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0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건물 옥상에서 전문건설노조원 100여 명이 경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다.
강경과 비타협 노선을 걷고 있는 민주노총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럴 만한 사건도 연이어 터졌다. 특히 7월21일 ‘무장해제’로 끝난 포항건설노조의 파업과 포스코 불법점거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연례행사가 된 현대차 파업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차갑다. 대다수 언론은 “노동계의 파업이 도를 넘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 사태로 58명이 구속됐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단일 노동사건으로는 최대 구속자 수. 법적인 협상 상대도 아닌 포스코를 무단 점거한 사건과 관련해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이번 포스코 사태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와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크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피의자들에게 중한 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포스코 점거 엄청난 사회적 파장
포스코 점거 사건과 관련, 민주노총도 억울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점거가 진행되는 내내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파업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지도부의 의견은 현장에서 묵살됐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점거까지는 가지 말아야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현장의 상황이 지도부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로 파업의 정당성이 훼손돼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도 “분명한 것은 포스코 점거 사건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노조가 정상적인 요구를 했음에도 공권력과 정부, 언론은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집단 이지메’시켰다”며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의 또 다른 전투기지인 울산의 상황도 심각했다. 7월27일 극적인 타결로 마무리됐지만 현대차 파업의 뒤안길은 어두웠다. 특히 지역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울산시청 주변에서의 집회로 인해 시민의 불편과 고통이 너무 크다”며 시민들은 직접 모임을 결성, 권리보호에 나서기도 했다. 87년 이래 20년간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로 자리매김해온 울산에선 처음 있는 일.
7월21일 새벽 포스코 본사 건물을 점거 중이던 전문건설노조원들이 농성장을 빠져나와 1층 로비에서 경찰의 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위). <br>7월20일 포스코 본관 정문에서 건설노조원들 가족들이 음식물 반입을 저지하는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6월13일부터 중단했던 임금협상을 21일 만에 재개해 여름휴가 (7월29일∼8월6일)를
그렇다면 왜 민주노총은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걷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원인이 ‘노조의 안일한 현실 인식’에 있다고 분석한다. 노조가 여론의 질책을 일부 보수 언론과 자본가들의 ‘야비한 공격’으로 평가절하하는 등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불법도 불법 나름이다.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포스코 사태의 경우, 중간에 타협이 가능한 순간이 있었는데 노조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또 민주노총의 협상 상대인 경총의 김성연 팀장은 “노조가 하나의 권력기관으로 변질됐다. ‘밀면 밀린다’는 생각으로 노동운동을 벌이는 노조의 시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파 갈등이 과격투쟁 주도
올해 2월 출범한 현 지도부가 처음부터 강경노선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내 대표적인 온건파인 ‘국민파’ 소속의 조 위원장은 선거운동 당시부터 가장 온건한 후보로 평가되었다. 민주노총 역대 최고의 온건파 지도부로 평가받은 전임 이수호 위원장도 대화를 거부했던 최저임금제 등에 대해서 조 위원장은 정부와 끝까지 대화한 바 있다. 조 위원장은 “나는 모든 대화를 거부하는 강경파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도 정부와 끝까지 대화를 이어갔지 않았나. 노사정 대표자회의에도 참여하는 등 대화의 정치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취임 직후 각 당을 찾아가 협조를 부탁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완전히 묵살한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조 위원장의 해명에도 조 위원장 체제의 민주노총은 역대 가장 과격한 집행부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 계파 간의 문제가 민주노총의 과격투쟁을 주도하는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민주노총 내에는 적게는 5, 6개에서 많게는 10여 개에 달하는 정파가 난립해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앙파, 국민파, 전국회의, 현장파 등 비교적 단순했던 정파 구도가 최근 1~2년 사이 급격히 재편된 것. 지난해 각종 비리로 얼룩졌던 이수호 위원장 체제의 낙마가 가져온 결과였다. 민주노총 내부 사정에 정통한 민주노동당의 한 고위인사는 “민주노총 내에 각 정파가 춘추전국시대를 이루다 보니 지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정규직 및 정리해고 문제 등에 대해 지도부와 현장, 그리고 각 정파 간의 거리감과 불신도 의외로 크다. 그러다 보니 현장 강경파의 목소리를 지도부가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번 포스코 사태가 가장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경총의 한 관계자는 “계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현 집행부의 입지가 좁아진 것 같다. 현 지도부가 강경 투쟁을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이를 주장하는 계파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노사 간의 대화에서도 이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