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이,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야’하고 반사회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야마나시(주제 없다)’, ‘오치나시(소재 없다)’, ‘이미나시(의미 없다)’라는 일본 단어들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으로 ‘남성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나 만화’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판 야오이가 수입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이며, 2001년 무렵부터 국내 대형 만화사들도 라이선스 야오이를 펴내기 시작했으니 짧은 역사는 아니다. 지금은 야오이를 그리는 국내 작가들도 등장하고 있으며, 인터넷 만화 사이트 어디에서나 야오이는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점잖은’ 일반인들이 야오이란 말을 많이 접하게 된 건 올해 초 영화 ‘왕의 남자’와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때다. ‘왕의 남자’의 이준기 신드롬이 남성 동성애 코드냐, 꽃미남 애호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야오이는 확장된 남성 동성애 문화의 하나로 언급됐다.
동성애자 아닌 여성들이 주 소비자
최근 야오이를 여성학의 학문적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발표되고 페미니스트 저널 ‘언니네’(www.unninet.
co.kr)가 특집으로 ‘야.오.이’를 다루면서 야오이는 본격적인 관심 대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야오이에 대한 인기가 ‘남성 동성애에 대한 여성들의 호기심’, ‘꽃미남에 대한 취향의 변형’으로 해석되거나 심지어 ‘음란물’로 취급돼온 데 대해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여성들이 없는 가상공간 속에서 여성들 스스로 자유롭게 남성들과 동일시하는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 야오이라고 분석한다. 남성을 성적 주체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규정한 (남성용) 포르노물의 위협을 받지 않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즐기고 욕망하여 만들어낸 세계가 바로 야오이라는 것이다.
야오이를 ‘야한 오이’라고 적절(?)하게 해석한 언니네트워크 편집팀의 페이퍼문 씨는 “야오이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다뤄볼 만한 가치가 있다. 2006 독일월드컵 때 축구선수들의 몸을 응시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나. 이를 분석하고 즐기는 글을 블로그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야오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야오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야오이물은 여성들에게 남자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남자의 몸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환기하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덧붙인다.
야오이를 읽거나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용어가 있다.
공/수 공은 남성 관계에서 리드하는 쪽이며 ‘톱(top)’이라고도 한다. 수는 리드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텀(bottom)’이라고 한다. 공/수는 바뀔 수 있고, 모호하기도 하다.
씬 어의 신(scene)에서 온 말로 야오이의 섹스 장면인데, 씬이 없으면 야오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야오이 팬이 많다.
BL oy’s Love의 약자로 다소 가벼운 야오이물.
동인녀 화 동아리에서 동인지를 내는 여성들을 뜻하다가 최근엔 야오이 애호 여성을 지칭하게 됐다.
오피스물 남성 동성애를 다루기 때문에 회사가 배경이 되는 만화가 많다. ‘시마 과장’을 비롯해 많은 일본 만화의 배경은 회사다. 특히 동성애 ‘과장님’이 많이 등장한다.
야오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남성 동성애를 다룸에도 주요 소비자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이성애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동성애자들 중에는 야오이가 ‘게이를 비현실적으로 그린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 논문으로 야오이를 분석한 모래 씨는 “야오이는 여성들을 위한 로맨스물이면서 포르노물인 동시에, 로맨스물도 포르노물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야오이는 포르노처럼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그린다. 그 안에서 ‘공’이 성적 대상이 되는 ‘수’를 가혹하게 몰아감으로써 성관계가 자주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허용된다. 이런 점에서 야오이는 전형적인 포르노의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섹슈얼리티를 계승한다. 그러나 동인녀들은 폭력성과 강력함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그 난폭한 섹슈얼리티를 남성만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동인녀들의 위치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이 아니라, 남성 대상을 바라보고 즐거움을 누리는 주체로 자신을 경험하게 한다.”
실제로 야오이를 보는 여성들은 재미 외에 ‘편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거론한다. 전형적 포르노에서 성적 대상이 된 여성을 볼 때 느끼던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연애나 결혼, 일상생활과 직장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 때문에 여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심지어 남자친구와 섹스할 때조차 그런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다 야오이를 보면 문득 연애와 섹스를 이렇게 즐길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는 거예요. 야오이에 엽기적인 ‘씬’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게 굴욕적이라거나 학대라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그것도 섹스를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란 생각이 들죠.”(동인녀, 35세)
남성-여성 관계에서 ‘여성성’을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여성 코스퍼(만화 캐릭터를 연기하는 ‘코스프레’를 즐기는 여성)를 야오이 문화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야오이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역전시킨 텍스트이기 때문에 남성들은 대부분 혐오스러워한다. 여성주의적 시각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남성들조차 ‘여성들이 야오이를 읽는 이유는 여성들의 레즈비언 성향을 반대 성에 투사한 것’이라며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방송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야오이를 가끔 본다. ‘서양 골동 양과자점’처럼 줄거리가 탄탄하고 가벼운 야오이물은 재미있지만, 씬으로 일관한 야오이는 덮어버리게 된다.”(이성애 남성, 37세)
대부분 남성들 혐오스런 반응
남성들의 반응에 모래 씨는 “야오이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의심받아서는 안 되는 이성애 남성 섹슈얼리티의 취약성을 공격하고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성애는 아직도 이성애 남성의 ‘수치’로 여겨진다. 한 이성애 남성은 최근 육군 소령이 사병 20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거론하면서 “야오이가 그리는 폭력은 여성에게 ‘가상’이지만, 남성에겐 인정하기 싫어도 현실이다. 그래서 끔찍하다”고 털어놓는다. 여성들이 포르노를 볼 때 ‘현실’로 느끼듯, 남성들도 심리적으로 불편한 것이다.
야오이가 이성애 사회의 남녀 관계를 전복적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가 심오하거나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은 건 결코 아니다. 많은 야오이들은 말도 되지 않는 줄거리에 우연과 과장을 남발하는 싸구려 포르노 만화다. 남성들이 그러하듯, 동인녀들도 만홧가게에서 쥐포를 씹으면서 음흉하게 웃으며 야오이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백마 탄 왕자보다 더 환상적인 과장님이 나오는 세계를 말이다. 그러나 여성은 만홧가게에 들어가 야오이를 고르는 일 자체만으로도 뒤통수가 따갑게 남성들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
서울 신촌 만화대여점의 직원은 “야오이는 다른 만화와 달리 대여점에서 직접 보기보다 아예 사가는 여성 손님이 많다. 며칠 전에도 40대 아주머니가 야오이 ‘걸작’ 수십 권을 사갔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포르노를 모으듯 그 아주머니도 ‘야오이 컬렉션’을 위해 사갔는지는 모르나, 남편 몰래 숨어서 야오이를 읽고 있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야오이는 이성애 남성 중심의 포르노를 남용한 사회가 낳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판 야오이가 수입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이며, 2001년 무렵부터 국내 대형 만화사들도 라이선스 야오이를 펴내기 시작했으니 짧은 역사는 아니다. 지금은 야오이를 그리는 국내 작가들도 등장하고 있으며, 인터넷 만화 사이트 어디에서나 야오이는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점잖은’ 일반인들이 야오이란 말을 많이 접하게 된 건 올해 초 영화 ‘왕의 남자’와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때다. ‘왕의 남자’의 이준기 신드롬이 남성 동성애 코드냐, 꽃미남 애호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야오이는 확장된 남성 동성애 문화의 하나로 언급됐다.
동성애자 아닌 여성들이 주 소비자
최근 야오이를 여성학의 학문적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발표되고 페미니스트 저널 ‘언니네’(www.unninet.
co.kr)가 특집으로 ‘야.오.이’를 다루면서 야오이는 본격적인 관심 대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야오이에 대한 인기가 ‘남성 동성애에 대한 여성들의 호기심’, ‘꽃미남에 대한 취향의 변형’으로 해석되거나 심지어 ‘음란물’로 취급돼온 데 대해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여성들이 없는 가상공간 속에서 여성들 스스로 자유롭게 남성들과 동일시하는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 야오이라고 분석한다. 남성을 성적 주체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규정한 (남성용) 포르노물의 위협을 받지 않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즐기고 욕망하여 만들어낸 세계가 바로 야오이라는 것이다.
야오이를 ‘야한 오이’라고 적절(?)하게 해석한 언니네트워크 편집팀의 페이퍼문 씨는 “야오이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다뤄볼 만한 가치가 있다. 2006 독일월드컵 때 축구선수들의 몸을 응시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나. 이를 분석하고 즐기는 글을 블로그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야오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야오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야오이물은 여성들에게 남자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남자의 몸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환기하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덧붙인다.
야오이를 읽거나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용어가 있다.
공/수 공은 남성 관계에서 리드하는 쪽이며 ‘톱(top)’이라고도 한다. 수는 리드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텀(bottom)’이라고 한다. 공/수는 바뀔 수 있고, 모호하기도 하다.
씬 어의 신(scene)에서 온 말로 야오이의 섹스 장면인데, 씬이 없으면 야오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야오이 팬이 많다.
BL oy’s Love의 약자로 다소 가벼운 야오이물.
동인녀 화 동아리에서 동인지를 내는 여성들을 뜻하다가 최근엔 야오이 애호 여성을 지칭하게 됐다.
오피스물 남성 동성애를 다루기 때문에 회사가 배경이 되는 만화가 많다. ‘시마 과장’을 비롯해 많은 일본 만화의 배경은 회사다. 특히 동성애 ‘과장님’이 많이 등장한다.
야오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남성 동성애를 다룸에도 주요 소비자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이성애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동성애자들 중에는 야오이가 ‘게이를 비현실적으로 그린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 논문으로 야오이를 분석한 모래 씨는 “야오이는 여성들을 위한 로맨스물이면서 포르노물인 동시에, 로맨스물도 포르노물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야오이는 포르노처럼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그린다. 그 안에서 ‘공’이 성적 대상이 되는 ‘수’를 가혹하게 몰아감으로써 성관계가 자주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허용된다. 이런 점에서 야오이는 전형적인 포르노의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섹슈얼리티를 계승한다. 그러나 동인녀들은 폭력성과 강력함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그 난폭한 섹슈얼리티를 남성만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동인녀들의 위치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이 아니라, 남성 대상을 바라보고 즐거움을 누리는 주체로 자신을 경험하게 한다.”
실제로 야오이를 보는 여성들은 재미 외에 ‘편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거론한다. 전형적 포르노에서 성적 대상이 된 여성을 볼 때 느끼던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연애나 결혼, 일상생활과 직장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 때문에 여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심지어 남자친구와 섹스할 때조차 그런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다 야오이를 보면 문득 연애와 섹스를 이렇게 즐길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는 거예요. 야오이에 엽기적인 ‘씬’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게 굴욕적이라거나 학대라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그것도 섹스를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란 생각이 들죠.”(동인녀, 35세)
만화 주인공으로 분장한 ‘코스프레’ 동호회원들.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야오이’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방송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야오이를 가끔 본다. ‘서양 골동 양과자점’처럼 줄거리가 탄탄하고 가벼운 야오이물은 재미있지만, 씬으로 일관한 야오이는 덮어버리게 된다.”(이성애 남성, 37세)
대부분 남성들 혐오스런 반응
남성들의 반응에 모래 씨는 “야오이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의심받아서는 안 되는 이성애 남성 섹슈얼리티의 취약성을 공격하고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성애는 아직도 이성애 남성의 ‘수치’로 여겨진다. 한 이성애 남성은 최근 육군 소령이 사병 20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거론하면서 “야오이가 그리는 폭력은 여성에게 ‘가상’이지만, 남성에겐 인정하기 싫어도 현실이다. 그래서 끔찍하다”고 털어놓는다. 여성들이 포르노를 볼 때 ‘현실’로 느끼듯, 남성들도 심리적으로 불편한 것이다.
야오이가 이성애 사회의 남녀 관계를 전복적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가 심오하거나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은 건 결코 아니다. 많은 야오이들은 말도 되지 않는 줄거리에 우연과 과장을 남발하는 싸구려 포르노 만화다. 남성들이 그러하듯, 동인녀들도 만홧가게에서 쥐포를 씹으면서 음흉하게 웃으며 야오이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백마 탄 왕자보다 더 환상적인 과장님이 나오는 세계를 말이다. 그러나 여성은 만홧가게에 들어가 야오이를 고르는 일 자체만으로도 뒤통수가 따갑게 남성들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
서울 신촌 만화대여점의 직원은 “야오이는 다른 만화와 달리 대여점에서 직접 보기보다 아예 사가는 여성 손님이 많다. 며칠 전에도 40대 아주머니가 야오이 ‘걸작’ 수십 권을 사갔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포르노를 모으듯 그 아주머니도 ‘야오이 컬렉션’을 위해 사갔는지는 모르나, 남편 몰래 숨어서 야오이를 읽고 있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야오이는 이성애 남성 중심의 포르노를 남용한 사회가 낳은 ‘괴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