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6년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될 때까지 동아시아의 바다는 ‘장보고(張保皐)의 나라’였다. 장보고는 한-중-일을 잇는 수로(해로)를 장악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물류를 거머쥐었다. 그가 패업을 이룬 바닷길(장보고 루트)은 한 해류의 흐름과 일치한다. 일본식 이름으로 쿠로시오(Kuroshio·黑潮)해류가 그것이다. 일본은 1925년부터 이 해류를 관측했으며, 물길에 쿠로시오라는 이름을 붙여 국제적인 명칭으로 공인받았다.
5월31일은 올해로 11번째 맞는 바다의 날이다. 이는 해양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장보고가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때(음력 4월)에 맞춰 날짜가 결정됐다. 육상 자원이 고갈돼가면서 바다는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해양과학기술(MT)을 번영의 지렛대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국토의 삼면이 바다임에도 그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치지 못했다. 장보고가 자신의 바다에 붙여진 쿠로시오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국 직접 만든 ‘해류도’ 없어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의 도발도 표면적으로는 해저 지명과 관련한 것이다. 물리적 충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꾸려진 협의에서 일본 측 협상단의 마지노선은 ‘한국식 해저지명 등록 철회’였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 영해에서 수로 측량을 중지하기로 하고, 한국이 해저지명 등록을 6월 이후로 미루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는 봉합됐다. 그러나 7월부터 일본은 독도 근해에서 수로 측량을 다시 강행할 수 있고, 한국도 한국식 이름으로 해저 지명을 등록하겠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의 한국의 역량은 선진국과 비교해 어느 수준일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실력은 경제적 위상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한국이 독도 인근 해역의 수심과 해저지형을 정밀하게 측정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독도를 되찾아와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으나 50년 동안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외침만 거셌을 뿐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96년 해양수산부가 출범한 뒤로 한국도 바다를 국가 경쟁력의 주요 원천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독도 인근 해역의 측량 결과를 토대로 2005년 12월 18개 해양 지명을 새로 지었고, 이를 바탕으로 올 6월 한국식 해양지명을 국제수로기구(IHO)에 등록할 계획이었다. ‘울릉분지’ ‘이사부해산’ 등이 그것인데, 수십 년 동안 독도 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충돌해왔음을 떠올리면 후시지탄(後時之歎)의 일이다. 한 해양전문가는 “우리 주권이 미치는 바다를, 그것도 일본이 시비를 걸고 있는 곳을 제대로 측량조차 하지 않고 방치해온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해양 지명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다의 지명은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등 자국의 관할권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영유권 문제를 심판할 때, 측량과 조사를 통해 자국의 이름으로 해양 지명이 등록돼 있으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측량을 통해 얻은 해저지형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식 이름이 붙은 새로운 해양지도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한국이 지난해 이사부해산이라고 이름 지은 곳은 벌써부터 국제해저지명집에 ‘순요퇴’로 등재돼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일본은 2000~2001년 독도 부근 14~38해리 해상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수온 및 해류 관측을 실시했다. 일본이 탐사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해저산을 찾아 IHO에 보고하면 해저 지명이 일본식으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 박사는 “해양국가인 일본과 달리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온 데다, 독도 인근의 해저산 탐사는 자본과 장비 문제 등으로 현재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번영의 지렛대로서 해양에 관심을 가진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아직도 직접 만든 해류도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해류도는 1930년대에 일본인이 제작한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해류도에서만큼은 일본과 70년 이상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해양연구원 강창구 박사는 “바다에서의 일본과의 실력 차가 아직은 크게 벌어져 있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MT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 인근에서 탐사활동을 벌이려고 했던 일본 해상보안청의 한국 쪽 카운터파트는 96년 세워진 국립해양조사원이다. 이 기관은 해안선, 해저지형, 지구자기, 중력, 천부지층 등 해양과 관련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해양조사원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한국의 수로탐사 및 해양관측 능력은 낯부끄러운 수준이었다. 96년까지는 건설교통부 수로국이 관련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건교부에서 일한 한 전직 공무원의 말이다.
“수로국은 한직으로 기피 부서였다. 수로국에 배치된 공무원들은 백을 쓰거나 인사청탁을 해서 다른 부서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20세기 초 일본과 러시아가 쓰던 지도를 그대로 사용할 만큼 한국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돈도 없고 기술도 없어서 수로국이라는 명칭처럼 배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잘 다니도록 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한국은 95년 2500t 규모의 해양 2000호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경쟁력을 갖춘 해양조사선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해양조사원은 현재 해양 2000호를 비롯해 바다로 1·2·3호, 남해로호, 동해로호, 황해로호 등 7척의 해양조사선(총 t수 3800t)을 보유하고 있다. 해양조사원 출범 이후 한국의 해양 탐사 능력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보유하고 있는 해양조사선은 모두 13척(총 t수 7300t). 일본의 수로측량선은 위성장비를 이용해 얻은 자료를 취합·저장하는 복합측위장치, 음파를 해저면에 쏴 돌아오는 속도로 수심을 측정하는 마르치빔 측심기, 수심별 수온과 염분도를 측정해 수심을 측정하는 XBT, 해류 방향과 유속을 측정하는 ADCP 를 비롯해 고가의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해상보안청 외에도 여러 정부기관이 해양 관측 역량을 갖추고 있어 해양조사원이 해양 관측에서 일본의 맞상대가 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한 해양전문가는 “일본은 해양조사를 통해 지형뿐 아니라 바다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까지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서 “독도 근해에서 한국은 화물선 수준의 측량선을 앞세워 항공모함을 연상케 하는 일본의 측량선과 대결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MT는 일본과 같은 선진국 대비 40~50% 정도로 평가된다(표 참조). MT 분야 투자도 2003년 기준 1130억원으로 미국(2조5065억원), 일본(9716억원), 중국(3528억원)보다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5월31일은 올해로 11번째 맞는 바다의 날이다. 이는 해양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장보고가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때(음력 4월)에 맞춰 날짜가 결정됐다. 육상 자원이 고갈돼가면서 바다는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해양과학기술(MT)을 번영의 지렛대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국토의 삼면이 바다임에도 그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치지 못했다. 장보고가 자신의 바다에 붙여진 쿠로시오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국 직접 만든 ‘해류도’ 없어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의 도발도 표면적으로는 해저 지명과 관련한 것이다. 물리적 충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꾸려진 협의에서 일본 측 협상단의 마지노선은 ‘한국식 해저지명 등록 철회’였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 영해에서 수로 측량을 중지하기로 하고, 한국이 해저지명 등록을 6월 이후로 미루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는 봉합됐다. 그러나 7월부터 일본은 독도 근해에서 수로 측량을 다시 강행할 수 있고, 한국도 한국식 이름으로 해저 지명을 등록하겠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의 한국의 역량은 선진국과 비교해 어느 수준일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실력은 경제적 위상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한국이 독도 인근 해역의 수심과 해저지형을 정밀하게 측정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독도를 되찾아와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으나 50년 동안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외침만 거셌을 뿐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96년 해양수산부가 출범한 뒤로 한국도 바다를 국가 경쟁력의 주요 원천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독도 인근 해역의 측량 결과를 토대로 2005년 12월 18개 해양 지명을 새로 지었고, 이를 바탕으로 올 6월 한국식 해양지명을 국제수로기구(IHO)에 등록할 계획이었다. ‘울릉분지’ ‘이사부해산’ 등이 그것인데, 수십 년 동안 독도 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충돌해왔음을 떠올리면 후시지탄(後時之歎)의 일이다. 한 해양전문가는 “우리 주권이 미치는 바다를, 그것도 일본이 시비를 걸고 있는 곳을 제대로 측량조차 하지 않고 방치해온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해양 지명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다의 지명은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등 자국의 관할권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영유권 문제를 심판할 때, 측량과 조사를 통해 자국의 이름으로 해양 지명이 등록돼 있으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측량을 통해 얻은 해저지형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식 이름이 붙은 새로운 해양지도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한국이 지난해 이사부해산이라고 이름 지은 곳은 벌써부터 국제해저지명집에 ‘순요퇴’로 등재돼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일본은 2000~2001년 독도 부근 14~38해리 해상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수온 및 해류 관측을 실시했다. 일본이 탐사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해저산을 찾아 IHO에 보고하면 해저 지명이 일본식으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 박사는 “해양국가인 일본과 달리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온 데다, 독도 인근의 해저산 탐사는 자본과 장비 문제 등으로 현재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지구 심층탐사 굴착선인 `일본의 지구호`. 2007년 9월부터 본격 탐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독도 인근에서 탐사활동을 벌이려고 했던 일본 해상보안청의 한국 쪽 카운터파트는 96년 세워진 국립해양조사원이다. 이 기관은 해안선, 해저지형, 지구자기, 중력, 천부지층 등 해양과 관련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해양조사원이 출범하기 이전까지 한국의 수로탐사 및 해양관측 능력은 낯부끄러운 수준이었다. 96년까지는 건설교통부 수로국이 관련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건교부에서 일한 한 전직 공무원의 말이다.
“수로국은 한직으로 기피 부서였다. 수로국에 배치된 공무원들은 백을 쓰거나 인사청탁을 해서 다른 부서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20세기 초 일본과 러시아가 쓰던 지도를 그대로 사용할 만큼 한국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돈도 없고 기술도 없어서 수로국이라는 명칭처럼 배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잘 다니도록 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한국은 95년 2500t 규모의 해양 2000호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경쟁력을 갖춘 해양조사선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해양조사원은 현재 해양 2000호를 비롯해 바다로 1·2·3호, 남해로호, 동해로호, 황해로호 등 7척의 해양조사선(총 t수 3800t)을 보유하고 있다. 해양조사원 출범 이후 한국의 해양 탐사 능력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보유하고 있는 해양조사선은 모두 13척(총 t수 7300t). 일본의 수로측량선은 위성장비를 이용해 얻은 자료를 취합·저장하는 복합측위장치, 음파를 해저면에 쏴 돌아오는 속도로 수심을 측정하는 마르치빔 측심기, 수심별 수온과 염분도를 측정해 수심을 측정하는 XBT, 해류 방향과 유속을 측정하는 ADCP 를 비롯해 고가의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해상보안청 외에도 여러 정부기관이 해양 관측 역량을 갖추고 있어 해양조사원이 해양 관측에서 일본의 맞상대가 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한 해양전문가는 “일본은 해양조사를 통해 지형뿐 아니라 바다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까지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서 “독도 근해에서 한국은 화물선 수준의 측량선을 앞세워 항공모함을 연상케 하는 일본의 측량선과 대결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MT는 일본과 같은 선진국 대비 40~50% 정도로 평가된다(표 참조). MT 분야 투자도 2003년 기준 1130억원으로 미국(2조5065억원), 일본(9716억원), 중국(3528억원)보다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