓으라 한다. 답답한 마음에 남산에라도 올라가 보면 서울은 온통 아파트인데 내 집 한 칸 없는 좌절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도심 곳곳은 세금으로 멋을 냈지만, 서민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서울시민은 피곤하다. 이제 더는 서울시정과 서울시민을 정치 볼모로 삼지 말아야 한다.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제대로 견제 및 감시하면서 상호 존중하는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서야 한다. 오로지 서울시민을 위해서!
02 서울시는 공사 중
서울시는 여기저기 공사 중이다. 4000억 원 넘게 들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공사가 한창이고, 3000억 원짜리 신청사 공사가 내년 준공을 앞둔 상태다.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곳곳에 기약 없는 뉴타운과 초고층 랜드마크 계획도 널렸다. 서울시 전체 사업예산의 절반을 토건사업에 쏟아부은 기형적인 예산 운용은 시민에게 ‘복지’와 ‘교육’이 낯설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토목과 건설에 드는 예산은 대형 건설회사가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장이 어떤 의지를 갖고 복지 및 교육 예산을 지켜내고 확대하느냐다. 이전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은 모두 ‘토건 프레임’에 포박당한 사례다. 정치인의 인기 영합 정책과 건설회사의 영업 전략이 맞아떨어져 시민 세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 것이다. 그 중간에는 일부 전·현직 관료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장을 선출직으로 뽑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관료권력에 대한 견제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오 전 시장이 전체 예산의 0.3%에 불과한 초등학교 무상급식 때문에 시장직까지 건 것을 단순히 개인적인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울시 토건사업을 둘러싼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그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그 덫에 포획된, 재주 부리는 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03 복지와 교육, 사람을 만나자
서울시 복지사업의 90% 이상은 중앙정부의 매칭사업이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절반씩 부담하는 식이다. 이는 서울시장의 재량이 아니라 법정 의무다. 이 때문에 오 전 시장이 ‘반복지’ 시장이었다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행한 복지사업이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중앙정부 사업에 ‘서울형’이라는 이름만 씌웠을 뿐, 서울에 맞는 복지정책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 서울은 전체 예산에서 복지비 지출 비율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교육자치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교육재정의 키는 서울시가 쥐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예산을 취득세의 3%로 늘리는 조례를 개정했지만, 2011년도 예산은 절반 정도만 편성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에 주는 연간 2조 원 정도의 법정전출금도 제때 주지 않아 교사 월급 때만 되면 서울시교육청은 비상이 걸린다.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 이래 놓고 무상급식이 먼저냐, 학교시설이 먼저냐는 비상식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04 서울시 재정, 뭐가 문제지?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서울시 부채 문제였다. 단언컨대 서울시의회가 지적한 부채 문제의 핵심은 금액 자체가 아니라 짧은 시기에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또한 무차별적인 차입으로 서울시와 산하기관이 부담하는 이자가 2011년 한 해만 1조5000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본청 예산 기준으로 보면 적정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08년 말부터 2010년까지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심지어 한 해에 1조 원을 단기차입하기까지 했다) 평균 1조 원대 이상이던 시금고 잔액을 30억 원대 수준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서울시의회의 지적이 못마땅했던 오 전 시장이 아예 ‘재정정책’을 포기해버렸다는 점이다. 올해 예산을 일괄적으로 10~15% 삭감한 것이다.
경제위기가 고조되고 서민경제가 힘들수록 (지방)정부는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재정정책’을 펼쳐야 함에도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이 지고 있다. 따라서 재정정책의 공백 없는 부채 감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산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건사업의 입찰방식과 무리한 토지 보상, 무분별한 민자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줄여도 수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05 대선 가는 길목 아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은 대선으로 가는 길목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서울시장 자리는 대권으로 가는 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 전 시장도 이 점을 노린 듯하다. 서울시는 작은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서울시정이 잠룡의 시험무대가 돼야 하는가. 서울시민은 제대로 된 서울시장으로부터 제대로 된 시정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더는 잠룡의 대권가도 휴게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고 경지에 오른 시장이 최고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리여야 한다. 물론 이를 정한 법은 없다. 오로지 신임 시장의 양심과 신념의 문제다. 서울시민은 서울시장의 따뜻한 눈길을 받아본 지 너무 오래됐다. 부디 아픈 곳부터 살펴보고, 추운 곳부터 어루만지는 서울시장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