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감
담벼락 위로
푸른 감들이 매달려 있다
골목은 비틀려 있다
비틀린 골목에서는 판단과 구분을 잘해야 한다
한곳만 보고 가면
나오는 길이 지워진다
감들은 한곳만 보며 익는다
떫을 만큼 떫은 후에
붉게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다
감들이 매달려 있다
골목을 지우며 당도한
곧은 햇빛이
푸른 감을 감싸 안는다
판단도 구분도 안 하고
꼭 감싸 안는다
―박시하 ‘푸른 감’(‘눈사람의 사회’ 문예중앙, 2012 중에서)
쌔근쌔근 감이 익어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다. 친구 부탁으로 졸지에 일일 교사가 된 나는 교탁 앞에 어리어리하게 섰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연다. 여러분, 푸른색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시원해요! 차가워요! 탄산음료 맛이 나요! 날아가고 싶어요! 헤엄치고 싶어요! 눈이 부셔요!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다. 다채로운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푸른색 하나가 이렇게 많은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니. 아이들의 눈은 투명하고 제멋대로다. 그것이 푸른색을 살아 있게 한다. 푸른색을 푸른색답게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를 대는 순간, 사방에 빛이 차오른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이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신비롭다. 근데 왜 돌고래 몸에 푸른색을 칠했니? 이 돌고래는 바닷물에 물든 거예요. 수영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대답을 할 때 아이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에는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비틀린 골목”에 들어서기 전 아이들은 이처럼 종잡을 수 없다. 어디로 달려갈지 알 수 없다. “판단과 구분”에 익숙지 않으므로. 백지를 빙판 삼아 자유롭게 미끄러지므로.
한 아이는 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그렸다. 지금은 여름인데 왜 감을 붉은색으로 칠했니? “푸른 감들이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익을 거니까요. 지금도 열심히 익고 있으니까요. 앞니가 다 빠진 아이가 열심히 대답하더니, 이윽고 “곧은 햇빛”처럼 환히 웃는다. 아무래도 네 웃음이 감을 익게 만들 거 같구나. 아이는 벌써부터 변화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한곳만 보고 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것이다. 창문에 들이치는 햇빛이 유독 따사롭다.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도화지는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은 아지랑이처럼 무럭무럭 피어오르므로. 꿈은 변화무쌍하므로. 붉은 감을 그린 아이가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나온다. “떫을 만큼 떫은 후에” 자신이 그린 그 그림을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익는다”를 ‘읽는다’로 바꾸어 발음해보며,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 더듬어본다. 햇빛이 골목 어귀에 접어드는 내 몸을 “꼭 감싸 안는다”, 엄마처럼. “푸른 감”은 쌔근쌔근 익고 있다, 아이처럼. 마당이 풍성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골목길 안에서 가슴이 뛰놀기 시작한다.
담벼락 위로
푸른 감들이 매달려 있다
골목은 비틀려 있다
비틀린 골목에서는 판단과 구분을 잘해야 한다
한곳만 보고 가면
나오는 길이 지워진다
감들은 한곳만 보며 익는다
떫을 만큼 떫은 후에
붉게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다
감들이 매달려 있다
골목을 지우며 당도한
곧은 햇빛이
푸른 감을 감싸 안는다
판단도 구분도 안 하고
꼭 감싸 안는다
―박시하 ‘푸른 감’(‘눈사람의 사회’ 문예중앙, 2012 중에서)
쌔근쌔근 감이 익어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다. 친구 부탁으로 졸지에 일일 교사가 된 나는 교탁 앞에 어리어리하게 섰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연다. 여러분, 푸른색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시원해요! 차가워요! 탄산음료 맛이 나요! 날아가고 싶어요! 헤엄치고 싶어요! 눈이 부셔요!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답한다. 다채로운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푸른색 하나가 이렇게 많은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니. 아이들의 눈은 투명하고 제멋대로다. 그것이 푸른색을 살아 있게 한다. 푸른색을 푸른색답게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를 대는 순간, 사방에 빛이 차오른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이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신비롭다. 근데 왜 돌고래 몸에 푸른색을 칠했니? 이 돌고래는 바닷물에 물든 거예요. 수영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대답을 할 때 아이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에는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비틀린 골목”에 들어서기 전 아이들은 이처럼 종잡을 수 없다. 어디로 달려갈지 알 수 없다. “판단과 구분”에 익숙지 않으므로. 백지를 빙판 삼아 자유롭게 미끄러지므로.
한 아이는 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그렸다. 지금은 여름인데 왜 감을 붉은색으로 칠했니? “푸른 감들이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익을 거니까요. 지금도 열심히 익고 있으니까요. 앞니가 다 빠진 아이가 열심히 대답하더니, 이윽고 “곧은 햇빛”처럼 환히 웃는다. 아무래도 네 웃음이 감을 익게 만들 거 같구나. 아이는 벌써부터 변화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한곳만 보고 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것이다. 창문에 들이치는 햇빛이 유독 따사롭다.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도화지는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은 아지랑이처럼 무럭무럭 피어오르므로. 꿈은 변화무쌍하므로. 붉은 감을 그린 아이가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나온다. “떫을 만큼 떫은 후에” 자신이 그린 그 그림을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익는다”를 ‘읽는다’로 바꾸어 발음해보며,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 더듬어본다. 햇빛이 골목 어귀에 접어드는 내 몸을 “꼭 감싸 안는다”, 엄마처럼. “푸른 감”은 쌔근쌔근 익고 있다, 아이처럼. 마당이 풍성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골목길 안에서 가슴이 뛰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