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동그랗다. 눈도, 코도, 입술도, 얼굴 모양도 모두 동그랗다. 임수정은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영화 ‘장화, 홍련’에 이어 폐인 신드롬을 낳았던 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도 귀엽고 동그란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임수정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착지점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그녀의 장점과 단점이 겹치는 부분인데, 문근영이나 강혜정처럼(성형수술하기 이전) 뚜렷한 캐릭터를 갖는 대신 너무나 낯익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려면 더욱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18살 때 잡지 모델로 데뷔해 귀여운 외모로 주목받은 임수정은 TV 드라마 ‘학교4’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는 대통령(안성기 분)의 철부지 딸로 등장했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에서는 동생 역을 맡은 문근영과 함께 영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섬세하면서 복잡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 이 작품으로 임수정은 청룡영화제와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리고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는 달콤하고 사랑스런 이미지로 대중적 지명도를 확장했다. 현재 임수정의 소속사인 싸이더스HQ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영화 ‘새드무비’에도 출연했다.

임수정은 노트북 광고에서 도도한 커리어 우먼과 펑크록 가수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 숨겨진 끼를 발산하는 중이다.

“파격적으로 보이는 그 변신은 나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언젠가 화끈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꼭 보여주겠다. 솔직히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앞장서서 노는 학생은 아니었고, 뒤에서 숨어 노는 타입이었다.”



임수정은 하이틴 스타의 일반적 행보를 충실하게 따르며 성장했다. 잡지모델로 등장해서 TV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의 폭을 넓히고 대중적 지명도를 쌓아가는 그녀의 행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진짜 연기자로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임수정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가 씌어진 신작 ‘각설탕’은 말과 교감을 나누는 여자 기수의 이야기다. 이미 충무로에서는 5년여 전부터 말과 관련된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마사회에서 아낌없이 투자, 지원하겠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경마 승부 조작 등 부정적 사건들로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온 마사회는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홍보성 말 영화를 원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기수 배역 위해 3개월 동안 말 타는 연습

마사회의 전격 지원으로 제작된 ‘각설탕’은 그러므로 주문생산된 측면이 있다. 이 영화를 기획한 이정학 프로듀서는 마사회 측과의 교감에 의해 취재를 시작했고, ‘그놈은 멋있었다’로 데뷔한 이환경 감독에게 작품을 맡겼다. 영화인들 자신이 간절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기보다는, 주문생산된 상품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각설탕’은 필연적으로 노출한다.

“보여드리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말의 상태에 따라 촬영이 유동적인 때가 많았고 매우 힘들었지만, 사람 아닌 말과 연기를 하다 보니 연기에 대한 많은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시사회에 나타난 임수정은 블랙과 화이트가 선명하게 교차되는 드레스를 입고서 이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

‘각설탕’은 국내 최초로 동물과의 교감을 다룬 영화로 홍보된다. 그러나 ‘드리머’ 등 비슷한 소재의 할리우드 영화들을 통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상투적 클리셰를 반복한다. 즉, 영화의 독창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임수정은 ‘각설탕’과 매우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갖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말 천둥의 머리를 껴안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말의 커다란 눈과 그녀의 큰 눈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이 닮았던지 캐스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산뜻하게 짧은 머리로 등장하는 임수정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3개월 동안 기수로서의 기본자세를 익혔고 승마부터 경주 장면까지 다양한 기술을 배웠다.

‘각설탕’에서 임수정이 맡은 역할은 목장 주인의 딸로 태어난 시은.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시은은 장군이라는 말과 우정을 나누었는데, 장군이가 새끼 천둥을 낳다가 죽자, 비슷한 처지의 시은과 천둥은 더욱 강렬한 교감을 나눈다. 하지만 아버지(박은수 분) 몰래 기수시험을 본 것이 들통나 시은의 아버지는 천둥을 팔아버린다.

“시은은 유난히 말을 좋아하고 말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다. 뜻하지 않은 천둥과의 이별, 아버지의 반대 등 많은 시련을 겪지만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밝고 당찬 아이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집을 떠나 경마장에서 기수 생활을 하는 시은. 그러나 돈만 아는 조교의 차별을 견디다 못해 다시 귀향하다가 나이트클럽 홍보용 말이 된 천둥을 우연히 보게 된다. 다시 만난 시은과 천둥은 열심히 훈련을 해서 경기에 출전하고, 천둥은 피를 쏟으면서도 끝까지 달린다는 내용이다.

‘말’ 안 통하는 ‘말’과의 섬세한 감정 연기 무리 없이 소화

배우 입장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말과 섬세한 감정의 교류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임수정은 시은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기수가 되는 준비과정을 이수할 정도로 철저하게 역할에 몰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초 영화 촬영 도중, 새끼 천둥이 태어나는 장면에서는 직접 망아지를 받아낼 정도의 말 전문가가 되었다.

“천둥이를 붙들고 우는 장면을 찍을 때면 천둥이가 마치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엄마처럼 다독이며 내 감정을 받아주었다. 꼼짝도 않고 서서 그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나는 마음 놓고 천둥이를 안고 울 수 있었다.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관객으로선 감정 과잉을 노출시키며 정서적으로 쥐어짠 부분이 거슬리지만 그것은 감독의 몫이다. 임수정은 말과 교감을 나누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노력하는 시은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임수정의 다음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다. 지금 촬영 중인 이 작품에서 그녀는 가수 비와 함께 공연한다.

“비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실하다. 연기자로서도 배울 게 많다. 매력적이다. 우리는 호흡도 척척 맞는 친구 사이다.”

임수정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소녀 역을 맡아서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 작품은, 올 하반기 영화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으로 국제적 지명도를 획득한 박 감독의 신작이며, 한류 스타의 중심에 있는 비의 본격적인 영화 출연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물론 임수정에게는 연기 인생의 승부수를 걸 만한 배역이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