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70살 이후 피카소의 그림들은 크게 19세기 이전 대가들의 그림을 자유롭게 해석한 작품들과 ‘화가와 모델’이라는 주제로 그려진 작품 두 부류로 나뉜다. 렘브란트, 앵그르, 들라크루아, 모네, 드가 등의 그림들이 피카소 자신의 하렘을 상상하는 데 동원됐으며 ‘오줌 누는 여인’(1965)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들이 그려졌다. 이 시기는 이후 재평가됐지만, 피카소는 사실 평생 여성만 그린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여성은 자신의 예술적, 성적, 인간적 욕망의 거울 같은 대상이었으며 실제로 자신이 모델을 그리는 장면은 그의 그림에서 가장 큰 주제였다.
그러던 그가 죽기 직전인 1972년에 그린 자화상들은 전율과 함께 한 예술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거기에서는 더 이상 입체주의나 변형과 같은 형식적 조건들을 발견할 수 없다. 삶에 대한 통찰과 과거에 대한 회한이 모두 담긴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들은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과 천진스런 스타일로 죽음을 앞둔 거장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위대성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치 ‘광인’과도 같은 그의 시선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다.
“나는 평생 하나의 모델을 그려왔다. 그것은 바로 여성에 대한 욕망으로 표현된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