쌔근쌔근 감이 익어갑니다
푸른 감담벼락 위로푸른 감들이 매달려 있다골목은 비틀려 있다비틀린 골목에서는 판단과 구분을 잘해야 한다한곳만 보고 가면나오는 길이 지워진다감들은 한곳만 보며 익는다떫을 만큼 떫은 후에붉게나무에서 떨어져 나온다감들이 매달려 있다골목을…
201209172012년 09월 17일인생 불량품 예방 모두가 안간힘
팩토리펄럭이는 것들은 모두 정수리에 매달아유리 안은 환하고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로 꼭 붙든 검정처럼내 안에는 무늬들만 가득하다나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읽는다연기 나는 심장은 철컥, 철컥부적격 판정을 받은 불량품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
201209102012년 09월 10일아주 오랫동안 이를 서랍에 보관
송곳니얼떨결에 뽑은 송곳니를 들고딸아이는 바르르 떤다방금 전까지 제 몸의 일부이던 것빠져나오는 순간 끔찍해져앓던 소리까지 떨꺽, 굳어졌다뽑힌 이에 묻은 핏물을아이는 옴찔옴찔 휴지로 닦으며벌린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린다아직도 제 몸의 …
201209032012년 09월 03일시가 밥 먹여주지 않지만…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그들은 둘러앉아 잡담을 했다 담배를 피울 때나 뒤통수를 긁을 때도 그들은 시적이었고 박수를 칠 때도 박자를 맞췄다 수상작에 대한 논란은 애초부터 없었고 술자리에서 사고 치지 않았으며 요절한 시인들을 따라가지 …
201208272012년 08월 27일어쨌든 우린 야시장으로 간다
밤 시장텅 빈 시장을 밝히는 불빛들 속에서한 여자가 물건을 사 들고 집으로 간다.집에 불빛이 켜 있지 않다면삶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밤 시장,얼마나 뜨거운 단어인가!빈 의자들은 불빛을 받으며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밤은 깊어가는데 …
201208202012년 08월 20일불에 덴 듯 강렬했던 그녀의 입술
수많은 실금이 없었다면-입술 2담벼락에 난 범퍼 자국처럼 그것은 쪼글쪼글했습니다 하지만 담은 문이 아니어서 저 무시무시한 내면은 지금 고요합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막을 수 없는 것을 막아선 막무가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201208132012년 08월 13일눈으로 반찬 먹은 ‘황당 시추에이션’
밑줄역전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한 여자가 합석을 했습니다주문을 하고 눈 둘 곳 없어 신문을 가져다 들추었습니다시킨 밥이 나란히 각자 앞에 놓이고종업원은 동행인 줄 알았는지 반찬을 한 벌만 가져다주…
201208062012년 08월 06일그해 호되게 비를 맞아봤으니까
안개 속의 거짓말나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실패한 봄이 나를 지나간 후였다꽃이 혼자 지던 날무게중심은 어디서나 숨길 수 없다저기 막 사라진 사람들고개를 숙인 사람들앞 축이 닳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치욕 같은 맨발을 내보인 사람들울고 …
201207302012년 07월 30일우리는 다채롭다
사람들나는 나에게서 나왔다 예전에 나는 나로 가득 차 있었다입안에서 우성이를 몇 개 꺼내 흔든다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지우성이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다그때는 우성이가 다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그러나 가장…
201207232012년 07월 23일죽어서도 아프니까 아프리카지
아프리카그리고는 검다 발톱을 세우고 풀숲에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 얼룩말이 지나가자 번개처럼 덮친다그러나 달려온다 성깔이 사납고 갈기가 무성한 그러나 말을 강탈해 말의 심장과 내장을 먹는다그리고는 나무 위로 달아나 사라지는 말의 얼룩…
201207162012년 07월 16일솜사탕 같은 토요일의 일탈
주말의 명화우리의 심장은 피로해 주말과 영화의 조합이 필요해 여배우를 향한 나의 눈빛이 화면 위로 미끄러지고 공기 중에 떠돌다가 당신의 눈으로 옮겨 간다나를 의심하고 있는가 우리의 심장은 서로 통하지만 공기 중에서 나는 의심받고 있…
201207092012년 07월 09일책은 맥주처럼 시원하니까
평일의 독서조금도 독창적이고 싶지 않은 하루야.오늘의 어둠은 어제의 어둠처럼 혹은백 년 후의 어둠처럼 펼쳐지고나는 다만 읽는 자로서 당신을 바라보네.맥주는 정말 달력 속 맥주처럼 시원하고꼬치에 꿰인 양은 한 번도 매애매애 울지 않아…
201207022012년 07월 02일꼭 쥔 손은 서로를 알아본다
커플 벙어리장갑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더니 커플 장갑을 줬다크리스마스 이벤트로혼자 커플 손이 되어보려는 나의 두 손얼마나 멀리 있었는가 나의 손과 손은나의 손과 손 사이로 지나간 것은절벽의 침묵침묵에 이어진 길고 긴 어둠벙어리장갑 속 …
201206252012년 06월 25일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어깨 너머의 삶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
201206182012년 06월 18일아이의 발길질, 엄마의 손길
열차의 윤곽아이는 뱃속에서 발길질을 배운다아이는 엄마의 위를 지나는 소리를 듣는다 열차를 타면 잠이 오는 건 그 소리에 자꾸 몸을 울리기 때문이다 열차의 통로에서 아이를 안으려다 엄마는 몸을 구부리고 아이에게 안기고 만다 안개는 …
201206112012년 06월 11일TV를 수도꼭지처럼 틀어놓고…
재의 텔레비전코알라 코뿔소 코끼리 한 칸 한 칸텔레비전의 채널은 자정으로 돌아간다태양을 삼킨 열기구가 공중부양 하듯몸속의 부장품들과 함께 밤사이 증발하는코끼리 코알라 코뿔소 코가 시큰한 채널들재가 되기 직전 맹렬히 타오르는초원의 희…
201206042012년 06월 04일단어를 수수깡 삼아 글 만들기
인형놀이강정그날은 비칠대기만 하는 골 속을 뒤집어 가마를 만들었더랬습니다이글거리는 번개가 눈을 뚫고 허공에 검은 창을 열었더랬습니다무슨 애벌레 같은 게 들끓고 있었더랬습니다뚝뚝 마디가 끊긴 누액이 먼 길을 동여매고 있었더랬습니다어제…
201205292012년 05월 29일나이를 먹어야 나는 딱딱 소리
껌 씹는 여자복권 긁는 대신 껌을 씹지딱 딱 소리는 취미 없고 그래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지만풍선을 분다 아주 크게아주 높게하얀 구체가 부풀다애드벌룬처럼 커지면거기 매달린 껌딱지 같겠지 나는말똥을 이고 가는 말똥구리 같겠지애인을 만나…
201205212012년 05월 21일여자의 몸통을 큰 칼로 휙!
마술사구레나룻을 기른 마술사가고개 숙여 인사를 합니다박수 소리는 사자처럼 우렁찹니다미소를 띤 마술사는번쩍이는 큰 칼로 여자의 몸통을 자릅니다비명도 없이슬픔도 없이까딱 까딱 까딱손과 발을 흔들며 여자는 웃고 있습니다위대한 마술사는 미…
201205142012년 05월 14일단짝친구의 고장난 자전거
서울과 겨울1월의 아침텅 빈 고가와 기찻길이 쉬고 있다휴일의 차가운 보도 입을 다문 상가야구 모자를 쓰고 간판과 횡단보도를 번갈아 본다아무도 없는 거리에 쨍한 녹색불이 켜진다빛은 아파트 베란다에 내려 그림자를 만들고창은 잠시 반짝인…
201205072012년 05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