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
펄럭이는 것들은 모두 정수리에 매달아
유리 안은 환하고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로 꼭 붙든 검정처럼
내 안에는 무늬들만 가득하다
나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읽는다
연기 나는 심장은 철컥, 철컥
부적격 판정을 받은 불량품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재조립 공정 과정으로 후송된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허공으로 흩어져
용광로처럼 사람들을 삼켰다
밤이면 그림자를 뱉어내는
내 머리 위로 이십사 시간 흔들리는 백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심장에 연결된 컨베이어 벨트로
표준 인증 마크가 새겨진 감정들이 대량생산 중
그중 하나를 집어 양 귀에 걸자
하루 종일 하악이 광대처럼 덜렁거린다
―이용임 ‘팩토리’(‘안개주의보’ 문학과지성사, 2012 중에서)
인생 불량품 예방 모두가 안간힘
공부를 왜 열심히 해야 하나요? 저는 다른 꿈이 있는데요. 어떤 꿈이든 공부를 열심히 해야 이루어진단다. 한국에서는 그렇단다. 개개인마다 꿈이 다 다른데, 굳이 똑같은 공부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아니란다. 무엇이든 되려면, 기껏 뭐라도 되려면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단다. 수학과 영어를 공부해야 한단다. 국어와 과학에도 능해야 한단다. 그렇게 도합 십육 년을 공부했더니 몸에 “표준 인증 마크가 새겨”졌다. 이제 나는 갑남이고 너는 을녀다. 우리의 신세는 똑같다. 똑같이 처량하다.
우리는 “유리 안”으로 들어간다. 세계는 투명할 거야.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팍팍할 거야. 모종의 기대를 하며 십육 년간 몰래 꿔왔던 꿈을 되새긴다. “무늬들”을 섣불리 보여주지 마. “펄럭이는 것들”을 최대한 숨겨야 돼. 나부끼는 걸 알면 사정없이 공격하려 드니까. 문득문득 선생님의 경고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읽는” 심정이 된다. 한껏 어색하고 막막해진다. “심장”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철컥, 철컥” 사방이 금속성의 소리로 진동한다. 아득바득 사는 수밖에 없다. 희망은 희미해지긴 해도 영영 없어지진 않으므로. 언젠간 유리 안으로 햇빛이 들이칠 것이므로.
다음 날, 갑남을녀는 또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출근을 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하루치 할당량을 소화해낸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는데, 왜 나는 시간을 죽이려 애쓰는 걸까 때때로 생각하면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불량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말끔히 해내야 한다. 투명할 줄만 알았던 세계는 “용광로처럼 사람들을 삼”키려 든다. “내 머리 위로 이십사 시간 흔들리는 백기”는 나에게 항복하기를 요구한다. 이만하면 됐어. 네 세계는 여기까지야. 유리가 뿌예진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도리질을 하며 어금니를 악문다.
집에 오면 녹초다. 나는 번번이 나가떨어진다. 하릴없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눈꺼풀이 완전히 무거워질 때를 기다린다. 선반 위로 얼마 전에 사둔 책들이 보인다. 위에 먼지가 수북하다. 활자들도 분명 외로울 것이다. 그 외로움을 달래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졸음이 몰려온다. 시간이 다 죽은 모양이다. 눈뜨니, 여기는 어김없이 공장. 생산을 위해 오늘도 공장으로 투입되는 우리. 정작 우리는 무엇이 생산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 “하악”이 탈구되는 느낌만 선명해진다. 어제는 아차, 오늘은 아뿔싸! 그래도 내일만큼은 아자아자! 헛기침을 하고 어제의 시곗바늘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펄럭이는 것들은 모두 정수리에 매달아
유리 안은 환하고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로 꼭 붙든 검정처럼
내 안에는 무늬들만 가득하다
나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읽는다
연기 나는 심장은 철컥, 철컥
부적격 판정을 받은 불량품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재조립 공정 과정으로 후송된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허공으로 흩어져
용광로처럼 사람들을 삼켰다
밤이면 그림자를 뱉어내는
내 머리 위로 이십사 시간 흔들리는 백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심장에 연결된 컨베이어 벨트로
표준 인증 마크가 새겨진 감정들이 대량생산 중
그중 하나를 집어 양 귀에 걸자
하루 종일 하악이 광대처럼 덜렁거린다
―이용임 ‘팩토리’(‘안개주의보’ 문학과지성사, 2012 중에서)
인생 불량품 예방 모두가 안간힘
공부를 왜 열심히 해야 하나요? 저는 다른 꿈이 있는데요. 어떤 꿈이든 공부를 열심히 해야 이루어진단다. 한국에서는 그렇단다. 개개인마다 꿈이 다 다른데, 굳이 똑같은 공부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아니란다. 무엇이든 되려면, 기껏 뭐라도 되려면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단다. 수학과 영어를 공부해야 한단다. 국어와 과학에도 능해야 한단다. 그렇게 도합 십육 년을 공부했더니 몸에 “표준 인증 마크가 새겨”졌다. 이제 나는 갑남이고 너는 을녀다. 우리의 신세는 똑같다. 똑같이 처량하다.
우리는 “유리 안”으로 들어간다. 세계는 투명할 거야.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팍팍할 거야. 모종의 기대를 하며 십육 년간 몰래 꿔왔던 꿈을 되새긴다. “무늬들”을 섣불리 보여주지 마. “펄럭이는 것들”을 최대한 숨겨야 돼. 나부끼는 걸 알면 사정없이 공격하려 드니까. 문득문득 선생님의 경고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읽는” 심정이 된다. 한껏 어색하고 막막해진다. “심장”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철컥, 철컥” 사방이 금속성의 소리로 진동한다. 아득바득 사는 수밖에 없다. 희망은 희미해지긴 해도 영영 없어지진 않으므로. 언젠간 유리 안으로 햇빛이 들이칠 것이므로.
다음 날, 갑남을녀는 또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출근을 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하루치 할당량을 소화해낸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는데, 왜 나는 시간을 죽이려 애쓰는 걸까 때때로 생각하면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불량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말끔히 해내야 한다. 투명할 줄만 알았던 세계는 “용광로처럼 사람들을 삼”키려 든다. “내 머리 위로 이십사 시간 흔들리는 백기”는 나에게 항복하기를 요구한다. 이만하면 됐어. 네 세계는 여기까지야. 유리가 뿌예진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도리질을 하며 어금니를 악문다.
집에 오면 녹초다. 나는 번번이 나가떨어진다. 하릴없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눈꺼풀이 완전히 무거워질 때를 기다린다. 선반 위로 얼마 전에 사둔 책들이 보인다. 위에 먼지가 수북하다. 활자들도 분명 외로울 것이다. 그 외로움을 달래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졸음이 몰려온다. 시간이 다 죽은 모양이다. 눈뜨니, 여기는 어김없이 공장. 생산을 위해 오늘도 공장으로 투입되는 우리. 정작 우리는 무엇이 생산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 “하악”이 탈구되는 느낌만 선명해진다. 어제는 아차, 오늘은 아뿔싸! 그래도 내일만큼은 아자아자! 헛기침을 하고 어제의 시곗바늘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