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지휘자’이자 ‘안방마님’이라고 부르는 포수는 사실 3D 포지션이다. LG 포수 김태군.
힘들고 폼 안 나는 3D 포지션
올 시즌 각 구단 성적은 팀별 안방마님의 희비에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펜딩 챔피언인 1위 삼성은 물론 롯데, SK, 두산 등 4강권에 든 팀은 베테랑 포수든, 젊은 포수든 중요한 게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안방마님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권 팀들은 대부분 주전 포수의 활약이 미미했다.
포수에게 주어진 최고의 책임이자 권한은 투수 리드다. 투수 리드는 전력 분석이라는 과학적 통계와 개인적 영감, 그리고 경험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포수는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전력분석팀에서 넘어온 자료와 지난 게임에서 상대와 맞섰던 기억, 최근 타자의 컨디션 등과 함께 투수의 상태를 계산해 구질과 코스를 결정한다. 더욱이 포수는 투수뿐 아니라 야수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타자와 치열한 머리싸움을 펼쳐야 한다. ‘그라운드의 지휘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포수는 상대 타자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필요로 한다. 투수는 공 하나하나에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공이 승부구인지, 타자 방망이를 나오게 하기 위한 유인구인지, 때론 타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기 위한 위협구인지 등 상황에 따라 공을 던지는 목적도 각기 다르다. 이를 조율하는 게 포수다. 포수의 공 배합은 투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초 행위다.
포수는 타석에 선 타자의 위치, 스윙 궤적, 파울이 형성되는 과정뿐 아니라 상대 팀 벤치 분위기도 파악해야 한다. 공 배합에 대한 기본 지식도 갖춰야 하는데, 이 기본 지식이 탄탄할 때 순간적인 응용력도 생긴다. 여기에 주자의 도루도 저지해야 하고, 때론 투수에게 주자 견제를 지시하기도 한다. 공 배합에 따른 수비 위치 조정 등 포수가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포수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포지션이다. 먼저 몸이 고되다. 3D(dirty, dangerous, difficult) 포지션으로 분류된다. ‘장비 전시관’이라고 할 정도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장비도 많다. 헬멧, 마스크는 기본이고 가슴 보호대, 다리·팔꿈치·발목 보호대를 차야 한다. 여기에 급소를 보호하기 위해 낭심 보호대도 갖춰야 한다. 이 무게만 해도 10kg에 이른다.
보호장비의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면서 한 게임에 연습 투구까지 포함해 평균(9이닝 기준) 약 150개 안팎의 공을 받는다. 당연히 포수는 최소한 150번 투수에게 공을 돌려줘야 한다. 투수에게 던지는 공은 둘째치더라도 주자를 견제하려고, 혹은 도루를 저지하려고 전력을 다해 송구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이 숫자만큼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 내야 땅볼 때는 1루수 뒤쪽으로 있는 힘껏 뛰어가 송구가 뒤로 빠지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 훈련량이 절대적으로 많다. 투수의 훈련시간에 맞춰 공을 받아줘야 하고, 야수들과 똑같이 타격과 수비 훈련도 한다. 펑고(fungo)와 팝플라이(pop fly)를 받기 위한 훈련도 별도로 한다. 포수는 투수가 던진 공을 뒤로 빠뜨리지 않기 위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한다. 때로는 파울 타구에 직접 맞기도 한다. 그야말로 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다.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를 블로킹하다 보면 무릎과 발목 인대, 허리를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뿐 아니다. 포수는 정신적으로도 힘든 포지션이다. 안방마님이라는 별명 뒤에는 포수가 갖는 중요성뿐 아니라 팀에 대한, 투수에 대한 ‘어머니 같은’ 헌신을 포함한다. 다른 포지션보다 전력 분석에 쏟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많다. 머리도 좋아야 한다. 투수가 성적이 좋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투수지만, 투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포수가 비난의 화살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리드를 잘 못했다’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선수들 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포지션이 바로 포수다. 그뿐 아니라 포수는 야수 소속이지만, 타자보다는 투수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수년 전 서울 연고팀 소속 한 포수는 팀 내 타자와 투수의 감정싸움 때 투수가 아닌 타자 편에 섰다고 투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
고교 유망주들은 해외 진출
8월 9일 LG 대 롯데 경기에서 LG 윤요섭이 친 공이 파울로 판정되자 웃으며 바라보는 롯데 포수 강민호.
설상가상으로 고교 포수 유망주들도 최근 1~2년 사이 대거 해외로 유출됐다. 2010년 화순고 신진호와 동산고 최지만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고교 포수 중 최대어로 꼽히던 야탑고 김성민이 일찌감치 메이저리그행을 결정했다. 포수 자원이 부족하긴 미국도 마찬가지라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투수뿐 아니라 포수 유망주들에게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 프로야구 8개 구단 포수 중 최고를 다투는 이들은 SK 박경완과 조인성, 삼성 진갑용, 롯데 강민호, 두산 양의지 등 상위권 팀에 포진해 있다. 그중 박경완과 조인성, 진갑용 등은 서른 중반이 훨씬 넘은 노장이다.
야구에서 어느 포지션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포수가 그 어느 포지션보다 팀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포수는 주전 자리를 꿰차기 힘들지만 일단 주전 자리에 앉으면 롱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롯데 강민호는 “한여름에 9이닝을 뛰고 나면 2~3kg이 빠질 정도로 너무 힘들다”면서도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도 포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지만 이보다 더 매력적인 포지션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