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주간동아’ 커버스토리는 ‘디지털족 음식남녀 행복찾기’였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음식에 대한 열기는 정말 대단하다. 맛 칼럼니스트인 나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온갖 식당을 섭렵해 시시콜콜 음식평을 올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식 전문가가 따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인터넷 공간 속의 ‘비전문적인’ 음식전문가들을 잘 조합하면 ‘미슐랭 가이드’ 같은 미식비평 잡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미슐랭 가이드’에서는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에서 100여 명의 평가단이 비밀리에 식당에 잠입, 취재해 점수를 매긴다. 이 책에 이름이 오르면 그 식당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식당이 된다. 그만큼 독자가 신뢰할 만한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는 말인데, 점수는 별의 수로 나타낸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식당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모 사이트 측으로부터 ‘맛 평가단을 조직해 점수 매기기를 하려고 하는데 동참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흔쾌히 하겠다고 답했다. 평가단 면면을 살펴보니 웬만큼 객관적인 평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이 기회에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를 만드는 거야” 라고 다짐했다.
맛 평가는커녕 툭하면 요리사 교체가 현실
그러나 며칠 지나면서 과연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가 가능할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평가단의 미각 수준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평가할 식당의 수준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주인과 주방장이 바뀌는 데다 주방장보다는 잡일하는 주방 아주머니들의 솜씨에 따라 그날그날 맛이 달라지는 우리나라 식당의 음식을 평가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사례1) 술 한잔 하고 귀가하는 길에 가끔 들르는 동네 해장국집이 있었다. 맑고 개운한 국물에 신선한 선지, 냄새 없이 깔끔하게 손질한 내장이 깊은 맛을 냈다. 점수로 치면 청진동 유명 해장국보다 50점은 더 줄 수 있는 맛이었다. 어느 방송사에서 맛있는 해장국집을 찾는다기에 이 집을 적극 추천하고 그날 저녁에 확인차 가보았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냄새나는 탁한 국물에 선지도 시원찮고 내장도 질겼다. 다음 날 그 집 추천을 취소했다.
몇 달 후 그 집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주방장과 주인, 종업원 모두가 낯설다. 주인이 바뀌었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주인과 주방장이 바뀌어도 단골을 잃지 않으려고 아니라고 발뺌하는 식당이 많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식당과 똑같은 상호의 해장국집이 두어 블록 건너에 새로 생겼다. 그 새 식당에 옛날 주인이 앉아 있었다.
사례2) 라면을 비롯해 일본의 서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서울에서는 드문 일식집이 있었다. 주인이 일본인이라 우리 입맛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들의 토속적인 맛을 고집하는 게 무척 신선했다. 라면만 따지자면 서울에서 최고의 점수를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신장개업’을 했다. 예전의 선술집 분위기를 잃어 아쉬운 데다 맛도 그 맛이 아니었다. 그 집을 나오면서 물어보니 주인이 바뀌었단다. 가게 이름은 그대로였다. “예전 주인이 노하우를 다 전수하고 갔어요.” 음식맛이란 게 노하우 전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사례3) ‘옛날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분점을 내려는 사람이 찾아와 주인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주인 왈, “주방장은 걱정 마세요. 낙원동 인력시장에 가면 널린 게 중국집 주방장이에요. 하루하루 ‘땜빵’해도 돼요. ‘우리 집은 이런 스타일로 음식을 낸다’고 코치만 하면 딱 그 맛이 나와요.” 하기야 자장면 맛 달라졌다고 투정할 손님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외식업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손님은 이런 속사정을 잘 모른다. 그 장소에 그 상호면 항시 같은 음식이 나오는 줄 안다.
최근 어느 출판사에서 단행본 출간 제의가 들어와 10여 년간 취재한 식당 목록을 놓고 확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거나 주인이 바뀌고, 나머지도 옛날 그 음식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식당 목록은 그래도 음식 잘하기로 꽤 이름난 식당들이었는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 달기 권위는 100년이 넘는 역사에 100여 명이나 되는 익명의 평가단이 내린 객관적인 시식평이 아니라, 맛과 전통을 목숨처럼 여기는 요리사들의 장인정신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 지금으로 봐서는 참 요원한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식 전문가가 따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인터넷 공간 속의 ‘비전문적인’ 음식전문가들을 잘 조합하면 ‘미슐랭 가이드’ 같은 미식비평 잡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미슐랭 가이드’에서는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에서 100여 명의 평가단이 비밀리에 식당에 잠입, 취재해 점수를 매긴다. 이 책에 이름이 오르면 그 식당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식당이 된다. 그만큼 독자가 신뢰할 만한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는 말인데, 점수는 별의 수로 나타낸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식당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모 사이트 측으로부터 ‘맛 평가단을 조직해 점수 매기기를 하려고 하는데 동참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흔쾌히 하겠다고 답했다. 평가단 면면을 살펴보니 웬만큼 객관적인 평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이 기회에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를 만드는 거야” 라고 다짐했다.
맛 평가는커녕 툭하면 요리사 교체가 현실
그러나 며칠 지나면서 과연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가 가능할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평가단의 미각 수준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평가할 식당의 수준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주인과 주방장이 바뀌는 데다 주방장보다는 잡일하는 주방 아주머니들의 솜씨에 따라 그날그날 맛이 달라지는 우리나라 식당의 음식을 평가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사례1) 술 한잔 하고 귀가하는 길에 가끔 들르는 동네 해장국집이 있었다. 맑고 개운한 국물에 신선한 선지, 냄새 없이 깔끔하게 손질한 내장이 깊은 맛을 냈다. 점수로 치면 청진동 유명 해장국보다 50점은 더 줄 수 있는 맛이었다. 어느 방송사에서 맛있는 해장국집을 찾는다기에 이 집을 적극 추천하고 그날 저녁에 확인차 가보았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냄새나는 탁한 국물에 선지도 시원찮고 내장도 질겼다. 다음 날 그 집 추천을 취소했다.
몇 달 후 그 집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주방장과 주인, 종업원 모두가 낯설다. 주인이 바뀌었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주인과 주방장이 바뀌어도 단골을 잃지 않으려고 아니라고 발뺌하는 식당이 많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식당과 똑같은 상호의 해장국집이 두어 블록 건너에 새로 생겼다. 그 새 식당에 옛날 주인이 앉아 있었다.
사례2) 라면을 비롯해 일본의 서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서울에서는 드문 일식집이 있었다. 주인이 일본인이라 우리 입맛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들의 토속적인 맛을 고집하는 게 무척 신선했다. 라면만 따지자면 서울에서 최고의 점수를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신장개업’을 했다. 예전의 선술집 분위기를 잃어 아쉬운 데다 맛도 그 맛이 아니었다. 그 집을 나오면서 물어보니 주인이 바뀌었단다. 가게 이름은 그대로였다. “예전 주인이 노하우를 다 전수하고 갔어요.” 음식맛이란 게 노하우 전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사례3) ‘옛날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분점을 내려는 사람이 찾아와 주인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주인 왈, “주방장은 걱정 마세요. 낙원동 인력시장에 가면 널린 게 중국집 주방장이에요. 하루하루 ‘땜빵’해도 돼요. ‘우리 집은 이런 스타일로 음식을 낸다’고 코치만 하면 딱 그 맛이 나와요.” 하기야 자장면 맛 달라졌다고 투정할 손님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외식업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손님은 이런 속사정을 잘 모른다. 그 장소에 그 상호면 항시 같은 음식이 나오는 줄 안다.
최근 어느 출판사에서 단행본 출간 제의가 들어와 10여 년간 취재한 식당 목록을 놓고 확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거나 주인이 바뀌고, 나머지도 옛날 그 음식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식당 목록은 그래도 음식 잘하기로 꽤 이름난 식당들이었는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 달기 권위는 100년이 넘는 역사에 100여 명이나 되는 익명의 평가단이 내린 객관적인 시식평이 아니라, 맛과 전통을 목숨처럼 여기는 요리사들의 장인정신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 지금으로 봐서는 참 요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