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레알 마드리드 팬인 주인공 덕훈은 바르셀로나 팬인 인아와 가까워져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아내 인아가 새 남자 재경과도 중혼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즉 이 작품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개념의 부부관계와 가족형태가 가능한지를 묻는 소설이다.
<b>1</b>_축구는 놀이, 정치경제학, 인문학의 총합이다. 2006~2007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거머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b>2</b>_축구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영화 ‘골2’. <b>3</b>_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월드컵 예선전이 전쟁으로 비화된 적이 있다. 사진은 2006년 두 나라의 경기.<b>4</b>_축구를 재미있게 풀어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그렇다, 축구는 우선 놀이다. 멋대로 놀고 싶은 자유로운 욕구인 놀이다. 하지만 놀이에도 규칙이 있고, 사회적으로 표출되면 월드컵처럼 축제가 된다. 참여자들은 물질적 이익이 따르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공동체 관계를 맺는다. 축제의 가장 큰 힘은 생면부지이던 사람들을 친하게 한다는 점이다.
현대축구의 기원도 노동자들의 친밀감에서 싹텄다. 19세기 영국 명문사립학교에서 생겨난 축구는 원래 신사복을 입고 하는 귀족 스포츠였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노동시간이 단축되면서 노동자들에게 여유가 생기자, 자본가들은 그들과 대립하는 것보다 노동자들이 축구에 정신을 파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해 축구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이때부터 축구는 노동계급의 상징이 된다. 랭커셔·요크셔 철도노동자들의 맨유, 북런던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아스날, 이탈리아 공업도시 밀라노의 AC밀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축구는 단순한 친목도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01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이나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로 양국 우호를 증진한 것, 남북 친선경기로 남북 긴장관계 완화, 세계 올스타들이 호나우두 팀과 지단 팀으로 나뉘어 아동빈곤 퇴치를 위한 친선경기를 열고 펠레의 경기를 보기 위해 나이지리아와 비아프라가 휴전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스포츠에 관한 수많은 책에서 이미 나왔던 진부한 은유이기도 하지만, 축구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러나 진짜 폭력이 난무하고 절망적인 전투의 흔적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축구가 전쟁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오히려 그것은 보기 드문 게임이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행위다. …우리가 기억하는 바의 그 게임이란 창조의 행위이지 결코 파괴의 행위가 아니다.”
- 경희대 2003 수시1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월드컵 예선전이 전쟁으로 비화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전쟁,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맞수관계,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 탓에 유럽 국가들이 독일 팀을 응원하지 않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축구를 일컬어 ‘총성 없는 전쟁’,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 멤버인 그람시가 ‘야외에서 행해지는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 체 게바라가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혁명의 무기’라고 말했듯 축구는 계급적이면서도 정치적이다.
특히 파시스트와 독재정부는 축구를 정권 홍보수단으로 이용해 저항의식을 희석하려 한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월드컵(1934), 비델라 군사정권의 아르헨티나 월드컵(1978)이 대표적인 예다. 또 5공화국의 3S(sex, screen, sports) 정책에 따라 당시 군인 대통령이 아시아 최초로 프로축구 리그를 연 것도 마찬가지다. FC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 저항정신의 아이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의식을 희미하게 한다. 독재자 프랑코가 굳이 누캄프(바르셀로나 홈구장)를 건드리지 않았던 까닭은 경기장 안에서 제한적인 자유를 누린 카탈루냐인들은 반독재운동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축구는 민족주의 감정의 불씨다. 맨유의 라이언 긱스가 ‘어머니의 나라’ 웨일스 때문에 잉글랜드의 귀화 유혹에도 “잉글랜드 대표로 월드컵에서 뛰는 것보다 웨일스 소속으로 월드컵과 유로대회에서뛰는 게 더 행복하다”고 말한 것이 역설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축구의 역사는 긍정과 부정의 양극단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축구에는 인문정신이 필요하다.
“축구경기를 통해 일어나는 문화 전체는 세계문화사를 압축해볼 수도 있는, 말할 수 없는 크기와 넓이의 인문정신이 서려 있는 것이다.”
- 연세대 2003년 수시1
인문정신은 말 그대로 ‘인간적인 정신’이다. 영화 ‘골’을 보자. 불법체류자 멕시코 소년 산티아고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영국의 2부 리그를 거쳐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축구소년의 ‘성장통’을 ‘클로즈업’하는 이 영화는 ‘비주류 독학파’ 산티아고가 혼자 축구를 배우다 몸에 붙어버린 드리블 중심의 플레이를 버리고 패스게임과 팀워크, 즉 축구(인생)는 골(결과)보다는 패스(과정)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축구는 재미와 승부도 중요하지만 ‘타자와 나’를 알아가는 인문학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축구는 타자를 만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인 전쟁을 대신할 만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인데, 이는 FIFA 정신인 ‘화합과 협력, 평화’라는 단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FIFA가 과연 인문학적인지는 의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공통 문제 중 하나가 빈곤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에 온 인도소녀 소니아를 떠올려보자.
“인도에서 축구공을 만들다가 눈이 멀었다는 소녀가 왔다…/ 눈이 먼 인도소녀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에게 말했다/ ‘아저씨들이 차는 축구공에 가난한 어린아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이문재, ‘제국호텔-인도에서 소녀가 오다’
이처럼 축구는 정치경제학적이다. 브라질 사업가 아벨란제도 FIFA 회장에 당선된 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다국적기업을 경영한다”고 말했다. 축구가 돈줄이기 때문에 첼시는 러시아의 석유갑부 아브라모비치, 맨유는 미국의 스포츠재벌 글레이저, AC밀란은 미디어재벌 베를루스코니, 리버풀은 미국자본 질레트와 힉스가 각각 인수한 것 아닌가.
“월드컵의 광고사업은 약 7조원 규모라고 한다. 반면, 그 월드컵 경기에 사용되는 수제품 축구공은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15세 미만 아이들이 만든다. 이런 일에 반강제적으로 종사하는 열 살 안팎의 어린아이들이 인도에 1만명, 파키스탄에 1만5000명이나 있다.”
-서강대 2007년 수시 예시
축구팀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첼시는 삼성 로고, 맨유는 AIG 로고를 유니폼에 찍어 떼돈을 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도 106년 전통을 깨고 2006년 드디어 유니폼에 로고를 찍었다. 바로 유니세프(국제연합 아동기금)다. 스페인내전 당시 저항군의 재원 마련을 위해 미국과 멕시코에서 경기를 했던 바르셀로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유일하게 전쟁반대 플래카드를 내걸었던 만큼 그들의 모토대로 ‘(축구)클럽 그 이상이 되자’고 한다. 축구는 축구공이 없으면 절대 못한다. 인문학적으로 다시 말하면, 축구공을 누가 만드는지에 대한 관심 또한 축구를 즐기는 것이다.
- 추천 도서 :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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