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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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폭탄’ 투하 시작… 100년마다 반복되는 관세전쟁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1828년 혐오 관세법·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 시행으로 세계 경제위기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5-03-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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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고립된 미국 사회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 [시카고 미술관 제공]

    1930년대 고립된 미국 사회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 [시카고 미술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와 유예, 그리고 재부과로 온 세상이 혼란에 빠진 느낌이다. 이런 현상이 처음일까. 아니다. 역사의 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오늘날 경제 정책을 살펴보면 과거 사건들이 어떻게 반복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마치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적 보호무역 정책을 그대로 재연한 듯하다. 1828년 ‘혐오 관세법(Tariff of Abominations)’과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보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21세기에 나타난, 조금 변형된 과거의 반복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19세기 초 미국 정부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영국에서 들어오는 저가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 정책은 북부 공업 지역에는 이익이 됐지만, 남부 농업 지역에는 재앙이었다. 당시 남부 경제는 면화와 담배 수출에 의존했으며, 영국과의 자유로운 교역이 필수였다. 그러나 고율 관세에 대해 영국이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남부 농업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 역사적 보호무역 정책 그대로 재연

    이 관세법의 영향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이었다. 북부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의 철강산업은 영국산 저가 철강 제품으로부터 보호받아 급속히 성장했다. 영국 맨체스터와 리버풀에서 생산된 직물 제품의 수입이 급감하면서 뉴잉글랜드 지역의 직물 공장들은 생산량을 2배로 늘렸다. 반면 남부 지역,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찰스턴 항구를 통한 면화 수출량은 1828년부터 1830년 사이 37%나 감소했다.

    그 결과 ‘관세 거부 위기(Nullification Crisis)’가 발생했다. 183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는 공식적으로 관세법을 무효화했고, 이에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무력 수권법(Force Bill)’을 통과시켜 연방군 파견을 준비했다. 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력 투쟁을 심화했으며 궁극적으로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이어지는 갈등의 전초전이 됐다.

    이 갈등은 남부와 북부의 문화적 차이도 심화했다. 북부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도시 중심의 문학, 예술, 음악이 발전했고 뉴욕과 보스턴 같은 도시는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남부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 사회를 유지하려 했으며, 남부의 플랜테이션 문화는 고급스러운 생활 방식과 함께 고전적인 예술과 건축을 발전시켰고, 이는 남부 엘리트 계층이 주도한 문화적 표현이었다.

    역사적 교훈을 간과한 채 미국은 대공황 다음 해인 1930년 유사한 정책적 실수를 반복했다.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국내 농업과 제조업 보호를 위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정부는 수입품에 59.1%의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1830년대 61.7%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각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국제무역이 대폭 감소했고, 세계경제는 더욱 악화됐다.

    문화·예술에도 미국 중심 창작물 늘어

    미국 대공황 시기 할리우드는 사람들이 괴로운 현실을 잊고 희망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를 제작했다. 대표적 영화인 ‘킹콩’(1933). [IMDb]

    미국 대공황 시기 할리우드는 사람들이 괴로운 현실을 잊고 희망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를 제작했다. 대표적 영화인 ‘킹콩’(1933). [IMDb]

    문화적으로도 미국을 점점 더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예술과 문학에서 미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고립주의가 강하게 나타났으며, 대표적으로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 같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미국 농촌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고립된 미국 사회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또한 대공황으로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할리우드의 ‘킹콩’(1933) 등 판타지 영화와 ‘톱 햇(Top Hat)’(1935) 같은 뮤지컬 영화가 대중문화 주류로 성장했다. 대공황 시기 미국 문화와 예술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에 미국적인 예술 스타일이 부각됐듯이, 최근 미국에서는 자국 중심의 창작물이 늘어나고 미국 정체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패션업계에서는 해외 생산보다 ‘Made in USA’ 제품이 더 큰 가치를 갖게 됐고, 할리우드에서도 애국적 서사(‘탑건: 매버릭’ 등)가 다시 인기를 얻었다.

    1828년 혐오 관세법이 정치적 갈등을 낳았고,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경제적 재앙을 초래한 것처럼,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 또한 유사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하지만 역사가 반복될 때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돼 나타난다. 그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경제 정책이 가져올 장기적 영향까지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역사는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참으로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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