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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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地氣) 미치는 영역은 아파트 5~6층 높이

[안영배의 웰빙 풍수] 지기 받는 게 건강한 삶의 바탕… 천기 잘 통하는 초고층도 ‘웰빙 로열층’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5-02-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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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에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단(天壇)이라는 곳이 있다. 자금성(고궁박물원) 남쪽 천단공원에 위치한 이곳은 구룡백(九龍柏)이라는 기묘한 형상의 나무로도 유명하다. 몸통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뒤틀려 있는 측백나무인데, 이름 그대로 마치 용 아홉 마리가 나무를 휘감고 승천하는 듯한 모양이다. 수령 600년이 넘어가는 이 구룡백이 있는 곳은 풍수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지기(地氣)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중국 베이징 천단공원에 있는 기묘한 형상의 측백나무. 용 아홉 마리가 나무를 휘감고 승천하는 듯한 모양이라 ‘구룡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이징관광국 제공]

    중국 베이징 천단공원에 있는 기묘한 형상의 측백나무. 용 아홉 마리가 나무를 휘감고 승천하는 듯한 모양이라 ‘구룡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이징관광국 제공]

    용틀임 나무가 보여주는 지기(地氣)의 힘

    이 나무 주위에는 밀도와 힘이 서로 다른 여러 지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마침 그 기운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던 나무가 땅의 영향을 받아 줄기가 아래에서 위로 묘하게 뒤틀리며 치솟는 형상으로 변화한 것이다. 더욱 신비로운 점은 나무 몸통 뒤틀림 현상이 지표에서 3m 남짓한 지점까지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위는 나무줄기 본래 모습이다. 이곳에서 교차된 지기가 지상 3m 정도까지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문화유산포털]

    전남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문화유산포털]

    ‌한국에도 이런 나무가 여럿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그중 하나다. 문화재청이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로 선정한 두 그루의 향나무인데, 나무줄기가 용틀임하듯 꼬여 있다. 이 또한 속성이 다른 지기의 교차 지점에 향나무가 서 있어 나타난 현상이다. 이처럼 용틀임 나무들은 땅 밑에서 피어오르는 ‘기 에너지’를 가늠하는 지표 구실을 한다. 이 지점에서 풍수의 기운은 관측과 측정이 가능한 과학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풍수에서 말하는 기운은 실재하는 에너지다. 동식물이 본능적으로 기운에 반응하듯이 사람 또한 오감(五感)을 통해 이 기운을 감지하는 게 가능하다. 필자 경험에 의하면 기운은 ‘방향’과 ‘크기’라는 벡터(vector) 성질을 갖는다. 앞서 살펴본 나무처럼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지기,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천기(天氣), 수평 혹은 사선으로 흐르는 생기(生氣) 등 다양한 운동성을 보인다. 또 힘의 세기인 밀도도 그 상태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런 땅의 기운을 인지하지 못한 채 풍수를 얘기하다 보면 비과학적인 주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를테면 창처럼 생긴 남산서울타워가 청와대에 살기(殺氣)를 분출한다느니, 북악산과 북한산이 서로 등을 돌리는 바람에 청와대 터가 배신을 뜻하는 흉지가 됐다느니 하는 식이다. 이렇게 땅의 실재 기운을 배제한 상태에서 주변 모양이나 형상만 보고 풍수를 논하면 주관에 빠지기 쉽고, 일반인들로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마련이다.

    풍수는 동양의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기운을 역동적인 에너지 현상으로 이해할 경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저층 거주 여성 유산 적어

    흔히 땅을 밟고 살아가는 생명체는 땅 기운, 즉 지기를 받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바탕이라고 한다. 지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다 보니 보통 나무 높이로 가늠한다. 해당 지역에서 나무가 자라는 최대 높이를 지기가 미치는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아파트로 치면 대략 5~6층 높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때문에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아이가 땅의 기운을 받아 면역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저층에서 살기를 권하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 단지. [뉴스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 단지. [뉴스1]

    ‌그렇다면 지기 영역을 벗어난 높이에서 살면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해 2010년 일본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임상검사의학회 발표 보고서 내용을 보면 연구진이 아파트 등 집합주택에 거주하는 기혼 여성 19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고층에 살수록 유산 경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1·2층 주거자 중 유산 경험자 비율은 8.9%, 3~5층은 9.2%, 6~9층은 17.8%, 10층 이상은 21.4%였다.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가 발표된 적 있다. 아파트 16층 이상 높이에서 사는 사람이 5층 이하 거주자보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2배 이상 많다는 내용이다(‘아파트 주거 층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1998) 논문 참고). 이 조사에 따르면 주로 유아나 노년층, 중년 여성이 △피로가 지속된다 △속이 울렁거리거나 현기증이 나타난다 △오한이 든다 △복통이 잦다 △눈이 따갑다 △코가 시큰거린다 △손이 저린다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이외에도 고층 거주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이 세계 곳곳에서 보고된 바 있다. 고층 거주는 좋은 전망 확보, 사생활 보장, 낮은 소음도, 통제된 출입구에 의한 낮은 범죄율 등 여러 장점을 갖는다. 반면 지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층 거주자들이 심리적·정신적·사회적으로 일종의 결핍 증세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적잖다.



    공중에서 수직 하강하는 천기(天氣)

    유념할 것은 고층과 저층을 가르는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지기의 강도는 해당 땅의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밀도 등 힘의 세기가 강한 지기는 아파트 10층까지도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세기가 약한 지기는 3층 정도에서 더 치솟지 못한 채 멈추기도 한다. 심지어 지기가 전혀 생성되지 않아 아예 아파트 층수를 따질 필요가 없는 곳도 있다.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장군총. 왕 부부의 무덤방이 천기가 뭉친 혈인 지상에 설치돼 있다. [안영배]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장군총. 왕 부부의 무덤방이 천기가 뭉친 혈인 지상에 설치돼 있다. [안영배]

    ‌또 지기뿐 아니라 천기라는 다른 차원의 기운이 있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천기는 운동성이 지기와 정반대로, 공중에서 아래로 수직 하강하는 기운이다. 고대 한국인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 의식을 가졌고, 하늘의 기운인 천기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고구려 때 조성된 광개토대왕릉이나 장군총(장군분), 무용총 등을 보면 왕과 왕비 시신을 안치한 무덤방이 지상 7~10m 높이에 자리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곳이 천기가 뭉친 혈(穴)이기 때문이다. 보통 날짐승들이 이런 천기가 미치는 영역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천기 역시 그 밀도와 세기 등 힘에 비례해 미치는 범위가 달라진다. 천기가 강한 아파트는 최상층에서 1층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그 영향권에 들기도 한다. 따라서 지기가 미치지 못하는 초고층 아파트에 거주한다 해도 천기가 원활히 작동하는 곳이라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런 곳이야말로 아파트의 진정한 ‘웰빙 로열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운의 작동을 무시한 채 단순히 전망과 채광이 좋고 소음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선호되는 ‘조망 로열층’의 경우 신중히 접근하는 게 좋다. 아파트값이 저층보다 높다고 해서 꼭 좋은 집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