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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월 스트리트

파렴치한 화이트칼라 범죄

  • 이명재 자유기고가

파렴치한 화이트칼라 범죄

파렴치한 화이트칼라 범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장 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무려 19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빵 한 조각과 맞바꾼 대가치고는 가혹한 중형이었다. ‘레미제라블’의 시대 배경이 18세기 말 프랑스이니, 이건 먼 나라의 옛 형사 시스템 이야기일 뿐일까. 그러나 시대와 공간을 지금의 한국 사회로 옮겨 생각해보자. ‘장 발장처럼 좀도둑질을 한 사람과 아예 빵공장을 (사실상) 훔친 사람이 받는 처벌은 어느 쪽이 중할까’ 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장 발장 같은 절도범은 명백한 범죄자로, 그것도 파렴치범으로 생각한다. 반면 범죄행위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죄질이나 피해는 더 심각한 범죄에 대해서는 범죄 체감이 무딘 편이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예컨대 사람들은 토마스 크라운 같은 억만장자가 재미삼아 수백억원대 그림을 훔치는 것은 범죄로 여기지 않으려 한다. 돈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다 잘생긴 토마스 크라운은 절도를 게임으로, 짜릿한 스릴로 여긴다. 그는 어느 날 새로운 모험거리를 찾아내는데, 다름 아닌 박물관에 소장된 모네의 그림을 훔치는 것이다.

멋진 주인공의 이 절도행위는 분명히 범죄지만 돈을 노린 불순한(?) 동기도 없는 순전한 모험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관객들은 그를 너그럽게 봐준다. 이건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장 발장의 절도 ‘행각’과 토마스 크라운의 절도 ‘모험’을 바라보는 시각 간에는 범죄 체감도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건 이른바 화이트칼라형 범죄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도 비슷한 것일 듯하다.

그러나 토마스 크라운이 박물관의 명화가 아닌 한국의 증권시장에서, 돈벌이 욕심이든 재미삼아서든 주식으로 장난을 쳐 하룻밤에 수백억원을 주무르는 모험을 즐기기로 했다면? 그때도 우린 그를 너그럽게 봐줄 수 있을까.



비상한 수단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월 스트리트 주식 투자자의 세계를 그린 영화 ‘월 스트리트’는 이 시대의 진짜 범죄자, 파렴치범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악한을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함으로써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긴다. 그러나 영화 밖의 현실에서 선과 악, 합법과 불법은 종이 한 장 차이보다도 얇다. 현실에서라면 과연 얼마나 사술과 협잡이 합법적인 투자와 사업의 탈을 쓰고 행해지고 있을 것인가.

게다가 범죄가 적발되더라도 처벌은 또 얼마나 관대한가. 우리 법원은 대부분의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벌금과 과징금을 선고할 뿐 인신구속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일반인의 무딘 법 감정을 더욱 굳혀주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양형을 강화하고 있다 하니 ‘죄와 벌’의 정의를 조금은 기대해도 될까.



주간동아 2007.06.26 591호 (p80~80)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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