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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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성능 군함 정비 한국에 맡긴다

신형 함정 건조·관리 능력 확인하는 일종의 ‘시험’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3-1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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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그룹 제공

    한화그룹 제공

    최근 한국과 미국의 해양 방산 협력에서 주목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동아일보는 3월 3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한국에 군함 5~6척 정비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해군부는 2월 말 한국 방위사업청에 올해 안으로 유지·보수·정비(MRO)가 필요한 군함 5~6척의 함명(艦名)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설명했다고 한다.

    美 전략 자산 해양조사선·해양감시선

    미국이 한국에 직접 군함 이름까지 불러주며 MRO 사업을 제안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사업이 여러 조선소를 대상으로 한 공개경쟁입찰이 아니라 한국 조선소 몇 곳을 지정해 수의계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 MRO를 맡기려 하는 군함은 ‘해양조사선’과 ‘해양감시선’ 등 비(非)전투함 5~6척이다. 미 해군부는 한국에 맡기려는 MRO 사업이 올해만 최대 10척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뜻도 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이 한국에 의뢰하려는 MRO 물량이 아니라 함종(艦種)이다.

    한국 조선소가 현재까지 수주한 미 해군 MRO 사업은 전투함이 아닌 해상수송사령부(MSC)에서 운용하는 루이스 앤드 클라크급 화물선 월리 쉬라(USNS Wally Schirra, T-AKE-8)와 헨리 J. 카이저급 급유함 유콘(USNS Yukon, T-AO-202) 등 2척이다. 덩치가 큰 군함들이지만 승조원은 대부분 현역 군인이 아닌 군무원이다. 미 해군은 전투 임무에 사용되는 군함 이름에는 접두사로 USS(United States Ship)를, 비무장 또는 지원함에는 USNS(United States Naval Ship)를 붙인다. 월리 쉬라함과 유콘함 모두 군수 지원에서 중요한 자산이지만 기본적으로 화물이나 연료를 실어 나르는 배다. 고급 전투·통신 장비도 탑재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USNS 접두사가 붙은 군함 MRO는 보안 요건이 상대적으로 덜 까다롭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이 아닌 나라에서도 MRO가 가능하다. 또한 지원함 MRO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첨단 전투함 MRO와 달리 작업 대부분이 일명 ‘깡깡이질’이 필요한 인력 집약적 사업이다. 그래서 미 해군은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에 지원함 MRO를 자주 맡겨왔다.

    미국 해군 패스파인더급 해양조사선. 미국 해군 제공

    미국 해군 패스파인더급 해양조사선. 미국 해군 제공

    中 잠수함 감시가 핵심 임무

    반면 이번에 미 해군이 한국에 MRO를 의뢰하려는 군함은 앞서 수주한 수송선이나 유조선과는 차원이 다른 전략 자산이다. 해양조사선과 해양감시선 모두 내부에 뭔가를 싣는 ‘깡통배’가 아니라, 첨단 감시정찰 장비로 가득 차 있는 고가치 자산이다. 해양조사선은 미 해군 함대전력사령부 직할 기능사령부인 해군기상·해양학사령부(CNMOC)의 해군해양학사무국(NAVOCEANO)에서 운용하는 첨단 함정이다. 현재 운용되는 함종은 1994년부터 8척이 취역한 패스파인더급이다. 이 배는 오대양을 누비는 대양 항해 임무에 걸맞게 4800t의 큰 덩치를 갖고 있다. 큰 선체에는 다양한 임무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있다. 패스파인더급의 임무는 분류명 그대로 ‘해양조사’다. 바다의 기상과 해류 움직임, 해수(海水)의 매질 특성, 수중 생태계, 해저 지형과 수로 조사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배에는 첨단 음파탐지기(SONAR) 여러 종류와 심해 잠수용 로봇 등이 탑재돼 있다. 이들 장비는 각 함대가 대잠전·특수전·기뢰전이나 감시정찰 작전을 수행할 때 필요한 고급 해양 환경 정보들을 수집, 분석해 제공한다. 당연히 이 배에는 그동안 임무를 수행하며 수집한 기밀정보가 많다.

    해양감시선도 대단히 중요한 전략 자산이다. 미 해군에선 임페커블급 1척과 빅토리어스급 4척 등 5척의 해양감시선이 작전을 시행하고 있다. 3월 기준 이들 5척 모두 제7함대 작전구역에 전진 배치돼 있다. 미국 해양감시선의 공식 임무는 해저 지형 탐사지만, 실제로는 중국 수중 전력을 감시·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쌍동선 구조의 5400t급 함정인 임페커블급은 SURTASS(해양감시용 선배열 음향시스템)로 불리는 고성능 예인 소나(SONAR) 시스템을 갖췄다. 하늘에서는 전파를 이용한 레이더로 물체를 탐지·식별·추적하지만 바다에서는 음파를 이용한 소나가 그 역할을 한다. 군함용 소나는 설치·운용 형태에 따라 뱃머리 아랫부분에 장착하는 선체고정형과 주로 잠수함 양현에 설치하는 선측배열형, 배 뒷부분에서 와이어처럼 끌고 다니며 사용하는 예인형 등으로 구분된다. 임페커블급에 탑재되는 SURTASS는 고성능 예인형으로, 일반 군함용 소나보다 잠수함 탐지 능력이 월등히 우수하다. 이 SURTASS는 직접 음파를 쏴 반사음을 청취하는 능동 소나와 적함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소음을 청취하는 수동 소나 기능을 모두 갖췄다. 그 덕에 일반 군함이 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소음을 먼 거리에서도 잡아낼 수 있다.

    임페커블급과 빅토리어스급은 모두 제7함대 작전구역에 배치돼 주로 서해·동중국해·남중국해와 필리핀해에서 작전한다. 중국 잠수함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최근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원자력잠수함(원잠) 노후화와 퇴역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신형 버지니아급 공격원잠 전력화는 지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수중 전력을 감시·추적할 전력이 부족해진 미 해군에서 이들 감시선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공격원잠의 순찰 임무 일부를 이들 감시선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들 감시선은 동북아 해역에 쏟아져 나오는 중국 신형 공격·전략원잠에 대한 정보 수집 임무도 수행한다. 하늘에 떠 있는 모든 비행체는 형상과 재질에 따라 고유한 레이더 반사 특성을 갖는다. 레이더는 이 반사 특성을 분석해 대상이 어떤 항공기인지 식별한다. 전파 대신 음파를 이용하는 물속에서도 고유 음파 특성을 통해 대상을 식별하는 기술이 사용된다. 선박과 잠수함은 저마다 형상과 동력원, 추진 장치가 다르기에 항해할 때 내는 소음도 제각각이다. 이처럼 특정 함종이 내는 고유의 소리를 음문(音紋)이라고 하는데 임페커블급과 빅토리어스급은 바로 이 음문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도 한다.

    미국 해군 제공

    미국 해군 제공

    “동맹국에 군함 발주해 급한 불 끄자”

    이처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감시선은 당연히 고가치 자산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높은 보안 등급이 적용돼 세심하게 운용된다. 미국이 이번에 한국에 MRO 의사를 타진한 해양조사선·해양감시선 물량 ‘5~6척’은 현재 제7함대 책임구역에서 작전 중인 패스파인더급·임페커블급·빅토리어스급 6척과 거의 일치한다. 현재 한국에서 MRO가 진행되는 군수지원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안 등급이 높은 군함의 정비가 한국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이 고려하는 한국과의 함정 사업 협력 범위가 당초 예상보다 넓다는 방증이다.

    미국이 이토록 함정 사업 협력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는 그들 사정이 그만큼 급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산 국정 기조는 “미군이 쓰는 무기는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건함 사업은 예외다. 미국은 전체 군함 수에서 이미 자국을 앞지른 중국에 대응하고자 향후 30년간 연평균 42조 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군함을 발주할 예정이다. 미국 조선산업 인프라만으로 이 같은 발주량을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조선업은 “미 군함은 모두 국내 조선소에서만 건조해야 한다”는 존스법(Jones Act)으로 오랫동안 쇠퇴 일로를 걸었다. 미국에서 군함 관련 기술 개발과 설계를 담당하는 곳은 해군해상체계사령부(NAVSEA)다. 미국 조선소들은 NAVSEA가 제공하는 설계도를 받아서 그들의 관리·감독 하에 군함을 만들어왔다. 존스법에 따라 일부 조선소가 건함 사업을 독점한 데다, 발주자가 가져다주는 설계도대로 군함을 만들면 되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 조선소들은 시설 현대화나 전문 인력 확보에 오랫동안 소홀했다. 당장 미국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이들 민간 조선소 시설을 현대화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더라도 1~2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 의회가 존스법 적용에 예외를 두고 해군 군함을 외국 동맹국에 발주할 수 있도록 하는 해군준비태세보장법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국 조선소를 현대화하기 전까지 동맹국으로부터 군함을 조달해 ‘급한 불’을 끄자는 취지다.

    한국은 중국의 폭발적인 해군력 증강에 급히 대응해야 하는 미국 측 니즈를 충족해줄 사실상 유일한 동맹국이다. 미국과 일명 ‘파이브 아이즈’를 구성한 핵심 동맹국인 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는 조선 인프라가 미국만도 못한 상황이라 군함 건조를 맡길 수 없다. 유럽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조선소들은 최근 유럽 각국의 해군력 현대화 열풍 때문에 미국 주문 물량을 소화할 여력이 없다. 일본 역시 해상자위대의 대규모 해군력 증강 사업으로 미쓰비시중공업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모두 2030년대 초반까지 도크 사용 일정이 모두 차 있다. 미국으로선 한국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 美 이지스 구축함·상륙함 수주 가능성

    미국 측은 3월 말 예정된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 방한 때 국내 조선소들을 둘러보겠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해왔다. 미국 의회에서 해군준비태세보장법이 통과되면 헤그세스 장관이 방문한 후 한국 조선소들에 엄청난 양의 군함 발주가 쏟아질 수 있다. 미국은 가장 시급한 전력인 버지니아급 공격원잠 건조 사업은 자국 조선소에 집중시킬 전망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상전투함과 상륙함·정 건조를 한국에 의뢰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조선소들에 발주될 공산이 큰 함종은 7000t급 이지스 호위함 컨스털레이션급과 주력 이지스 구축함 알레이버크급, 중형 상륙함 맥클렁급 등이다.

    이번에 미국이 타진한 고급 함정 MRO 사업은 이 같은 신형 함정 건조·관리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일 수 있다.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국내 조선사들은 매년 수조 원대 건함 사업 잭팟을 연이어 터뜨리고, 나아가 미국의 건함 전진기지로서 국제적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국내 조선사들의 건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