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미국 쪽에선)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최근 대미(對美) 발언에 대해 한 미국 측 관계자가 보였다는 반응이다. 노 대통령은 7월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지금 우리가 북한의 목을 졸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미국은 오류가 일체 없는 나라냐. 미국의 오류에 대해서는 한국은 일절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해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유엔안보리 결의안 이후 한-미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이 추가적 금융제재 가능성을 흘리고 ‘탈북 난민’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한편, 상원에서는 ‘북한 비확산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나오고 있는 ‘이상 징후’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사안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번 일로 인해 한-미 관계가 특별히 더 나빠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 이 같은 반응의 근저에는 한-미 관계가 노무현 정부 이래로 ‘꾸준히’ 악화돼왔기 때문에 이제는 어떻게 해볼 여지도 없다는 무력감이 깔려 있다.
그러면 미국 측 인사의 반응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 전문가는 “미국이 노 정부를 제쳐놓았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여러 신호들을 종합해보면 노 정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에도 한국은 장관급 회담을 열었다. 또 한국의 통일부 장관은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에서 가장 실패한 쪽은 미국’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렇게 엇나가는 상대와 어떻게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미국이 최근 쏟아내는 갖가지 대북 압박은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도 볼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은 5·31 지방선거에서 한국의 민심이 노 정부를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선 노 정부의 남은 임기 1년 반을 적당히 넘기고, 한국의 차기 정부와 새롭게 관계 설정을 도모하려 하지 않겠는가.”
“미국은 노무현 정부를 제쳐놓았다는 의미”
겉으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속으로 곪고 있는 한-미 관계의 현황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7월13, 14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가 그것. 미국이 ‘2010년 이전에라도 한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할 수 있다’고 제의함으로써 한국 측을 당혹케 했던 바로 그 회의다. 노 정부 초기에 외교안보팀에 참여했던 한 원로 인사가 비공개 석상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비공식 석상에서 우리 측이 미 측 대표들에게 미국이 왜 그 같은 제의를 했는지 물어봤다. 미 측의 답변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노무현 정부가 처음 제기했으니 다음 정권에 떠넘기지 말고 노 정부와 조지 W 부시 2기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안을 마무리짓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 둘째,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관련해 서울에선 ‘나가라’ 하고 평택에선 ‘오지 말라’ 하는 것에 대한 불만. 셋째, 요즘 같은 상황이면 필경 미군이 한국을 떠날 날이 올 터인데 쫓기듯이 나가는 것보다는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 그나마 모양새가 낫지 않겠느냐는 것 등이었다. 이 말을 듣고 ‘한-미 관계가 갈 데까지 갔구나’ 하고 느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이 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자주’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이 공식 언급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일각에서는 정보수집 능력 등 한국군의 독자적 대비 태세가 미흡한 상태에서 성급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안보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들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은 뒤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일본처럼 자위대와 주일미군이 각기 별도의 지휘체계를 갖는 ‘병립형 지휘체계(duel command)’를 갖출지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관변 연구단체에 몸담고 있는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은 뒤 양국 군이 어떻게 연계 고리를 유지할지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으로 고민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선 육군은 우리가 독자적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해·공군은 미군의 지휘를 받게 한다거나, 전선을 동·서부로 나눠 양국 군이 담당 구역을 나누자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순전히 탁상공론일 뿐이다. 요컨대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의지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준비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심리적 거리 좁힐 인물 부재
그러면 미국 측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정보통은 “최근 만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가 이 일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아이디어 중 가장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한-미 간의 갈등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미국 측의 감정을 가장 상하게 한 것이 바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라는 것. 최근 SPI에서 미국이 보인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미 간의 이상 징후로 볼 수 있는 일들은 최근 외교 현장에서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틀 뒤인 7월6일 부시 미 대통령과 10분간 통화했다. 반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는 7월21일 30분간 통화하면서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대책을 숙의했다.
7월20일 외교통상부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7월28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이전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일정은 레바논 사태를 이유로 ARF 이후로 연기됐고, 새로 조정된 일정도 또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이에 대해 한 정보관계자는 “라이스 장관이 서울에 와봤자 합의할 게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풀이했다. “이런 식이라면 9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결과도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 관계가 어떻게 해서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그동안 정부는 한-미 관계와 대북공조에 이상이 없음을 줄곧 강조해왔다. 집권 초기에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주한미군 감축, 미군기지 이전 등 주요 현안을 대등한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타결했다는 게 정부가 즐겨 내놓던 근거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에 대해 “미국에 줄 것은 다 내주면서도 두 나라 간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 비판한다.
최근에는 외교안보팀 내부의 무기력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주요 멤버들이 제각각 다른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 직,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반 장관의 후임 자리에 관심이 쏠려 있고,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청와대 내 일부 세력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들이다. 확인할 수 없는 뒷공론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얘기가 나오는 배경에 “미국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인물이 없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도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7월27일자 청와대 브리핑에서 “일부 신문이 남-북 문제와 한-미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안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며 또다시 언론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 그 예다. 노 정부의 ‘언론 탓’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바로 그런 독선적인 행태가 한-미 관계에도 ‘독약’이 됐음을 노 정부는 과연 아는가, 모르는가.
노 대통령의 최근 대미(對美) 발언에 대해 한 미국 측 관계자가 보였다는 반응이다. 노 대통령은 7월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지금 우리가 북한의 목을 졸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미국은 오류가 일체 없는 나라냐. 미국의 오류에 대해서는 한국은 일절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해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유엔안보리 결의안 이후 한-미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이 추가적 금융제재 가능성을 흘리고 ‘탈북 난민’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는 한편, 상원에서는 ‘북한 비확산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나오고 있는 ‘이상 징후’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사안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번 일로 인해 한-미 관계가 특별히 더 나빠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 이 같은 반응의 근저에는 한-미 관계가 노무현 정부 이래로 ‘꾸준히’ 악화돼왔기 때문에 이제는 어떻게 해볼 여지도 없다는 무력감이 깔려 있다.
그러면 미국 측 인사의 반응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 전문가는 “미국이 노 정부를 제쳐놓았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여러 신호들을 종합해보면 노 정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에도 한국은 장관급 회담을 열었다. 또 한국의 통일부 장관은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에서 가장 실패한 쪽은 미국’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렇게 엇나가는 상대와 어떻게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미국이 최근 쏟아내는 갖가지 대북 압박은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도 볼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은 5·31 지방선거에서 한국의 민심이 노 정부를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선 노 정부의 남은 임기 1년 반을 적당히 넘기고, 한국의 차기 정부와 새롭게 관계 설정을 도모하려 하지 않겠는가.”
“미국은 노무현 정부를 제쳐놓았다는 의미”
겉으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속으로 곪고 있는 한-미 관계의 현황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7월13, 14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가 그것. 미국이 ‘2010년 이전에라도 한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할 수 있다’고 제의함으로써 한국 측을 당혹케 했던 바로 그 회의다. 노 정부 초기에 외교안보팀에 참여했던 한 원로 인사가 비공개 석상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비공식 석상에서 우리 측이 미 측 대표들에게 미국이 왜 그 같은 제의를 했는지 물어봤다. 미 측의 답변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노무현 정부가 처음 제기했으니 다음 정권에 떠넘기지 말고 노 정부와 조지 W 부시 2기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안을 마무리짓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 둘째,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관련해 서울에선 ‘나가라’ 하고 평택에선 ‘오지 말라’ 하는 것에 대한 불만. 셋째, 요즘 같은 상황이면 필경 미군이 한국을 떠날 날이 올 터인데 쫓기듯이 나가는 것보다는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 그나마 모양새가 낫지 않겠느냐는 것 등이었다. 이 말을 듣고 ‘한-미 관계가 갈 데까지 갔구나’ 하고 느꼈다.”
7월13일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은 뒤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일본처럼 자위대와 주일미군이 각기 별도의 지휘체계를 갖는 ‘병립형 지휘체계(duel command)’를 갖출지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관변 연구단체에 몸담고 있는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은 뒤 양국 군이 어떻게 연계 고리를 유지할지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으로 고민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선 육군은 우리가 독자적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해·공군은 미군의 지휘를 받게 한다거나, 전선을 동·서부로 나눠 양국 군이 담당 구역을 나누자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순전히 탁상공론일 뿐이다. 요컨대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의지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준비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심리적 거리 좁힐 인물 부재
그러면 미국 측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정보통은 “최근 만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가 이 일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아이디어 중 가장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한-미 간의 갈등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미국 측의 감정을 가장 상하게 한 것이 바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라는 것. 최근 SPI에서 미국이 보인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미 간의 이상 징후로 볼 수 있는 일들은 최근 외교 현장에서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틀 뒤인 7월6일 부시 미 대통령과 10분간 통화했다. 반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는 7월21일 30분간 통화하면서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대책을 숙의했다.
7월20일 외교통상부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7월28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이전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일정은 레바논 사태를 이유로 ARF 이후로 연기됐고, 새로 조정된 일정도 또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이에 대해 한 정보관계자는 “라이스 장관이 서울에 와봤자 합의할 게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풀이했다. “이런 식이라면 9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결과도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 관계가 어떻게 해서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그동안 정부는 한-미 관계와 대북공조에 이상이 없음을 줄곧 강조해왔다. 집권 초기에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던 주한미군 감축, 미군기지 이전 등 주요 현안을 대등한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타결했다는 게 정부가 즐겨 내놓던 근거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에 대해 “미국에 줄 것은 다 내주면서도 두 나라 간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 비판한다.
최근에는 외교안보팀 내부의 무기력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주요 멤버들이 제각각 다른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 직,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반 장관의 후임 자리에 관심이 쏠려 있고,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청와대 내 일부 세력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들이다. 확인할 수 없는 뒷공론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얘기가 나오는 배경에 “미국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인물이 없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도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7월27일자 청와대 브리핑에서 “일부 신문이 남-북 문제와 한-미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안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며 또다시 언론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 그 예다. 노 정부의 ‘언론 탓’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바로 그런 독선적인 행태가 한-미 관계에도 ‘독약’이 됐음을 노 정부는 과연 아는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