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중국 AI 기술력은 서구 기술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편견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AI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85.8%로, 유럽에 이어 세계 3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은 5년 만에 미국과의 AI 기술 격차를 2.3년(2016)에서 0.8년(2021)으로 대폭 줄이며, 글로벌 AI 패권 경쟁 구도의 변화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딥시크가 보여준 중국 인공지능(AI) 기술 성장이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사진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다. [이종림 제공]](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WEEKLY/Article/67/a5/67/ed/67a567ed176ad2738276.jpg)
딥시크가 보여준 중국 인공지능(AI) 기술 성장이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사진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다. [이종림 제공]
챗봇부터 산업 특화 AI까지 다양
이러한 흐름을 볼 때 딥시크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 거대 테크 기업들은 AI 기술 발전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으며, 신흥 스타트업 또한 독창적이고 경쟁력 있는 모델을 개발해 AI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바이두(Baidu)의 어니봇(Ernie Bot)은 2023년 8월 공개된 후 한동안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가입자가 4억 명 이상으로, 특히 중국어 자연어 처리(NLP)에 강점을 보인다. 검색엔진과 통합해 문서 요약, 번역, 질문 응답 등 다양한 기능도 제공한다. 중국인들이 정부 규제로 챗GPT 같은 해외 AI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니봇은 빠르게 중국 내 대표 AI 챗봇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AI 랭킹 사이트 Aicpb닷컴에 따르면 어니봇 다운로드 수는 2023년 9월 150만 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12월 기준 61만 건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두의 부진과 대조적으로 바이트댄스(ByteDance)는 AI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 미디어 회사 벤징가에 따르면 2023년 8월 출시된 바이트댄스의 AI 챗봇 두바오(Doubao)는 지난해 4월까지 900만 건 다운로드를 기록해 같은 기간 어니봇의 800만 건을 넘어섰다. 바이트댄스는 1월 22일 주력 AI 모델 ‘두바오1.5 프로’를 공개한 뒤 이 모델이 성능 면에서 챗GPT를 능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알리바바는 기업 중심 전략을 통해 AI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알리바바의 퉁이첸원(Tongyi Qianwen)은 기업용 솔루션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로,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와 기업용 협업 툴인 딩톡(DingTalk)에 통합되며 9만 개 넘는 기업이 사용하는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자리 잡았다. 전자상거래, 금융,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최근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웬(Qwen) 2.5 맥스’라는 새로운 AI 모델을 출시했다.
화웨이의 판구(Pangu)는 NLP를 넘어 컴퓨터 비전, 자율주행, 제조업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판구는 금융 리스크 분석, 의료 영상 진단,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 등 구체적인 산업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중국의 신생 AI 기업들도 독자적인 AI 모델 개발을 통해 시장 판도를 뒤흔들 준비를 마쳤다. AI 스타트업 지푸(Zhipu)는 뛰어난 성능의 ‘GLM’ 시리즈를 출시해 ‘중국의 오픈AI’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리바바가 지원하는 베이징 소재 스타트업 문샷 AI(Moonshot AI)는 지난달 수학과 추론 능력에서 챗GPT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하는 LLM ‘키미(Kimi) k1.5’를 공개했다. 미니맥스(MiniMax)는 최근 456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미니맥스01’이라는 새로운 오픈소스 AI 모델 시리즈를 출시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혁신과 고립 사이
대형 테크 기업부터 신생 스타트업까지 중국의 AI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은 서구 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AI 경쟁에서 주도적 위치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성취에도 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검열로 자유로운 데이터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재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점은 AI 개발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정치적 이슈에서 비롯된 무역제재와 규제 강화 또한 중국 AI 기업의 글로벌 확장을 저해할 수 있다.
호두 시드니공과대 호주-중국 관계 연구소의 마리나 장 교수는 BBC를 통해 “딥시크의 성공은 젊은 기업가들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 즉 중국의 ‘혁신 2.0’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며 “반면 이러한 흐름이 국제 협력에서 멀어지는 기술적 고립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