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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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밥 먹여주지 않지만…

  • 입력2012-08-27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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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 밥 먹여주지 않지만…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

    그들은 둘러앉아 잡담을 했다

    담배를 피울 때나 뒤통수를 긁을 때도 그들은 시적이었고

    박수를 칠 때도 박자를 맞췄다

    수상작에 대한 논란은 애초부터 없었고



    술자리에서 사고 치지 않았으며

    요절한 시인들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들이 분명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연애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버릴 테다

    이 문장을 애용하던 그는

    외국으로 나다니더니

    여행책자를 출간해 한턱 쏘았다 난 안 취할 만큼 마셨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빠진 이들

    그 시인들은 제 밥그릇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신촌의 작업실에서 애들이 기어다니는 방구석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지고 있는지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손끝에서

    줄기와 꽃봉오리가 환해지는지

    중요한 건 그런 게 없다는 것

    아무도 안 죽고 난 애도의 시도 쓸 수 없고

    수술을 받으며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

    ―김이듬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사, 2011 중에서)

    시가 밥 먹여주지 않지만…

    시가 밥 먹여주니? 가끔 고향에 내려가 마감한답시고 밤늦게까지 끙끙대는 나를 보면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신다. 아들 몸이 축나는 걸 보기 싫으신 것이다. 시가 밥 먹여주지 않으므로, 어머니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간식을 가져다주신다. 시 대신 밥 먹여주기 위해. 나는 부득불 그것을 입에 넣는다. 맛있다. 글 쓸 맛이 난다. 눈에 힘이 들어간다. 열 개 손가락이 춤추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간다. 그 수상함이 나를 다음 문장으로 데려간다.

    다음 날, 상경해서 시인들이 모인 술자리에 갔다. 한 시인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다들 시인처럼 생겼다. 나는 좀 부끄럽다. 아직도 사람들은 내가 시를 쓴다고 하면 ‘네가 무슨 시를 써?’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뒤통수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줄기”가 시들고 “꽃봉오리”가 닫히는 것 같다.

    우리는 생맥주와 치킨을 주문하고 걸어 들어오는 수상자를 반가이 맞이했다. 질투와 시새움은 “애초부터 없었”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시인이 무슨 기인인 줄 안다. 혼자 한강에 가서 독한 술을 병째 마시는 줄 안다. “믿을 수 없는 연애 사건”에 연루되어 온몸으로 드라마를 쓰는 줄 안다. 아니다. 우리는 그저 “박수를 칠 때도 박자를 맞”출 정도의 센스를 갖춘 자들이다. 가끔 만나서 회포를 풀고 다음 날부터는 또다시 자기만의 시를 쓰며 외로워지는 자들이다. “제 밥그릇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지는 자들이다. 이것을 겸허히, 기꺼이 하는 자들이다.

    한밤중에 원고를 쓰다 말고 문득 상념에 잠긴다. 시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는 빛을 발한다. 그것은 애초 무엇을 바라고 시작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스스로 바람 하나, 바람 한 점으로 완성되었다 사라지는 것이므로. 시인은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다는 걸 쓰면서 깨닫는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 잡을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바보같이, 그러나 바보라는 사실에 이따금 감동하기도 하면서.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손끝”을 상상한다. 손끝이 예민해지는 바로 그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품어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시, 밥을 먹여주지는 못해도 밥풀이 되어 우리 소매 끝에 딱 달라붙는 시, 쓸모없어서 더 아름다운 시,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사람들 가슴에 획을 긋는 시, 그 가슴속에서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세로 어룽지는 시.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우리 시는 더 오래 살 것이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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